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커머스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겠다.”

CJ그룹은 지난달 홈쇼핑업체 CJ오쇼핑과 방송·영화 등 콘텐츠사업을 하는 CJ E&M의 합병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지만 두 기업을 분석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뭘 하겠다는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업적 시너지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무적 효과’에 대해선 한목소리를 냈다. “CJ오쇼핑 곳간에 쌓인 현금을 CJ E&M에 쓸 수 있게 됐다.”

◆홈쇼핑 내부 자금 E&M이 활용할 듯

'4조 곳간' 어디에 쓰나… 홈쇼핑 빅4의 고민
CJ오쇼핑은 그룹 내 ‘현금창고’ 같은 곳이다. 돈을 잘 벌고 많이 쓰진 않는다. 작년 9월 말 기준 이익잉여금은 약 9000억원.

이익잉여금은 영업해서 남긴 이익 가운데 주주 배당 등을 하고 남은 돈이다. 대규모 설비 투자가 거의 없는 산업 특성 때문에 돈이 많다. 작년에도 157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영업이익률은 13.8%. 유통업에선 이익률이 5%만 넘어가도 ‘알짜’란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곧 현금으로 바뀔 주식도 있다. CJ오쇼핑이 보유 중인 CJ헬로비전 지분 53.9%와 삼성생명 지분 0.5%다. 이 지분을 팔면 최소 5000억~6000억원의 현금이 한번에 들어온다.

CJ오쇼핑의 ‘고민’은 이렇게 많은 돈을 활용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본업인 TV 홈쇼핑은 성장이 정체됐다.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중국, 동남아시아 등으로 나갔지만 성과를 내기 쉽지 않았다. 요즘은 해외 확장보다 구조조정과 축소에 주력하고 있다. T커머스 등 신규 성장동력을 키우고 있지만 아직은 외형(취급액)이 TV 홈쇼핑의 7%에도 못 미친다.

이런 CJ오쇼핑을 성장성이 높으며, 그룹 내 주력이 될 계열사인 CJ E&M과 합병하면 이익잉여금을 투자자금으로 쓸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회사는 tvN 등 18개 TV 채널을 보유하고 있고, 영화 제작과 투자도 한다. 음반 제작 등 음악사업, 뮤지컬 등 공연사업도 하고 있다. 이런 분석이 나온 직후 CJ E&M은 작년 4분기 증권회사 예상치(237억원)에 크게 못 미치는 35억원의 영업이익을 발표했다. ‘어닝쇼크’였다. CJ오쇼핑이 ‘캐시카우’ 역할을 하며 CJ E&M에 자금을 지원해주면 지금보다 훨씬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해진다는 게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이다.

◆GS는 벤처투자·현대는 렌털사업 주력

‘내부에 쌓인 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CJ오쇼핑만 하는 게 아니다. 업계 전반이 비슷한 상황이다.

CJ·GS·현대·롯데 등 대기업 계열 4대 홈쇼핑의 이익잉여금은 작년 말 기준 4조원에 달한다. 작년 9월 말 기준 현대홈쇼핑 한 곳의 이익잉여금만 1조2444억원에 이른다. GS홈쇼핑은 9194억원. 비상장사여서 정보 공개가 안 되는 롯데홈쇼핑은 작년 말 기준 60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업계에선 추정한다.

GS홈쇼핑은 벤처투자·인수합병(M&A) 등 투자를 통한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GS홈쇼핑이 2011년부터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벤처기업에 투자한 곳은 380여 개, 투자 규모는 약 2700억원이다. 작년에는 식기 브랜드 ‘코렐’로 유명한 월드키친과 NHN페이코 등에도 각각 300억원과 500억원의 지분 투자를 하기도 했다.

현대홈쇼핑은 렌털(대여)사업 확장과 자체브랜드(PB) 등에 투자하고 있다. 2015년 자본금 600억원의 현대렌탈케어란 법인을 세워 정수기, 공기청정기 등 생활가전 렌털사업에 뛰어들었다. 작년에만 이 법인에 추가로 900억원을 투입(유상증자)했다.

롯데홈쇼핑은 오는 5월 홈쇼핑 방송 재승인 기간 만료를 앞두고 있어 투자보다 현금 비축에 무게를 두고 있다. 2대 주주인 태광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벌여 공격적으로 투자하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대규모 투자를 하려면 이사회에서 태광 측 인사를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완신 롯데홈쇼핑 대표는 “재승인 이후 대대적인 투자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