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한경닷컴과 인터뷰한 한만수 동국대 교수.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사진=최혁 기자
2일 한경닷컴과 인터뷰한 한만수 동국대 교수.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사진=최혁 기자
“왜 8년 전 일을 이제 와서…” 검찰 고위간부의 성추행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에게 쏟아지는 관심 중에는 이런 시선도 분명 있다.

“그거, 정말 잘못된 반응이에요.”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인 한만수 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사진)가 바로잡았다. “8년 동안 얼마나 아팠니, 라고 물어야죠. 책임 있는 위치의 사람들은 8년 동안이나 해결 못해 미안하다, 사과하는 게 먼저고요.”

지난 2일 동국대 만해관 교수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한 교수는 그런 ‘외부자’들의 무심한 눈빛이 아팠다고 회고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그는 학교 교수협의회장 시절 논문표절 의혹을 받는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다가 해임된 전력이 있다. ‘달’을 가리켰지만 대다수는 그의 ‘손가락’만 봤다. 한 교수는 수년간 학교와 법정공방을 벌여 승소한 뒤에야 복직할 수 있었다. 그때 경험을 계기로 단체 결성에 앞장섰고 대표까지 맡았다.

법을 수호해야 할 검찰 내의 치부, 그것도 성적인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얼굴과 이름을 드러낸 피해당사자가 뉴스 앵커석에 마주 앉아 직접 증언하는 방식까지, 서지현 검사라는 ‘내부고발자’의 폭로는 파장이 클 수밖에 없었다.

“왜 그 질문이 잘못 됐냐면요, 누군들 8년 지나서 얘기하고 싶었겠어요? 십중팔구 이것저것 조직 안에서 해보다가 해결이 안 되니까 밖으로 나오는 수순을 밟아요. 참다 참다 못 참겠으니까 공론화하는 거죠. 처음부터 작정하고 밖에다 내부고발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너 갑자기 왜 그래?’ ‘그땐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야…’ 같은 질문이 그래서 참 아프죠. 실은 서지현 검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거든요. 성추행한 간부 사과 받아달라고 했잖아요. 조용히 해결되기를, 혹시 조직에 누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해가면서….”

8년 전 검찰 고위간부의 성추행을 폭로한 피해자 서지현 검사. / 출처=JTBC 화면 갈무리
8년 전 검찰 고위간부의 성추행을 폭로한 피해자 서지현 검사. / 출처=JTBC 화면 갈무리
한 교수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여태껏 만난 내부고발자는 “순박하고 정의감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그들도 다른 이들처럼 침묵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고 양심껏 용기를 냈던 ‘대가’로 다치고(인사보복) 잘리고(해고) 법정에 불려 다니는(소송), 피폐해진 삶을 감당해야 했다.

그는 내부고발자를 밀고자나 고자질쟁이로 여기는 오래된 편견부터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 ‘내부자들’이 신랄하게 그려냈듯 음습한 것은 바로 내부자들이었다. 내부고발자가 아니라. 사소한 듯 곪을 대로 곪은 조직에 무감각해지거나 체념하지 않고 문제제기하는 이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 곳이 건강한 사회라는 얘기다.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이제 누가 서지현 검사를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워낙 엄청난 화제가 됐잖아요. 그동안 한국사회가 그래왔던 것처럼 내부고발 자체를 묻어버릴 수는 없는 상황을 맞은 거죠.”

내밀하고 명예를 중시하는 조직일수록 내부고발은 필연적이다. 검찰과 군대가 대표적. 한 교수는 “상명하복 문화가 센 전형적인 ‘그들만의 리그’에서 하나 둘 내부고발이 터져나온다는 건 큰 틀에서 긍정적 변화로 볼 수 있다”고 의미 부여했다. “물론 서 검사 개인은 아주 고통스럽겠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활발해지는 ‘미투(나도 피해자) 운동’과 함께 제도적 수렴 해법이 강구돼야 한다는 조언을 곁들였다. 개인의 양심과 희생에 토대한 변화는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어서다. 그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와 보상이 핵심”이라고 짚었다.

“우선 내부고발에 대한 보복을 막아야 해요. 지금은 조직적이고 합법적으로 보복을 가합니다. 영업비밀이나 기밀을 유출했다며 고발하거나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거는 식이죠. 우리나라는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도 성립하는 몇 안 되는 나라예요. 그러니 고발과 소송을 남발합니다. 사실 이런 소송은 대부분 무죄 판결로 끝나지만 유죄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죠. 과정이 너무 힘들거든요. 개인이 조직에 찍힌 죄로 몇 년씩 괴롭힘을 당하는 겁니다.”

미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시민의 공적 참여를 위축시키는 방편으로 악용되는 이 같은 ‘입막음 소송’은 전략적 봉쇄소송(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이라 불린다. 미국은 입막음 소송 방지법(Anti-SLAPP법)을 뒀다. 해당 소송이 SLAPP로 간주되면 조기 각하 또는 기각하는 법이다. 추후에라도 SLAPP로 판명되면 문제가 된 기업이나 정부는 막대한 규모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한 교수는 귀띔했다.

한 교수는 내부고발에 대한 인식을 공익을 구현하는 긍정적 행위로 전환하자고 당부했다. / 사진=최혁 기자
한 교수는 내부고발에 대한 인식을 공익을 구현하는 긍정적 행위로 전환하자고 당부했다. / 사진=최혁 기자
내부고발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 도입된 ‘공익신고자보호법’에도 맹점이 있다. 언론이나 시민단체를 통한 내부고발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때문에 국민권익위원회가 사실상 유일한 창구다. 하지만 권익위가 조사 과정에서 내부고발자 신원을 해당 조직에 유출하는 등의 사례가 발생해 불신을 샀다.

“제도에도 결함이 있고 시행하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었던 셈이죠. 내부고발 하면 인생 망친다는 인식이 퍼질 수밖에요. 그동안 내부고발자 많이 만났는데요. ‘선배’ 입장에서 내부고발 하겠다는 사람에게 뭐라고 얘기할 거냐고 물어보면 딱 반반으로 갈립니다. ‘죽어도 말린다’ 반, ‘고통을 각오한다면 권해야지 어쩌겠나’ 반.”

한참 듣다가 “참 어렵네요” 말을 건네자 한 교수가 “그런 양자택일을 안 해도 되면 좋겠어요”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론일지 몰라도 ‘당신의 양심적 행동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겠다’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라는 바람 섞인 설명이 뒤따랐다.

그가 언급한 경제적 보상은 통상 ‘공익신고 보상금’ 형태로 구현된다. 미국에선 당연시된다. 개별 회사가 입는 손해보다 내부고발로 인해 시민의 생명과 재산 피해를 막는 공익이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내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 한국에서라면 ‘금전적 이익을 노린 배신자’ 류의 프레임이 덧씌워질 듯했다.

내부제보실천운동이란 단체명도 그 같은 고민이 묻어난 결과물이다. “내부‘고발’실천운동이 더 정확한 이름 아닐까요” 지나가듯 묻자 “그 이름으로 할까 했는데 ‘밀고자나 배신자 같은 느낌이 든다’는 의견도 있어 조금 유하게 지은 거죠”라며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사실 그런 인식이 잘못된 겁니다. 조직의 작은 이익엔 기여할지 몰라도 사회 전체에는 커다란 해악이 될 문제에 눈감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이젠 정말 바뀌어야죠. 제도와 교육, 두 가지가 특히 중요합니다.”
한 교수는
한 교수는 "사고 자체가 아니라 사고에 어떻게 대처했는지가 관건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최혁 기자
인식을 전환하면 관점도 달라진다. 내부제보실천운동은 올해 기업들에게 이런 점을 적극 홍보하고 조직문화를 바꿔나가는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내부제보를 불순·과격분자로만 취급하지 말고 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자정하는 경보음으로 받아들이자는 쪽이다. 실제로 미국에선 내부고발자를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라 부른다. 단순한 윤리의 문제를 넘어 기업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취지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기업들이 얼마나 많아요. 시간과 돈을 들여 쌓아온 이미지가 한순간에 날아가잖아요. 내부제보 활성화가 기업의 자정 효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기업에도 좋은 효과를 낸다는 점을 강조할 생각입니다. 그 조직의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인적 관리의 핵심 아닙니까.”

다시 서지현 검사와 검찰 조직의 일로 돌아와서. 한 교수는 “사고 자체를 문책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사고는 그저 ‘무마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는 까닭이다. 그는 “사고에 잘못 대처한 데 대한 문책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8년 전 그 일 자체보다, 조직이 피해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여 부당한 환경과 문화를 바꿨는지가 관건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