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시리도록 눈부신 그대, 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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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경의 포르투갈 대발견 (1) 파두가 흐르는 언덕의 도시, 리스본
구불구불 언덕길 "툭툭 타세요"… 상 조르제 城의 노을은 황홀했다
구불구불 언덕길 "툭툭 타세요"… 상 조르제 城의 노을은 황홀했다
언덕의 도시, 빈티지 트램의 도시, 집집마다 푸른색의 독특한 타일장식인 아줄레주가 반짝이는 도시,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음악인 파두가 시작된 도시 등등.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을 수식하는 표현을 다 나열하려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한마디로 리스본은 여행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도시다. 유럽의 서쪽 끝, 낯설고도 먼 도시를 향해 당장 떠나라고 부추기고 싶을 만큼 다양한 매력을 지녔다. 리스본=글·사진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
포르투갈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지금까지 가 본 나라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여행작가라고 소개했을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망설임 없이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낯선 여행지에 하루를 지내든 한 달을 머물든 쉽게 사랑에 빠지는 이가 여행작가다. 집으로 돌아와선 떠나온 여행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원고를 쓴다. 잠시 지난 여행을 떠올리다 이렇게 말하곤 한다. “포르투갈이 참 좋았어요.” 이때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눈동자를 오른쪽 위로 굴리며 그 나라가 어디 있나 가늠한다. 그리곤 의심의 눈초리로 다시 묻는다. “포르투칼(대부분 사람들이 포르투칼이라 발음하지만 포르투갈이 맞다.)요? 스페인 옆에 있는 조그만 나라요? 거기 볼 게 뭐가 있는데요?”
몰라서 하는 얘기다. 포르투갈을 한 달간 여행한 후 뜻밖의 매력을 발견하고 온 나는 여전히 휴대폰에 리스본의 시간을 입력해 놓고 이따금 들여다본다. 늦은 밤 맥주를 홀짝이며 지금쯤 리스본은 아침이군 하며 트램과 툭툭을 타고 누비던 거리를 떠올리는 것이다. 지금부터 포르투갈에 대해 풀어놓을 계획이다. 연재가 끝날 즈음 누군가는 리스본행 비행기 표를 알아보고 있기를 기대하며.
언덕의 도시 리스본
‘지름길이 돌아가는 길보다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는 포르투갈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을 두고 한 말 같다.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테주 강가에 자리한 리스본은 7개의 언덕으로 이뤄진 도시다. 중심부인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호시우 광장을 잇는 8월의 거리를 제외하면 평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리스본에 처음 온 여행자들은 골목이 많은 언덕길을 헤매기 일쑤다. 하지만 좁은 길을 걷고, 노란 트램을 타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면 눈앞에 뜻밖의 풍경이 선물처럼 펼쳐진다. 트램을 꼭 닮은 푸니쿨라를 타도 마찬가지다. 푸니쿨라를 포르투갈어로는 아센소르(Ascensor)라 부르는데 리스본에는 아센소르 다 글로리아, 아센소르 도 라바, 아센소르 다 비카 총 3개가 있다. 모두 19세기에 만들어져 2002년 국가기념물로 지정됐다. 3가지 중 어떤 아센소르를 타도 전망 좋은 언덕 위에 당도한다.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도 그런 탈 거리 중 하나다.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는 8월의 거리와 언덕 위의 시아두 지역을 잇는 공공 엘리베이터로 1927년 첫 운행을 시작했다. 에펠탑을 지은 구스타프 에펠의 제자, 라울 메스니에르 퐁사르가 설계한 철골 엘리베이터로, 우아한 자태가 아름다워 《죽기 전에 봐야할 건축 1001》 책에도 소개됐다. 100년 묵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15층으로 꼭대기에 닿는 데 여기서 나선형 층층대를 오르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서면, 도시의 언덕과 광장이 한눈에 담긴다. 코메르시우 광장을 향해 쭉 뻗은 8월의 거리, 브라질 최초의 황제가 된 페르도 4세의 동상을 중심으로 오페라 극장, 호시우 기차역으로 둘러싸인 호시우 광장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 뒷길은 카르무 수녀원으로 이어졌다. 1755년 리스본을 강타한 대지진에 지붕이 사라져 버린 남은 수녀원이다. 후세에도 세월이 할퀴고 간 아픔을 잊지 않도록 250년이 넘게 무너지고 훼손된 모습 그대로 두었다.
한편 카르무 수녀원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리스본이 낳은 소설가 페르난도 페소아의 단골 카페 ‘아 브라질레이아’를 만날 수 있다. 1905년 문을 연 ‘아 브라질레이아’는 브라질 원두로 만든 비카를 리스본 최초로 판 카페다. 비카란 이탈리아 에스프레소와 비슷한 포르투갈식 커피를 말한다.
아 브레질리아 앞에는 페르난도 페소아이 동상이 놓여있는데, 페르난도 페소아도 이 카페에서 비카를 홀짝이며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페소아는 이곳에서 소설가들과 모임을 갖고 오르페우라는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아줄레주가 빛나고 파두가 흐르는 알파마
알파마(Alfama)는 리스본에서도 가장 높은 지역이다. 워낙 지대가 높아 1755년 대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리스본에서 아줄레주로 꾸민 집들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줄레주란 ‘반질하게 닦인 돌’이란 뜻에서 유래한 타일 장식으로 타일 위에 색색의 유약으로 그림을 그려넣는 것이 특징이다. 아랍 영향을 받은 포르투갈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아줄레주를 건물 외벽에 붙여 장식해왔다.
알파마 상징 리스본 대성당을 지나 얽히고설킨 골목 안으로 접어들자, 알록달록한 집들이 빼곡하다. 가까이서 보면 저마다 다른 아줄레주 장식으로 꾸민 집들이다. 창문마다 빨래가 바람에 나부끼고 어디선가 애잔한 노래 가락이 흘러나온다. 소리를 쫓아가자 어느 카페 테라스에서 한 여인이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뜻은 몰라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멜로디다. 난생 처음 직접 들어보는 파두(fado)다. 파두란 리스본 서민 사이에서 생겨난 포르투갈 민요로 서민 삶의 애환을 담은 가사와 가슴을 파고드는 애잔 한 가락이 특징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파두에서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지는 이유로 ‘사우다데(Saudade)’를 꼽는다. 사우다데는 한국인의 ‘한’처럼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힘든 포르투갈 고유의 정서를 말한다. 굳이 해석하면 ‘간절한 바람’이라고 한다. 예부터 서민들의 터전이었던 알파마 골목 안에는 파두 하우스가 많다. 파두 박물관도 있다. 1998년 문을 연 파두 박물관에선 200년이 넘는 파두의 역사와 대표적인 파두 가수를 두루 살펴 볼 수 있다.
매주 수요일엔 파두 워크숍도 있다. 파두 박물관을 찾은 날 때 마침 수요일이었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배워 볼까 하는 마음에 용기를 내 워크숍에 등록을 했다.
“안녕하세요. 파두 가수 리아나입니다. 파두가 숙명이란 뜻의 라틴어 파툼(Fatum)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거 아세요? 저도 9살 때 운명처럼 파두를 배워 지금껏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여러분도 곧 저와 함께 노래하게 될 거예요. 가사의 뜻을 알고 부르면 더 흥미롭답니다. 파두는 파두 전용 기타와 베이스 반주에 맞춰 목소리를 내지요. 자, 기타 연주부터 들어볼까요?”
포르투갈어 까막눈인 나는 어느 새 아무리 거리를 헤매도 당신을 찾을 수 없다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발음이 어려웠지만,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이 많지 않아 입만 뻥긋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랑 이야기인 줄로 알았던 가사에 독재 시절 자유 향한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는 설명을 듣자 노래가 더 좋아졌다. 결국 파두 박물관에서 발행한 수료증을 들고 여전히 햇살이 쏟아지는 거리로 나섰다. 발걸음을 옮기는데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방금 배운 파두 한 소절이었다.
툭툭 타고 전망대 투어
“툭툭 타실래요? 알파마보다 높은 그라사까지 데려다줄게요.”
트램 정류장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툭툭을 모는 젊은이가 말을 걸어온다. 안 그래도 태국에서 보던 삼륜차 툭툭이 왜 리스본을 활보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참이었다. 리스본의 한 청년 창업가가 알파마의 가파른 언덕을 누비는 투어 상품으로 툭툭을 도입하며 붐이 일었단다. 작고 귀여운 모양에 걸어가다 발병 날 것 같은 언덕이나, 트램도 들어가기 힘든 골목까지 갈 수 있어 인기란다. 설명도 들었겠다, 툭툭을 타고 알파마와 그라사의 언덕마다 포진한 전망대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알파마를 누비는 재미가 기대 이상이다. 여러 성당 앞을 지나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세뇨라 두 몽테’ 전망대 앞에 닿았다. 성모의 언덕 위에 자리한 이곳은 ‘고도’로는 리스본 상위 1% 전망대다. 전망대 끝 발코니에 서자, 4월25일의 다리가 놓인 테주강부터 그라사 전망대까지 리스본 언덕들이 빚어내는 풍광에 가슴이 탁 트인다. 이어서 찾은 곳은 ‘그라사 전망대’다. 영광의 성당이란 뜻의 그라사 성당 앞에 있어서 ‘그라사 전망대’라 불린다. 겉은 무척 소박해도 속은 엄청나게 화려한 그라사 성당 안에 잠시 들렀다 전망대에 끝에 섰다. 앞으로는 상 조르제성과 테주강이 펼쳐지고 뒤로는 소나무 아래 노천카페의 분위기가 무척 활기차다. 테이블이 자리를 잡고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자 리스본을 다 가진 기분이다. 하염없이 그곳에 머물고 싶었지만, 해가 지기 전에 상 조르제 성에 오르기 위해 힘든 걸음을 뗐다.
상조르제 성 위에 올라 마주한 노을
언덕 위에서 리스본 시내를 굽어보는 상 조르제 성은 11세기에 포르투갈을 점령한 아랍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1137년 엔리케 왕이 리스본을 탈환하며 황금기를 맞이했지만, 그 이후 스페인 침략을 받으며 부침을 거듭했다. 1371년 포르투갈의 캐서린 공주와 영국의 찰스 왕세자의 결혼으로 양국이 우호 협정을 맺을 때, 포르투갈이 영국의 수호성인 세인트 조지에게 성을 헌정하며 그의 이름을 따 상 조르제 성이라 부르게 됐다.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건물은 많이 훼손됐지만, 탄탄하게 쌓은 성벽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면 구불구불 미로 같은 알파마의 골목길, 테주강을 가르며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다가오는 페리, 그라사 전망대, 강 건너 알마다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왜 포르투갈 침략국이 이곳을 탐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전망이다. 어느 새 성벽 위로 눈이 시리게 황홀한 노을이 내려앉는다. 석양에 물든 리스본은 10배는 더 아름다워 보인다. 성벽 곳곳에 빌트인 가구처럼 장착된 의자에는 연인들이 다정하게 앉아 있다. 홀로 성벽 위에 서 있는 내 어깨 위로도 금빛 햇살이 쏟아졌다. 그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 순간이 또렷이 떠오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 한 달간 포르투갈을 떠돌며 이런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될 것도, 그 가슴 벅찬 순간들이 모여 잊지 못할 여정이 될 것이란 예감도.
리스본 여행 정보
서울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직항은 아직 없다. 유럽의 주요 도시를 경유해 리스본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국보다 9시간 늦으며 전압은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220V를 쓴다. 지중해성 기후로 사계절이 뚜렷하며 사계절 일조량이 풍부하다. 연평균 기온은 13~38도다. 언어는 포르투갈어지만 리스본의 관광지, 호텔, 레스토랑에선 영어가 잘 통한다. 화폐는 유로를 쓰며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서유럽 국가에 비해 물가가 저렴한 편이다.
리스본=글·사진 우지경 작가 traveletter@naver.com
포르투갈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지금까지 가 본 나라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여행작가라고 소개했을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망설임 없이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낯선 여행지에 하루를 지내든 한 달을 머물든 쉽게 사랑에 빠지는 이가 여행작가다. 집으로 돌아와선 떠나온 여행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원고를 쓴다. 잠시 지난 여행을 떠올리다 이렇게 말하곤 한다. “포르투갈이 참 좋았어요.” 이때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눈동자를 오른쪽 위로 굴리며 그 나라가 어디 있나 가늠한다. 그리곤 의심의 눈초리로 다시 묻는다. “포르투칼(대부분 사람들이 포르투칼이라 발음하지만 포르투갈이 맞다.)요? 스페인 옆에 있는 조그만 나라요? 거기 볼 게 뭐가 있는데요?”
몰라서 하는 얘기다. 포르투갈을 한 달간 여행한 후 뜻밖의 매력을 발견하고 온 나는 여전히 휴대폰에 리스본의 시간을 입력해 놓고 이따금 들여다본다. 늦은 밤 맥주를 홀짝이며 지금쯤 리스본은 아침이군 하며 트램과 툭툭을 타고 누비던 거리를 떠올리는 것이다. 지금부터 포르투갈에 대해 풀어놓을 계획이다. 연재가 끝날 즈음 누군가는 리스본행 비행기 표를 알아보고 있기를 기대하며.
언덕의 도시 리스본
‘지름길이 돌아가는 길보다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는 포르투갈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을 두고 한 말 같다.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테주 강가에 자리한 리스본은 7개의 언덕으로 이뤄진 도시다. 중심부인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호시우 광장을 잇는 8월의 거리를 제외하면 평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리스본에 처음 온 여행자들은 골목이 많은 언덕길을 헤매기 일쑤다. 하지만 좁은 길을 걷고, 노란 트램을 타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면 눈앞에 뜻밖의 풍경이 선물처럼 펼쳐진다. 트램을 꼭 닮은 푸니쿨라를 타도 마찬가지다. 푸니쿨라를 포르투갈어로는 아센소르(Ascensor)라 부르는데 리스본에는 아센소르 다 글로리아, 아센소르 도 라바, 아센소르 다 비카 총 3개가 있다. 모두 19세기에 만들어져 2002년 국가기념물로 지정됐다. 3가지 중 어떤 아센소르를 타도 전망 좋은 언덕 위에 당도한다.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도 그런 탈 거리 중 하나다.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는 8월의 거리와 언덕 위의 시아두 지역을 잇는 공공 엘리베이터로 1927년 첫 운행을 시작했다. 에펠탑을 지은 구스타프 에펠의 제자, 라울 메스니에르 퐁사르가 설계한 철골 엘리베이터로, 우아한 자태가 아름다워 《죽기 전에 봐야할 건축 1001》 책에도 소개됐다. 100년 묵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15층으로 꼭대기에 닿는 데 여기서 나선형 층층대를 오르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서면, 도시의 언덕과 광장이 한눈에 담긴다. 코메르시우 광장을 향해 쭉 뻗은 8월의 거리, 브라질 최초의 황제가 된 페르도 4세의 동상을 중심으로 오페라 극장, 호시우 기차역으로 둘러싸인 호시우 광장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 뒷길은 카르무 수녀원으로 이어졌다. 1755년 리스본을 강타한 대지진에 지붕이 사라져 버린 남은 수녀원이다. 후세에도 세월이 할퀴고 간 아픔을 잊지 않도록 250년이 넘게 무너지고 훼손된 모습 그대로 두었다.
한편 카르무 수녀원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리스본이 낳은 소설가 페르난도 페소아의 단골 카페 ‘아 브라질레이아’를 만날 수 있다. 1905년 문을 연 ‘아 브라질레이아’는 브라질 원두로 만든 비카를 리스본 최초로 판 카페다. 비카란 이탈리아 에스프레소와 비슷한 포르투갈식 커피를 말한다.
아 브레질리아 앞에는 페르난도 페소아이 동상이 놓여있는데, 페르난도 페소아도 이 카페에서 비카를 홀짝이며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페소아는 이곳에서 소설가들과 모임을 갖고 오르페우라는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아줄레주가 빛나고 파두가 흐르는 알파마
알파마(Alfama)는 리스본에서도 가장 높은 지역이다. 워낙 지대가 높아 1755년 대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리스본에서 아줄레주로 꾸민 집들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줄레주란 ‘반질하게 닦인 돌’이란 뜻에서 유래한 타일 장식으로 타일 위에 색색의 유약으로 그림을 그려넣는 것이 특징이다. 아랍 영향을 받은 포르투갈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아줄레주를 건물 외벽에 붙여 장식해왔다.
알파마 상징 리스본 대성당을 지나 얽히고설킨 골목 안으로 접어들자, 알록달록한 집들이 빼곡하다. 가까이서 보면 저마다 다른 아줄레주 장식으로 꾸민 집들이다. 창문마다 빨래가 바람에 나부끼고 어디선가 애잔한 노래 가락이 흘러나온다. 소리를 쫓아가자 어느 카페 테라스에서 한 여인이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뜻은 몰라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멜로디다. 난생 처음 직접 들어보는 파두(fado)다. 파두란 리스본 서민 사이에서 생겨난 포르투갈 민요로 서민 삶의 애환을 담은 가사와 가슴을 파고드는 애잔 한 가락이 특징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파두에서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지는 이유로 ‘사우다데(Saudade)’를 꼽는다. 사우다데는 한국인의 ‘한’처럼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힘든 포르투갈 고유의 정서를 말한다. 굳이 해석하면 ‘간절한 바람’이라고 한다. 예부터 서민들의 터전이었던 알파마 골목 안에는 파두 하우스가 많다. 파두 박물관도 있다. 1998년 문을 연 파두 박물관에선 200년이 넘는 파두의 역사와 대표적인 파두 가수를 두루 살펴 볼 수 있다.
매주 수요일엔 파두 워크숍도 있다. 파두 박물관을 찾은 날 때 마침 수요일이었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배워 볼까 하는 마음에 용기를 내 워크숍에 등록을 했다.
“안녕하세요. 파두 가수 리아나입니다. 파두가 숙명이란 뜻의 라틴어 파툼(Fatum)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거 아세요? 저도 9살 때 운명처럼 파두를 배워 지금껏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여러분도 곧 저와 함께 노래하게 될 거예요. 가사의 뜻을 알고 부르면 더 흥미롭답니다. 파두는 파두 전용 기타와 베이스 반주에 맞춰 목소리를 내지요. 자, 기타 연주부터 들어볼까요?”
포르투갈어 까막눈인 나는 어느 새 아무리 거리를 헤매도 당신을 찾을 수 없다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발음이 어려웠지만,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이 많지 않아 입만 뻥긋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랑 이야기인 줄로 알았던 가사에 독재 시절 자유 향한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는 설명을 듣자 노래가 더 좋아졌다. 결국 파두 박물관에서 발행한 수료증을 들고 여전히 햇살이 쏟아지는 거리로 나섰다. 발걸음을 옮기는데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방금 배운 파두 한 소절이었다.
툭툭 타고 전망대 투어
“툭툭 타실래요? 알파마보다 높은 그라사까지 데려다줄게요.”
트램 정류장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툭툭을 모는 젊은이가 말을 걸어온다. 안 그래도 태국에서 보던 삼륜차 툭툭이 왜 리스본을 활보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참이었다. 리스본의 한 청년 창업가가 알파마의 가파른 언덕을 누비는 투어 상품으로 툭툭을 도입하며 붐이 일었단다. 작고 귀여운 모양에 걸어가다 발병 날 것 같은 언덕이나, 트램도 들어가기 힘든 골목까지 갈 수 있어 인기란다. 설명도 들었겠다, 툭툭을 타고 알파마와 그라사의 언덕마다 포진한 전망대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알파마를 누비는 재미가 기대 이상이다. 여러 성당 앞을 지나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세뇨라 두 몽테’ 전망대 앞에 닿았다. 성모의 언덕 위에 자리한 이곳은 ‘고도’로는 리스본 상위 1% 전망대다. 전망대 끝 발코니에 서자, 4월25일의 다리가 놓인 테주강부터 그라사 전망대까지 리스본 언덕들이 빚어내는 풍광에 가슴이 탁 트인다. 이어서 찾은 곳은 ‘그라사 전망대’다. 영광의 성당이란 뜻의 그라사 성당 앞에 있어서 ‘그라사 전망대’라 불린다. 겉은 무척 소박해도 속은 엄청나게 화려한 그라사 성당 안에 잠시 들렀다 전망대에 끝에 섰다. 앞으로는 상 조르제성과 테주강이 펼쳐지고 뒤로는 소나무 아래 노천카페의 분위기가 무척 활기차다. 테이블이 자리를 잡고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자 리스본을 다 가진 기분이다. 하염없이 그곳에 머물고 싶었지만, 해가 지기 전에 상 조르제 성에 오르기 위해 힘든 걸음을 뗐다.
상조르제 성 위에 올라 마주한 노을
언덕 위에서 리스본 시내를 굽어보는 상 조르제 성은 11세기에 포르투갈을 점령한 아랍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1137년 엔리케 왕이 리스본을 탈환하며 황금기를 맞이했지만, 그 이후 스페인 침략을 받으며 부침을 거듭했다. 1371년 포르투갈의 캐서린 공주와 영국의 찰스 왕세자의 결혼으로 양국이 우호 협정을 맺을 때, 포르투갈이 영국의 수호성인 세인트 조지에게 성을 헌정하며 그의 이름을 따 상 조르제 성이라 부르게 됐다.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건물은 많이 훼손됐지만, 탄탄하게 쌓은 성벽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면 구불구불 미로 같은 알파마의 골목길, 테주강을 가르며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다가오는 페리, 그라사 전망대, 강 건너 알마다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왜 포르투갈 침략국이 이곳을 탐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전망이다. 어느 새 성벽 위로 눈이 시리게 황홀한 노을이 내려앉는다. 석양에 물든 리스본은 10배는 더 아름다워 보인다. 성벽 곳곳에 빌트인 가구처럼 장착된 의자에는 연인들이 다정하게 앉아 있다. 홀로 성벽 위에 서 있는 내 어깨 위로도 금빛 햇살이 쏟아졌다. 그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 순간이 또렷이 떠오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 한 달간 포르투갈을 떠돌며 이런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될 것도, 그 가슴 벅찬 순간들이 모여 잊지 못할 여정이 될 것이란 예감도.
리스본 여행 정보
서울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직항은 아직 없다. 유럽의 주요 도시를 경유해 리스본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국보다 9시간 늦으며 전압은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220V를 쓴다. 지중해성 기후로 사계절이 뚜렷하며 사계절 일조량이 풍부하다. 연평균 기온은 13~38도다. 언어는 포르투갈어지만 리스본의 관광지, 호텔, 레스토랑에선 영어가 잘 통한다. 화폐는 유로를 쓰며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서유럽 국가에 비해 물가가 저렴한 편이다.
리스본=글·사진 우지경 작가 travelett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