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는 조선시대 규방문화의 소산이다. 엄격한 유교사회에서 사회적 활동이 제한된 양반집 규수들의 생활 공간이던 규방에서 생성된 생활예술이었다. 조각천을 활용해 기하학적이고 창의적인 패턴의 멋스러운 디자인을 생활 속에 활용하고 예물용 및 장식용으로 많이 제작했다. 구성과 색채의 아름다움과 절묘함을 갖춘 조각보는 최근 현대미술의 이색적인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추상화가 문혜경 씨(60)는 조각보에서 작업의 영감을 얻거나 응용하는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상명대와 홍익대 미대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문씨는 천을 박음질하고 콜라주하는 방법으로 화려한 색채의 평면을 구현해왔다.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조각보 추상화가 문혜경 씨.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문씨가 오는 22일까지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펼친다. 2015년 롯데갤러리 초대전 이후 3년 만에 여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색을 짓다’. 천 조각을 침선으로 잇대어 아기자기한 화면을 구성한 대작 30여 점을 걸었다. 작은 천조각이 만들어낸 화면에서 색다른 미감을 엿볼 수 있다.
문씨는 “유난히 한복을 즐겨 입던 친정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에 관한 얘기를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시각 언어로 담담히 써내려갔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서양의 추상화 장르에 전념하던 문씨가 처음 조각보 작업을 시작한 것은 1999년이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던 중 아픔을 잊기 위해 조각보 아트에 빠져들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생각에 2005년부터 염색과 마름질, 자수 등을 배워 색면 추상화 작업에 몰입했다.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천 조각을 잇고 붙여 과거와 현재가 관통하는 미학으로 재탄생시켰다.
고통스런 순간을 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과 꿈·행복·애환을 담아내려 애쓰면서 젊은 시절 아련한 기억을 무한한 상상력과 생명력으로 되살려냈다. 최근에는 친정어머니가 입었던 한복을 소재로 활용해 가슴 한쪽 숨겨둔 모성애를 표현해내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인 조각보와 한복을 기하학적 무늬로 추상의 세계를 승화한 그의 작업은 파격이었다.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의 다섯 가지 기본색인 ‘오방색’의 천조각으로 박음질하고 콜라주한 구성은 독특한 재미와 더불어 색면에 탄력이 실려 빛을 발한다. 알록달록한 화면들은 극도로 절제된 구도 속에 밑에서부터 색이 배어 나오도록 여러 겹 수놓은 복잡한 색면으로 구성돼 사색적이고 시적이며 또 종교적이기도 하다.
문씨는 자신이 조각보에 반한 이유에 대해 “조선시대 규방문화의 소산인 조각보의 아름다운 구성과 색채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어떤 색과도 어울리는 그 포용력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답했다. 문씨는 이 전시회가 끝난 뒤 다음달 8일부터 두 달간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연다.
포토 스폿으로 유명한 죽성드림세트장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기장시장이 자리한다. 기장 미역, 다시마, 멸치, 곰장어와 붕장어, 생갈치 등 기장 대표 특산물도 모두 기장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싱싱한 해산물과 왁자한 로컬의 멋이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기장시장은 여느 마트, 시장보다 저렴한 가격으로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주머니가 텅 비어도 배와 손은 기장의 먹거리로 꽉 차게 되는 기장시장, 봄에는 미역과 멸치장이 서고, 가을에는 갈치장이 선다. 가격도 저렴하다. 사장님 특수 비법으로 만들었다는 양념게장은 한 가득 담아 1만원에 팔고 곰장어나 붕장어회도 한 팩에 1만~1만5000원 선이다. "세종이 어머니 원경왕후에게 드린기장 전복죽 맛보고, 대변항에서는 멸치 축제"기장을 대표하는 음식들은 일품인 맛에 영양가도 풍부하다. 최근 인기리에 방송된 드라마 <원경>에도 등장한 기장 전복 이야기를 들어보자. “부산포 기장에서 올라온 진상품 전복으로 끓인 것입니다. 바다의 산삼이라 하니 부디 어마마마, 남기지 말고 드십시오.” 어머니 원경황후에게 아들 세종이 전복죽을 올리며 건넨 말이다. 기장 연화리 마을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기장해녀촌은 해녀들이 직접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을 거래하고, 맛도 볼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구수한 입담과 손맛으로 멍게에 산낙지, 개불 등을 가득 담은 해산물 모둠과 우리나라에 으뜸가는 기장 전복죽도 일대에서 맛볼 수 있다. 연화리 마을에서 멀잖은 거리에는 국내 최대 멸치 산지로 손꼽히는 대변항이 자리한다. 기장 멸치에 손맛을 더한 다양한 별미 음식도 대변항에서 두루 즐길 수 있다. 멸치회
극장과 전시관이 여럿 모여 있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는 다른 곳과 성격이 좀 다른 시설이 하나 있다. 드나드는 사람이 많지 않아 언제나 한적한 곳, 디자인미술관 2·3층에 있는 예술기록원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예술기록원은 각 예술 분야의 다양한 자료들을 수집·보존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일을 해왔는데, 지금도 2층 열람실에서 조촐하지만 의미 있는 전시를 3월 말까지 진행하고 있다. 전설적인 음악감상실 '르네쌍스'가 이번 전시의 주제다.당대 제일가는 음반수집가로 꼽혔던 박용찬이 1951년부터 30년 넘게 운영했던 르네쌍스. 누적된 적자로 어려움을 겪다가 1986년에 결국 문을 닫고 말았으나, 르네쌍스의 귀중한 SP음반 자료는 다행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신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 모두 기증됐다. 르네쌍스 SP음반 내용 대부분은 외국에서 녹음된 서양 고전음악이지만, 1910~1940년대 한국 음악도 일부 포함돼 있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한국 SP음반에 초점을 맞췄다.그냥 눈으로 보기만 하면 10분도 걸리지 않을 전시에서 관객의 발과 귀를 잡아 두는 곳은 SP음반 소리를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 직접 들어 볼 수 있게 제공하는 장소다. '판소리 명창전', '청춘의 조선 양악' 두 주제로 열여덟 곡이 준비돼 있다. 음반이 겪어 온 길고 험난했던 세월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잡음이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곡마다 깃들어 있는 깊고 흥미로운 이야기는 그런 부담을 많이 덜어 주기도 한다. 두 가지 녹음을 함께 들을 수 있어 특히 눈길을 끄는 <그리운 강남>도 그렇게 이야기가 많은 노래다.<그리운 강남>은 3월, 정확히 말하면 강남 갔던
국민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시조의 한 구절이 절로 읊어지는 요즈음이다. 참말로 시절(時節)이 하 수상(殊常)하니 잠시 고국산천(故國山川)을 떠나야 할 터, 청음 김상헌의 시조 구절을 읊으며 떠날 곳 아니, 쉴 곳을 간절하게 찾았다.산스트리트어로 평화를 의미한다는 아만(Aman), 우연한 기회로 방문했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아만 베니스 이후 잠재적 아만 정키(Aman Junkie), 전 세계 곳곳에 위치한 아만 체인을 목표지점으로 여행을 다니는 아만의 골수팬이 되었으니, 아만이 주는 그 우아한 평화가 더없이 그리워졌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아만은 인도양의 진주, 스리랑카 남서쪽 바다에 면한 옛 화란인들의 요새 도시 갈레(galle)에 위치한 '아만 갈라'이 되었다.느리기로 악명 높다던 스리랑카 항공! 다행히 오버부킹으로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가 당첨되면서 아주 편안하고 행복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도로 사정 역시 녹록지 않다는 소문과 달리,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근처에 위치한 공항에서 아만 갈라가 위치한 갈레까지는 고속도로가 잘 놓여져 그리 힘들지 않게 도착했다.오는 길에 창밖으로 간간이 보이는 야자수들과 흰 새들이 노니는 거대한 논은 이곳이 쌀을 취하는 나라이며, 아직은 자연과 인공이 잘 조화되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공항에서 아만 표지판을 들고 우리를 맞이하던 직원의 따뜻한 미소는 내 나라에 두고 온 불경기와 혼탁한 정세가 유발한 육중한 고심의 짐과 8시간이라는 만만찮은 비행시간의 피로를 싹 잊게 한다.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는 이유가 이런 것이겠지?어스름한 시간에 도착한 화란인들의 옛 요새 도시 갈레는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이라는 타이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