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정의 리스크 피하는 법… 선두경쟁 대신 막판 '기어 변속'
쇼트트랙 선수들이 꼽는 리스크는 대략 두 가지다. 다른 선수의 실수로 함께 넘어져 완주에 실패하는 ‘허무탈락’, 잘나가다가 혼자 미끄러져 레이스가 끝나버리는 ‘셀프탈락’이다. 4년간 쏟은 피땀이 단 몇 초 만에 날아가는 일이지만 결과가 뒤집어질 확률은 거의 없다. 쇼트트랙의 상시 변수다.

지난 17일 여자 1500m를 제패하며 한국에 세 번째 평창 금메달을 안겨준 ‘얼음공주’ 최민정(19·성남시청·사진)은 달랐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듯한 ‘외계인 주법’을 구사하며 리스크와 경쟁자들을 모두 무력화했다. 최민정은 “이제 가족여행을 갈 수 있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비밀병기 ‘슈퍼 터보 변속’

“마지막 두 바퀴는 기어 변속을 한 것 같았다. 4위에서 1위로 한순간에 치고 올라왔다. 결승선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UPI통신)

보고도 믿기 힘든 가속력이었다. 10일 여자 3000m 계주 예선에서 넘어지고도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던 ‘괴물 가속’이 다시 재현됐다. 10바퀴를 넘게 돌아 체력이 바닥에 가까워질 무렵, 최민정은 마치 터보 엔진을 단 슈퍼카처럼 폭발적인 스피드로 경쟁자들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경기 초반 13초를 넘었던 ‘랩타임(한 바퀴 주파 속도)’은 마지막 두 바퀴째를 통과할 시점에서 8.8초까지 치솟았다. 쇼트트랙의 최고속급인 시속 46㎞의 속도를 막판에 낸 것이다. 킴부탱(캐나다), 아리아나 폰타나(이탈리아), 요린 테르모르스(네덜란드)가 선두그룹으로 뒤엉켜 아슬아슬한 1위 경쟁을 벌이던 때였다.

최민정은 초반 한때 1위로 나서며 후발 주자들이 따라오도록 ‘미끼’를 던졌다. 그리고는 뒤에서 먹잇감이 지치기를 기다리듯 때를 노렸다.

안상미 MBC 쇼트트랙 해설위원은 “선두팀이 치열한 경쟁으로 체력이 소모될 때 급가속이 시작됐다. 눈으로 보고도 따라갈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정은 2위 그룹을 0.8초 가까이 따돌리고 두 손을 번쩍 치켜들어 ‘여제의 탄생’을 자축했다. 충격의 실격을 통쾌하게 날려버린 ‘500m 루저’의 반란이었다.

◆“연습 많이 한 선수 金 가져가라”

주행 거리가 더 긴 바깥 트랙은 충돌과 미끄러짐 가능성을 줄여줬다. 하지만 강철체력 없인 불가능한 일이다. 추가 스트로크(발로 얼음 위를 지치는 동작)가 필요했다. 선두그룹이 한 바퀴에 16~17번 정도의 스트로크를 한 반면 최민정은 막판 세 바퀴에서 18~19회로 스트로크를 늘렸다. 경기 전 “연습량이 나보다 많은 선수가 있다면 금메달을 가져가도 좋다”고 할 정도로 자신감을 내비쳤던 체력이 폭발했다. 최민정은 남녀 쇼트트랙 한국대표팀 내에서 체력테스트 랭킹 3위 안에 든다.

체력보다 더 강한 게 ‘얼음멘탈’이다. 최민정은 “올림픽은 준비 과정이 중요하다. 결과에 대해서는 연연하지 말자고 많이 생각했고 마음먹었다”고 여러 차례 말해왔다. 4관왕 레이스의 첫 단추로 노렸던 500m에서 실격하며 펑펑 눈물을 쏟았던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가던 길을 가자”는 글을 올리며 곧바로 전의를 다졌다. ‘내려놓는 법’을 익힌 덕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