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이 2000년 ‘닷컴거품’ 이후 최대 활황을 맞았다. 미국 4대 커피·커피머신 제조업체 큐리그그린마운틴이 미국 3위 음료업체 닥터페퍼&스내플을 187억달러(약 20조651억원)에 사들이며 음료업계 사상 최고 인수가를 기록하는 등 연초부터 굵직한 M&A가 잇따르고 있다.
'닷컴 붐' 이후 다시 부는 'M&A 광풍'… 1월에만 330조원 넘어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촉발한 합종연횡 바람이 미국 감세 효과 및 글로벌 경제 호황 기대와 합쳐지면서 ‘M&A 광풍’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음료업계 ‘지각변동’

파이낸셜타임스(FT)는 29일(현지시간) 큐리그의 닥터페퍼&스내플 인수를 ‘뜨거운 커피’와 ‘차가운 음료’의 결합이라고 보도했다. 큐리그는 닥터페퍼&스내플 지분 87%를 보유하게 된다. 커피업체의 음료업체 인수는 전례가 없는 만큼 이번 M&A가 업계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밤 갬고트 큐리그 최고경영자(CEO)는 “닥터페퍼와 큐리그를 결합한 유통망은 미국 내에서 대적할 라이벌이 없다”며 “합병으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는 2021년까지 6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유통업계는 두 회사가 제조시설과 유통망을 결합해 음료업계 양대 업체인 코카콜라, 펩시와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고 있다. 알리 디바즈 번스타인 애널리스트는 “큐리그가 닥터페퍼 유통망을 이용해 병·캔 커피 판매를 확대할 수 있다”며 “닥터페퍼는 온라인 판매용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닥터페퍼&스내플은 세븐업을 비롯해 A&W루트비어, 모트 애플주스 등 수십 종의 음료를 만들고 있다. 큐리그의 모기업인 JAB홀딩스는 스위스 네슬레에 이어 세계 2위 커피그룹으로 부상한 곳이다. 지난 6년간 큐리그를 포함해 스텀프타운 피츠 등 300억달러 규모의 커피업체 인수를 진행했다. 독일계 라이먼 가문이 대주주로 본사는 룩셈부르크에 있다.

커피는 식음료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다. 반면 청량음료는 소비자의 건강음료 선호에 매출 부진을 겪고 있다. 앤드루 홀랜드 소시에테제네랄 애널리스트는 “이번 합병은 뜨거운 음료와 찬 음료 업체의 결합으로 코카콜라 펩시 네슬레 유니레버와 차별화된 지점”이라며 “이런 이종 결합의 경쟁력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마존에 이어 트럼프 효과

씨티그룹은 올해가 M&A 시장의 ‘거대한 한 해(monster year)’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연초 이후 이날까지 세계에서 3080억달러(약 330조8000억원) 규모의 M&A가 성사됐다. 2000년 이후 최대 규모다.

제약업계 M&A 규모는 연초 이후 400억달러에 이른다. 프랑스 제약업체 사노피는 미국 생명공학업체 바이오베라티브를 114억달러에 인수한 지 1주일 만에 벨기에 아블링스를 손에 넣었다. 인수 가격은 39억유로다. 아블링스를 놓고 인수 경쟁을 벌였던 덴마크 제약기업 노보노디스크는 “비현실적인 프리미엄을 낼 순 없다”며 포기했다. FT는 올해 헬스케어업계 인수 프리미엄은 주당 79%로 지난해(42%)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일본 전자업체 샤프가 도시바의 PC 사업부문 인수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모회사 폭스콘을 등에 업고 PC 시장에 재진입하려는 포석이다.

전문가들은 M&A를 촉발하는 요인으로 주요국의 경제성장률이 2% 이상으로 호조를 이루고 있는 점을 꼽았다.

이른바 ‘아마존 효과’도 M&A를 자극하고 있다. 아마존이 지난해 미국 최대 유기농 식품체인 홀푸드를 인수한 이후 인구구조, 소비자 행동, 기술혁신에 적응하기 위해 M&A를 선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감세 정책은 인수 비용 조달 부담을 덜어주는 등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씨티그룹은 세제개혁으로 미국 기업의 평균 현금유동성이 연간 12% 증가했으며 향후 5년간 차입을 통한 기업의 레버리지 가능규모가 0.5배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