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재건축 추진 아파트값이 약세로 돌아섰다. 씨가 말랐던 매물이 늘어나고 호가도 수천만원 떨어졌다. 그럼에도 매수 예정자들은 “호가가 더 떨어지길 기다리겠다”며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 매물이 나오기 무섭게 팔렸던 설 이전과는 대조적이다. 정부가 지난달 재건축초과이익 부담금 추정치를 내놓은 데 이어 지난 20일 안전진단 요건 강화를 발표한 영향이다.
안전진단 강화 '쇼크'… 숨죽인 재건축 시장
◆호가 최고 5000만원 하락

준공 후 30년이 됐지만 안전진단을 미처 신청하지 못한 단지들이 이번 대책의 직격탄을 맞았다. 양천구 신정동 ‘신시가지11단지’ 전용 66㎡의 호가는 지난달보다 3000만원가량 빠졌다. 지난달 중순에는 8억4700만원에 실거래됐으나 지금은 8억1000만~8억3000만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 목동 ‘신시가지4단지’에서는 소형 주택형 매물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주로 투자자들이 시세 차익을 위해 보유했던 물건들이다. 한 달 전에는 매물이 1~2건에 그쳤으나 지금은 전용 48㎡ 매물이 4건, 67㎡ 매물이 3건 나와 있다. 인근 U공인 관계자는 “가격 조정도 가능하다”며 “지난달엔 없었던 현상”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매수 대기자들은 호가만 체크하고 거래 의사를 표시하진 않는다. 지난달 초엔 매물이 나오기만 하면 바로 거래됐던 곳이다.

재건축 가능 연한에 가까워지면서 급등했던 송파구 대단지들도 비슷한 분위기다. 문정동 ‘올림픽훼밀리타운’ 아파트엔 매수세가 사라졌다. 인근 P공인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이 어떻게 되는 거냐, 호가 내린 물건이 있냐는 문의만 많다”고 말했다. 방이동의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 전용 83·100㎡ 호가는 2000만~5000만원 내렸다. 이 단지도 올해 초까지만 해도 매물이 부족했다.

광진구 광장동 일대 아파트들의 호가 상승세도 멈췄다. ‘극동아파트’ 전용 84㎡는 지난해 말 10억4500만원에 거래된 뒤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인근 G공인 관계자는 “재건축 이슈로 급등했던 단지라 거품 우려가 있었다”며 “이번 발표로 매수 예정자들의 관망세가 길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에 불만을 표출하는 주민들도 많다. 안전진단 신청을 위해 동의서를 징구 중이던 노원구 월계동 ‘월계시영’ 주민들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주민은 “시세가 급등한 강남·서초 등은 다 빠져나가고 애꿎은 강북권만 또 유탄을 맞았다”며 “지방 선거에서 뜨거운 맛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소득 수준이 올라감에도 거꾸로 삶의 질은 악화되고 생활 수준이 퇴보하게 생겼다”고 지적했다.

◆안전진단 통과한 단지도 약세

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들도 풍선효과는커녕 위축되는 분위기다. 강남구 대치동 ‘미도’ 아파트에는 매수를 원하는 상담 문의가 거의 사라졌다. 안전진단은 통과했으나 조합원 지위양도 금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단기 급등 등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도현대공인 관계자는 “로열층 전용 84㎡는 아직 20억원의 호가를 고수하고 있으나 가격이 오르진 않고 있다”며 “1층 매물 중에선 5000만원 호가를 내린 것도 있다”고 전했다.

10년 전 안전진단을 통과한 은마아파트 전용 84㎡ 호가는 3주 새 5000만~1억원 떨어졌다. 지난달 말엔 17억5000만~18억원을 호가했지만 지금은 같은 주택형이 17억~17억7000만원에 나와 있다. 단지 내 중개업소엔 그동안 없었던 ‘급매’를 알리는 매물장도 나붙었다. E공인 관계자는 “안전진단을 통과한 곳이라 매수 문의가 있긴 하지만 더 떨어질 것이란 기대에 매수자들이 쉽게 거래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보유세 인상 가능성 등의 영향도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안전진단을 시작한 가락동 ‘가락우성1차’ 아파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안전진단 용역을 지난달 시작해 5월에 결과가 나오는 곳이지만 매수자들은 눈치 보기에 들어갔다. 유영희공인 관계자는 “매수자들이 시장 추이를 지켜보고 결정하려는 분위기”라며 “문의가 확실히 뜸해졌다”고 말했다.

김형규/선한결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