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은 5일 “대통령 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가 중심이 돼 국민 의사를 수렴하고 국회와 협의할 대통령 개헌안을 준비해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이제 대통령도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등 개헌 준비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6·13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시행을 주장해온 문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과 외교안보 이슈에 묻히기 전에 ‘개헌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려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국회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합의하는 게 최선이지만 국회 합의만을 바라보며 기다릴 상황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안(대통령안)을 마련하는 것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문 대통령의 이날 지시는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한 정치권을 겨냥한 압박용 카드란 분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회 합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더 일찍 개헌 준비를 자체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시행을 위한 시한으로 3월 개헌안 발의 의견을 내비쳤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국회가 정부와 함께 협의한다면 최대한 넓은 범위의 개헌을 할 수 있겠지만 합의를 하지 못하고 정부가 개헌안을 발의하면 국민이 공감하고 지지하는 최소한의 개헌으로 좁힐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을 위한 국민의 개헌이어야 한다는 점”이라며 “과정과 내용에서 국민 뜻을 최우선으로 존중하는 개헌안을 마련하는 한편 국회와도 소통하고 협의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여러 차례 얘기한 바와 같이 대통령으로서 국민과의 약속인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시행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최근 각 당이 개헌 의지를 밝히며 당론을 모으고 여야가 협의를 시작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아직도 원칙과 방향만 있고 구체적 진전이 없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국민투표법의 조속한 국회 처리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특별히 국회에 당부한다”며 “국민투표법이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고 효력을 상실한 지 2년이 지났는데 위헌 상태의 국민투표법이 2년 이상 방치된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이며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현행 국민투표법은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제한한다는 이유를 들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고 2015년까지 고치도록 했으나 국회에서는 2년이 넘도록 법 개정에 손을 놓고 있다.

보수 야당은 문 대통령의 정부 개헌안 마련 지시에 강하게 반발했다. 여야가 개헌안 마련을 위해 협의 중인데 대통령이 자체 개헌안을 주문한 것을 두고‘국회 무시’라고 규정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어렵게 여야 합의를 통해 갓 출발한 국회 개헌특위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라며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이고,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장 대변인은 “대통령이 단독으로 개헌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토록 개헌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은 “대통령은 ‘개헌 운전석’을 탐내기보다 국회 존중을 앞세우기 바란다”며 “갈 길 바쁘다고 과속해서는 안 된다. 공을 들이지 않고 얻으려는 것은 과욕이자 정직하지 못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여야가 합의해서 개헌안을 만든다면 최우선적으로 존중하고 받아들이겠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손성태/박종필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