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성폭력 없어지는 순간까지 '미투' 동참 이어질 것"
"피해자 발언을 '진술'로 여기고 비난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돼"
"'미투' 운동 한국이 먼저… 피해자, 조직 안떠나는 선례 보여야"
서지현 검사가 8년 전 자신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이후 한국에서도 '미투(#metoo)'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서 검사 이후 경기도의회 이효경(더불어민주당·성남1) 의원과 경찰대 출신으로 경찰청에서 근무하다 언론인으로 이직한 임보영 뉴스타파 기자가 과거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혔고, 각계의 응원도 이어졌다.

학계와 여성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미투' 운동의 확산에는 지난 2016년 '문화예술계 성폭력' 폭로와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여성 묻지마 살인사건 등 저류가 있다고 진단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미국의 '미투' 운동보다 1년 앞선 2016년 10월 한국에는 문화계 성폭력 고발이 있었다"면서 "여성은 성폭력에 대한 폭로를 끊임없이 해왔지만, 우리 사회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문화예술계 성폭력 고발이 주로 수습생 등 사회적 지위가 확고하지 않은 여성들이 주도했다면, 서 검사 이후의 폭로는 계층적으로 높은 여성들이 동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윤김 교수는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여성이라면 여전히 성적으로 착취당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처벌을 받는 판례를 남기고 피해자가 조직에서 소외되거나 조직을 떠나지 않는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김 교수는 "서 검사의 용기가 한시적으로만 박수를 받고 커리어를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면 이런 용기 있는 내부고발은 다시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투' 운동 한국이 먼저… 피해자, 조직 안떠나는 선례 보여야"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폭력 폭로 운동은 한국에서 먼저 시작됐는데도 기본적으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이 낮고 언론도 성폭력을 여성들만의 문제로 축소해 더는 확산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 교수는 한국에서 여성이 성폭력을 고발하면 가해자는 대부분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부인하고, 주변인들은 가해자에 대해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옹호하며, 뒤이어 이른바 '꽃뱀론'이 등장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인·옹호·꽃뱀론은 전형적인 스토리"라며 "남성심리 속에 사실상 가해 경험이 있어서 가해자 두둔과 피해자 비난이 동시에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서 검사의 폭로에 대해 "고위직 전문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발언을 들으면 일반 여성들은 어떤 상황일까 상상할 수 있다"며 "여성인권을 위한 '미투' 운동은 성폭력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조현욱 여성변호사회 회장은 '미투' 캠페인이 한국에서 뒤늦게 확산한 이유에 관해 "누구도 용기 있게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는 문화적 영향이 컸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조 회장은 "유교 문화에서 피해자를 보듬고 다독여주기보다 피해 내용을 발설한 데 대한 2·3차 피해가 잦고, '뭔가 (피해를 볼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보는 시선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미투 캠페인이) 계속 확산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피해자들도 용기를 내서 수면 위로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며 "동참이 이어지지 않으면 이번 일도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 한국이 먼저… 피해자, 조직 안떠나는 선례 보여야"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20∼30대는 교육을 통해 평등한 성 인식을 하고 있지만, 실제 조직 운영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40∼60대에 의해 운영되면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결국 세대 간 가치 갈등"이라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미투 운동의 의의를 '반응을 일으키는 최소한의 자극'을 뜻하는 물리학의 '역치' 개념을 빌려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투 운동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유의미한 가치공동체가 생기며, 그러며 미투 운동에 참여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불이익도 없다고 확신하게 됨으로써 운동이 더욱 확산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피해자들의 폭로는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과 우리 사회가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야 얘기하느냐', '묻고 사는 게 낫다', '너도 뭔가 잘못한 게 있었겠지'라고 반응해 들리지 않았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 부소장은 성폭력 신고율이 높아야 10% 안팎에 불과하다는 최근의 실태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말할 수 있게 되면 대단히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성변호사회는 조만간 회원들과 전문직 여성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진행해 실태 파악을 한 뒤 대응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여성단체들도 검찰과 정부의 대응을 주시하고 성폭력 근절을 위한 활동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