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원정투기에 악용되는 것으로 의심되는 해외여행경비 반출액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화폐 가격이 국내보다 해외가 싸다는 점을 이용해 해외에서 가상화폐를 사기 위해 돈을 들고 나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관세청은 “원정 해외투기로 의심되는 고액·빈번 반출자 다수를 포착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이현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관세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외여행경비 반출액은 2013~2016년 2000만달러(약 201억원)대를 유지했지만 가상화폐 열풍이 본격화한 지난해에는 7238만달러(약 785억원)로 전년 대비 2.45배 급증했다. 현행법상 해외여행경비의 한도는 무제한이다. 다만 1만달러를 초과하는 해외여행경비는 외국환거래법 규정에 따라 세관에 신고해야 한다.

월별 해외여행경비 반출 추이에서도 지난해 1~2월은 전년 수준에 불과하다가 3~11월 전년 동월 대비 2~4배까지 증가했다. 국내 가상화폐 열풍이 최고조에 달한 지난해 12월 한 달간 반출액은 1051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4.14배 급증했다.

올해 1월 반출액은 3846만달러를 기록해 작년 전체 해외여행경비 반출액(7238만달러)의 절반(53.14%)을 넘어섰다. 지난해 1월(260만달러)과 비교하면 15배나 늘어난 수치다.

국내에서 거래되는 가상화폐는 일명 ‘김치 프리미엄’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시세가 30% 정도 비싸다. 가상화폐 원정투기꾼들은 해외여행경비 한도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고액의 현금을 들고 해외에서 가상화폐를 싸게 사들인 뒤 이를 다시 한국으로 전송해 비싸게 팔아 시세차익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국가별 해외여행경비 반출액을 보면 가상화폐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태국·홍콩·일본 등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 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6.98배 급증했으며 홍콩 6.21배, 일본 3.63배 늘었다.

해외여행경비 1인당 평균 반출액은 2013년 2만3000달러에서 2014년 2만4000달러, 2015년 2만4000달러, 2016년 2만4000달러 등으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3만3000달러로 3만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올 1월에는 4만6000달러로 급증했다.

이 의원은 “관계당국은 해외여행경비를 가장한 가상화폐 구매자금 반출을 방지하기 위해 고액 해외여행경비 반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