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출신 붙이고 건국·동국·숭실대 출신 등 떨어뜨려
지난 4일 저녁 건국대 학보사 ‘건대신문’ 온라인판에 게재된 기사 제목이다. KEB하나은행이 2016년 신입 행원 공개채용에서 임원면접 점수를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와 외국 대학 출신에게는 높게 줘 합격시키고, 이들을 제외한 다른 대학 출신에는 낮게 줘 탈락시켰다는 점을 풍자한 표현이다. 원래 합격권이었다가 탈락한 7명 안에 건국대 출신이 2명 포함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심상정 의원(정의당)이 입수해 공개한 금융감독원 보고 자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원래대로라면 불합격인 고려대(3명) 서울대(2명) 연세대(1명) 위스콘신대(1명) 출신의 면접 점수를 0.35~2.4점 올려 합격시켰다. 대신 건국대를 비롯해 동국대 숭실대 한양대(에리카캠퍼스) 명지대 가톨릭대 출신의 면접 점수를 0.5~1.3점 깎아 불합격시킨 것이다.
‘건국대라 죄송합니다’ 기사는 곧장 건대신문의 ‘최근 인기기사’ 맨 윗자리에 올랐다. 건대신문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기사를 링크하면서 ‘#건송합니다’ 해시태그를 달았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와 유사한 자조적 의미다.
하나은행 측은 금감원 조사 결과를 부인했다. 하나은행이 입점한 거래 대학 출신을 채용했다는 해명이다. 실제로는 명지대에도 하나은행이 입점해 있어 해명이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하나은행 측은 청탁과 특혜채용 지시가 없었다는 점에서 채용비리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법적인 채용비리 사실 여부와 별개로 특정 대학 출신에 임의로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 면접 점수를 조작한 정황은 확인됐다. 막연히 짐작해온 채용시 학벌 차별이 실제로 드러나 파문을 예고했다. “○○대라 죄송합니다”는 내용의 ‘미투(나도 피해자) 운동’이 대학가에 확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해온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은 6일 하나은행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하나은행을 규탄할 계획이다. 사걱세는 “공정한 경쟁에 대한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출신 학교를 주홍글씨로 새겨 차별해 청년들에게 좌절감과 분노를 안겼다”면서 “학벌 차별로 고통 받은 피해자들을 원고로 모집해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피해자 출신 대학들이 구체적 액션을 취하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5일 오전 3~4개 해당 대학에 확인한 결과 “현 시점에서 채용비리 관련 학교 차원 대응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한 취업 컨설턴트는 “사실 업계에서는 학벌 메리트(장점)가 음으로 양으로 작용하는 관행을 알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수도권의 대학 취업 담당 부서 관계자도 “대학이 공식적으로 문제 삼기는 어려울 것이다. 채용 건은 어쨌든 기업이 ‘갑’ 아니냐”고 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