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죄를 다투는 항소심(2심) 선고재판이 5일 열린다. 지난해 8월 말 1심에서 5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지 5개월여 만이다. 1심은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간에 구체적 청탁은 오가지 않았지만 ‘경영권 승계’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이는 이심전심의 청탁이 가능한지, 그것을 유죄 근거로 삼을 수 있는지에 대한 큰 논란을 불렀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지난달 말 결심공판에 직접 나와 1심 때와 동일한 12년형을 구형했다.
이심전심으로 청탁?… 2심 재판부의 판단은
◆승마 지원의 ‘뇌물 인정 여부’가 승부처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가 맡은 항소심은 오후 2시에 개시된다. 형량 선고는 30분쯤 뒤 나올 전망이다. 핵심 쟁점은 1심에서 유죄를 받은 뇌물죄에 대한 판단이다. 1심 재판부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 현안’을 놓고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묵시적 청탁’이 오갔다고 봤다. 구체적 청탁은 없었지만 암묵적인 청탁이 인정된다는 취지였다. 또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공모해 사실상 ‘한 몸’이라고 판단했다.

특검은 1심에 이어 항소심 과정에서도 공소장 내용을 세 번이나 변경했다. 그러면서 1심에서 ‘단순 뇌물죄’로 기소한 최씨 딸 정유라 씨 등에 대한 삼성의 승마 지원에 ‘제3자 뇌물’ 혐의를 예비적으로 추가했다. 2심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한 몸을 인정받지 못할 경우 제3자 뇌물죄를 적용받겠다는 전략이다. 단순뇌물죄는 당사자에게 직접 뇌물을 줬을 때만 해당된다. 반면 제3자 뇌물죄가 선고되려면 ‘부정한 청탁’의 구체성이 확인돼야 한다. 1심은 부정한 청탁의 구체적 증거가 없다고 봤다.

특검이 항소심 내내 ‘0차 독대’를 거론하며 부정한 청탁을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부정한 청탁이 인정되면 해당 뇌물액은 횡령과 재산국외도피죄의 인정액에도 영향을 줘 형량이 늘어날 수 있다. 양측으로서는 물러설 수 없는 ‘외나무 다리’인 셈이다.

◆‘저인망’식 특검의 항소 전략 논란

재판부가 ‘0차 독대’를 인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0차 독대’와 관련해 이 부회장의 안가 출입 기록을 확인해 달라는 변호인단 요청에 청와대 경호처가 ‘기록을 갖고 있지 않다’고 회신했기 때문이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증거로 제시된 일부 증인의 진술도 구체성이나 명확성이 떨어져 증거로 채택하기 곤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설사 0차 독대가 있었더라도 부정한 청탁의 구체성은 또 다른 문제여서 제3자 뇌물죄 인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1심처럼 단순뇌물죄로 가야 할 텐데 이 또한 법리가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뇌물죄에 대한 무죄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특검이 항소 사유로 내세운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금’ 성격에 대한 항소심 판단도 관심이다. 1심에선 부정한 청탁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공소장의 ‘제3자 뇌물죄’를 무죄로 판정했다. 이에 특검은 공소장 변경을 통해 항소심에선 단순뇌물죄를 예비적으로 추가했다.

결과적으로 1심에서 단순뇌물죄로 기소한 승마 지원에는 제3자 뇌물죄가, 제3자 뇌물죄로 기소한 재단 지원은 단순뇌물죄 혐의가 추가됐다. 명확한 사실관계에 기초해야 할 공소가 뇌물죄 성격 규정도 제대로 안 된 채 진행된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뭐라도 걸려라’는 식의 무책임한 기소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