[국회의 '규제 폭주' (상)] 반려동물도 안전띠… 건물에 조류충돌 방지 장치… 규제법안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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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 규제법안 1310건…벌써 19대 육박
실적쌓기용 날림 발의…상임위는 졸속심사
'민생법안' 탈 쓰고 본회의마다 수십건 처리
정부도 '청부입법'으로 규제심사 건너뛰어
실적쌓기용 날림 발의…상임위는 졸속심사
'민생법안' 탈 쓰고 본회의마다 수십건 처리
정부도 '청부입법'으로 규제심사 건너뛰어
국회의원들의 법안 발의 폭증이 문제가 되는 것은 법안 상당수가 규제 입법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가 20대 국회에 제출된 의원 발의 법안 1만47건 가운데 규제 법안으로 분류한 것만 1310건에 이른다. 규제의 신설·강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회기가 절반 이상 남아 있는 상황인데도 19대 국회 전체 규제 법안(1344건)에 육박하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 혁파를 외쳐도 지금과 같은 의원 입법 체계와 관행을 고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정재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안의 조문 하나만 바꿔 제출하거나 자신의 지지층을 겨냥한 보도용·과시용 법안도 크게 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는 최근 10년 새 10배 이상 급증했다. 16대 국회(2000~2004년)에서 1651건이던 의원 발의 법안은 17대(5728건)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18대(1만191건)·19대 국회(1만5444건)에선 1만 건을 훌쩍 넘겼다. 20대 국회에서는 2만 건 돌파가 확실시된다. ◆‘보도자료’ 내듯 법안 양산
의원 법안 증가는 시대변화에 따른 국민들의 다양한 입법 수요를 반영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실적 쌓기용 졸속 입법이 남발되는 게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 과정에서 각종 규제 법안들이 영향평가나 비용추계 분석 한번 없이 무더기로 양산되고 있다.
실적용 법안 발의 행태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평소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다가 대형 사건 사고 후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면 뒤늦게 유사 법안을 집중 발의한다. 지난해 12월 제천화재 사고 이후 소방 관련 법안이 8개 이상 발의됐다.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김삼화 의원),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진선미 의원) 등이다. 그런데 정작 지난해 3월에 발의된 ‘소방차 통행 장소를 주정차특별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법안’(김영춘 의원)은 행정안전위원회 상임위에 상정된 채 9개월 동안 잠자고 있다. 국회 법제실 관계자는 “2007년 입법조사처 같은 의정 지원 조직들이 생긴 이후 의원 발의 법안이 늘어났다”며 “지금은 조사처 업무량이 폭주할 정도로 의원들의 법안 발의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청부입법’도 한몫하고 있다. 정부가 법안을 직접 발의하면 당정협의, 입법예고, 공청회, 규제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등을 거쳐야 한다. 최소 6개월 이상 걸린다. 의원 입법은 이런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 심사를 건너뛸 수 있다. 18대 국회 때 1693건이었던 정부 제출 법안은 19대 국회에서 1093건으로 크게 줄어든 반면, 의원 제출 법안은 1만191건에서 1만6159건으로 급증했다. 정부 부처의 ‘청부입법’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방증이다.
◆법안 홍수 속 ‘졸속심사’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1만여 건의 의원 입법안 중 상임위에서 처리된 비율은 28%(3234건)에 불과하다. 계류된 안건은 8435건에 달한다. 19대 국회에서는 발의 법안 1만5444건 중 9899건의 법률안이 폐기 처리됐다. 법안 발의가 폭주하면서 법안을 검토하고 심사할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20대 국회 들어 전체 회기일 수(415일)에서 각 상임위가 법안심사위원회를 연 기간은 평균 19.6일(정보위 제외)이었다. 그래서 법안 소위가 열릴 때마다 ‘무더기 심사’ ‘땡처리 심사’가 이뤄진다. 20대 국회 정무위원회는 그동안 법안소위를 총 22일 열었다. 이 기간에 약 297개 법안을 심사하고 125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소위가 한 차례 열릴 때마다 평균 19건의 법안을 심사하고 8건의 법안을 통과시킨 셈이다. 졸속 심사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여야의 정치싸움도 법안 심사의 병목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상임위별 법안 처리 비율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가 13%로 가장 낮았다. KBS·MBC 등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둘러싼 여야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상임위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상임위에서 올라온 모든 법안을 최종 검토하는 법제사법위원회는 큰 파행이 없었음에도 법안 통과율이 15%에 그쳐 ‘불량 상임위’로 꼽히고 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정부가 아무리 규제 혁파를 외쳐도 지금과 같은 의원 입법 체계와 관행을 고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정재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안의 조문 하나만 바꿔 제출하거나 자신의 지지층을 겨냥한 보도용·과시용 법안도 크게 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는 최근 10년 새 10배 이상 급증했다. 16대 국회(2000~2004년)에서 1651건이던 의원 발의 법안은 17대(5728건)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18대(1만191건)·19대 국회(1만5444건)에선 1만 건을 훌쩍 넘겼다. 20대 국회에서는 2만 건 돌파가 확실시된다. ◆‘보도자료’ 내듯 법안 양산
의원 법안 증가는 시대변화에 따른 국민들의 다양한 입법 수요를 반영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실적 쌓기용 졸속 입법이 남발되는 게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 과정에서 각종 규제 법안들이 영향평가나 비용추계 분석 한번 없이 무더기로 양산되고 있다.
실적용 법안 발의 행태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평소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다가 대형 사건 사고 후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면 뒤늦게 유사 법안을 집중 발의한다. 지난해 12월 제천화재 사고 이후 소방 관련 법안이 8개 이상 발의됐다.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김삼화 의원),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진선미 의원) 등이다. 그런데 정작 지난해 3월에 발의된 ‘소방차 통행 장소를 주정차특별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법안’(김영춘 의원)은 행정안전위원회 상임위에 상정된 채 9개월 동안 잠자고 있다. 국회 법제실 관계자는 “2007년 입법조사처 같은 의정 지원 조직들이 생긴 이후 의원 발의 법안이 늘어났다”며 “지금은 조사처 업무량이 폭주할 정도로 의원들의 법안 발의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청부입법’도 한몫하고 있다. 정부가 법안을 직접 발의하면 당정협의, 입법예고, 공청회, 규제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등을 거쳐야 한다. 최소 6개월 이상 걸린다. 의원 입법은 이런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 심사를 건너뛸 수 있다. 18대 국회 때 1693건이었던 정부 제출 법안은 19대 국회에서 1093건으로 크게 줄어든 반면, 의원 제출 법안은 1만191건에서 1만6159건으로 급증했다. 정부 부처의 ‘청부입법’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방증이다.
◆법안 홍수 속 ‘졸속심사’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1만여 건의 의원 입법안 중 상임위에서 처리된 비율은 28%(3234건)에 불과하다. 계류된 안건은 8435건에 달한다. 19대 국회에서는 발의 법안 1만5444건 중 9899건의 법률안이 폐기 처리됐다. 법안 발의가 폭주하면서 법안을 검토하고 심사할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20대 국회 들어 전체 회기일 수(415일)에서 각 상임위가 법안심사위원회를 연 기간은 평균 19.6일(정보위 제외)이었다. 그래서 법안 소위가 열릴 때마다 ‘무더기 심사’ ‘땡처리 심사’가 이뤄진다. 20대 국회 정무위원회는 그동안 법안소위를 총 22일 열었다. 이 기간에 약 297개 법안을 심사하고 125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소위가 한 차례 열릴 때마다 평균 19건의 법안을 심사하고 8건의 법안을 통과시킨 셈이다. 졸속 심사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여야의 정치싸움도 법안 심사의 병목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상임위별 법안 처리 비율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가 13%로 가장 낮았다. KBS·MBC 등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둘러싼 여야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상임위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상임위에서 올라온 모든 법안을 최종 검토하는 법제사법위원회는 큰 파행이 없었음에도 법안 통과율이 15%에 그쳐 ‘불량 상임위’로 꼽히고 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