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 1호' 라던스키, 체코와 1차전에서 1어시스트…"어머니, 보고 계시나요"
"내 가족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특별한 기억을 선물하고 싶어"
16년만에 찾아온 기적, 라던스키의 특별한 여정
세계 아이스하키의 변방에 속하는 한국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

그 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의 캐나다 출신 귀화 선수인 브락 라던스키(35·안양 한라)에게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기적은 가까운 곳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출신인 라던스키가 2002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에드먼턴 오일러스에 3라운드 지명을 받기 6개월 전이었다.

2001년 12월 어머니 코니가 집 근처에서 조깅을 하던 중 과속 차량에 들이받혔다.

간신히 생명은 건졌지만, 뇌를 크게 다친 그녀는 예전의 따뜻했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기억력과 사고력을 주관하는 전두엽이 크게 손상된 탓에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아들의 경기는 빼놓지 않고 챙겼던 열정도 사라졌다.

라던스키 가족은 해체됐다.

아버지는 이혼했고, 미국 아이스하키 명문 미시간주립대의 촉망받는 유망주였던 라던스키는 그 충격으로 예전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NHL 입성에 실패한 라던스키는 독일 리그를 거쳐 2008년 9월 한라와 계약했다.

한라 소속으로 2008-2009시즌부터 아시아리그에 뛰어든 라던스키는 데뷔 시즌에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와 최다 골(29골), 최다 어시스트(28도움)를 싹쓸이했다.

라던스키는 현재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에서 뛰는 7명의 귀화 선수 가운데 가장 먼저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2013년 3월로 그는 귀화 외국인 선수 1호다.

그는 지난해 오른쪽 엉덩이를 심하게 다쳐 수술대에 올랐다.

재활까지 7∼8개월이 걸리는 수술이었다.

라던스키는 고향으로 향했다.

그는 작년 봄 그곳에서 암으로 투병하던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봤다.
16년만에 찾아온 기적, 라던스키의 특별한 여정
아버지를 잃었지만,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

무려 16년 동안 정신이 없던 어머니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손주들에게 생일 축하 카드를 보내는 등 조금씩 예전의 따뜻했던 모습을 회복해갔다.

코니의 네 자녀 중 셋째인 라던스키는 어머니가 자신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기억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라던스키 형제는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유로 아이스하키 챌린지(EIHC) 오스트리아컵에 어머니를 데려갔다.

막 재활을 끝낸 라던스키는 첫 경기인 덴마크(세계 14위)전에서 첫 골을 터트렸다.

어머니의 상태에 극적인 변화는 생기지 않았지만 라던스키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 것에 만족했다.

라던스키에게 찾아온 비극과 16년 만에 발생한 기적은 캐나다 방송인 CTV의 특별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현지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라던스키는 지난 15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자신의 첫 올림픽 경기이자 대표팀의 첫 게임에서 세계 6위의 강호 체코를 상대로 조민호의 역사적인 첫 골을 도우며 어시스트 1개를 기록했다.

비록 경기는 한국의 1-2 역전패로 끝났지만 라던스키는 캐나다에서 TV로 경기를 보고 있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감격에 젖었다.

어머니는 한국까지 장거리 여행을 할 정도의 몸 상태가 아니었기에 대신 형과 형의 여자친구, 라던스키의 아내와 처가 쪽 식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라던스키는 "이번 올림픽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 특히 내 가족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특별한 기억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