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의 이슈프리즘] '4차 산업혁명 정부'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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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석 편집국 부국장
3년 전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하겠다며 회사를 그만둔 후배 기자가 있었다. ‘버스판 우버’인 심야 공유버스 사업을 시작하려던 후배는 출발부터 좌절을 맛봤다. 사업계획서를 들고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를 찾아가 만난 담당 공무원은 다짜고짜 백과사전만한 조례집부터 들고 오더란다. 그 공무원은 조례집을 넘기며 공유버스 사업이 현행법상 안 되는 이유를 열 가지도 넘게 댔다고 한다.
교묘한 규제에 막힌 혁신
안 되겠다 싶었던 후배는 “허락받고 시작하지 말고, 저지르고 용서받자”는 생각으로 일을 벌였다. 시장을 빼앗기게 된 택시기사 등이 반발했고, 서울시는 ‘불법 딱지’를 붙였다. 그러나 ‘심야시간 택시 잡기 어려운 시민들에게 저렴한 공유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왜 막느냐’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서울시는 이 사업을 조건부로 허용했다. 공유버스 사업권은 여객운수사업법상 여객 운송이 가능한 서울시택시조합이 갖고, 그 후배는 관련 소프트웨어만 제공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택시 손님을 빼앗아가는 심야 공유버스를 택시조합이 적극적으로 늘렸을 리 만무하다. 콜버스라는 이 공유버스는 현재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스타트업계에 차고 넘친다. 신기술과 아이디어로 새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면 기존 사업자가 반발하고, 공무원은 일단 막는다. 논란 끝에 시장 진입이 허용돼도 교묘한 규제로 사업 확장을 옥죈다. 인터넷은행 P2P(개인 간 거래)대출 등 핀테크 사업이 그렇고, 카풀 앱(응용프로그램) 등 공유 서비스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한국의 스타트업이 고만고만한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 뿐 글로벌 벤처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이런 규제환경을 확 뜯어고칠 것으로 기대를 모은 게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였다. 각 부처 정책을 조정할 수 있도록 총리급 민간위원장을 두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이 부위원장을 맡게 한다는 구상에 업계는 반색했다. 그러나 작년 10월 출범한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벌써부터 과기정통부 산하의 일개 위원회로 전락해 공무원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간 회의 내용이나 의사결정 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폐쇄적으로 운영해 정부가 정한 정책 추진에 들러리만 서는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스마트시티 추진 전략 같은 거창한 계획만 발표하고 정작 스타트업들이 가려워하는 곳은 긁어주지 않고 있어서다. 비상임 민간위원장이 정치인·관료·이익집단이 결탁한 ‘철의 삼각형’ 기득권 규제를 깰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게 무리였는지 모른다.
정부 역할, 혁명적으로 바꿔야
결국 기득권의 핵심 고리인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바꿔야 한다. 민간을 계도해 산업을 키우고 경제를 이끈다는 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부터 버려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은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하는 것이다. 정부는 민간이 혁신할 수 있는 여건만 마련해 주면 된다. 그러려면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평가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기업을 얼마나 잘 도와 산업이 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느냐가 평가 잣대가 돼야 한다. 무섭게 혁신하고 있는 중국에선 이미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이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며칠 전 장·차관 워크숍에서 “공무원이 혁신 주체가 되지 못하면 혁신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혁신 대상’ 맞다. 이젠 ‘4차 산업혁명 정부’로 환골탈태한다는 각오를 할 때다. 더 이상 규제에 좌절하는 스타트업은 없어야 한다.
chabs@hankyung.com
교묘한 규제에 막힌 혁신
안 되겠다 싶었던 후배는 “허락받고 시작하지 말고, 저지르고 용서받자”는 생각으로 일을 벌였다. 시장을 빼앗기게 된 택시기사 등이 반발했고, 서울시는 ‘불법 딱지’를 붙였다. 그러나 ‘심야시간 택시 잡기 어려운 시민들에게 저렴한 공유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왜 막느냐’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서울시는 이 사업을 조건부로 허용했다. 공유버스 사업권은 여객운수사업법상 여객 운송이 가능한 서울시택시조합이 갖고, 그 후배는 관련 소프트웨어만 제공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택시 손님을 빼앗아가는 심야 공유버스를 택시조합이 적극적으로 늘렸을 리 만무하다. 콜버스라는 이 공유버스는 현재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스타트업계에 차고 넘친다. 신기술과 아이디어로 새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면 기존 사업자가 반발하고, 공무원은 일단 막는다. 논란 끝에 시장 진입이 허용돼도 교묘한 규제로 사업 확장을 옥죈다. 인터넷은행 P2P(개인 간 거래)대출 등 핀테크 사업이 그렇고, 카풀 앱(응용프로그램) 등 공유 서비스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한국의 스타트업이 고만고만한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 뿐 글로벌 벤처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이런 규제환경을 확 뜯어고칠 것으로 기대를 모은 게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였다. 각 부처 정책을 조정할 수 있도록 총리급 민간위원장을 두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이 부위원장을 맡게 한다는 구상에 업계는 반색했다. 그러나 작년 10월 출범한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벌써부터 과기정통부 산하의 일개 위원회로 전락해 공무원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간 회의 내용이나 의사결정 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폐쇄적으로 운영해 정부가 정한 정책 추진에 들러리만 서는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스마트시티 추진 전략 같은 거창한 계획만 발표하고 정작 스타트업들이 가려워하는 곳은 긁어주지 않고 있어서다. 비상임 민간위원장이 정치인·관료·이익집단이 결탁한 ‘철의 삼각형’ 기득권 규제를 깰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게 무리였는지 모른다.
정부 역할, 혁명적으로 바꿔야
결국 기득권의 핵심 고리인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바꿔야 한다. 민간을 계도해 산업을 키우고 경제를 이끈다는 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부터 버려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은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하는 것이다. 정부는 민간이 혁신할 수 있는 여건만 마련해 주면 된다. 그러려면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평가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기업을 얼마나 잘 도와 산업이 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느냐가 평가 잣대가 돼야 한다. 무섭게 혁신하고 있는 중국에선 이미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이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며칠 전 장·차관 워크숍에서 “공무원이 혁신 주체가 되지 못하면 혁신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혁신 대상’ 맞다. 이젠 ‘4차 산업혁명 정부’로 환골탈태한다는 각오를 할 때다. 더 이상 규제에 좌절하는 스타트업은 없어야 한다.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