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차이나' 찾아 베트남 간 한국 섬유업체들, 패스트패션 역풍에… 월급 못주고 잠적 잇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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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하청사 등 700여곳 몰려
저가수주 등 제살깎기 경쟁
소량 다품종 주문 맞추느라
원가절감 힘들어 수익성 악화
저가수주 등 제살깎기 경쟁
소량 다품종 주문 맞추느라
원가절감 힘들어 수익성 악화
베트남 남부 동나이성에 있는 광림텍스웰비나 공장 앞에선 지난 8일부터 이 회사 근로자 수천 명이 시위하고 있다. 모회사인 국내 중견 섬유업체 광림통상에서 파견한 한국인 경영진 12명이 베트남의 최대 명절 ‘뗏(설)’을 앞두고 월급을 체납한 채 잠적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베트남 북부 쿠치성에서도 한국 섬유업체가 직원 월급을 주지 못해 근로자 600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저임금과 미국 수출 쿼터 등으로 호황을 누리던 베트남 내 한국 섬유업체 경영이 악화되고 있다. 임금 인상 등으로 경영 여건이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과당경쟁으로 수익성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현지 섬유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에는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한국 중소 섬유업체가 많다”며 “비슷한 사태가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임금체불, 공장폐쇄 잇달아
베트남은 한국 섬유업체 763곳(2016년 기준)이 진출해 있는 세계 최대 섬유 생산기지 중 하나다. 세아상역, 한세실업, 한솔섬유, 약진통상, 영원무역 등 주요 업체는 물론 중소형 하청업체까지 다양하게 진출해 있다. 한국 의류기업의 해외투자 중 41.4%(2016년)가 베트남에 집중돼 있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공장을 폐쇄하는 기업까지 나타나고 있다. 매출 3000억원대(2016년 3244억원)의 중견 섬유업체 광림통상은 지난달 베트남 공장 근로자 총 1928명에게 줘야 할 1월분 임금 137억동(약 6억6000만원)과 사회보험 비용 175억동(약 8억4000만원)을 내지 못했다. 현지 한국인 경영진은 모두 귀국했다.
광림통상은 21일 “고객사에서 납품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 일시적인 자금경색이 생겨 빚어진 일”이라며 “오는 25일까지 공장을 매각할지, 계속 가동할지 등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지 관계자는 “공장에서 일하는 한국인의 월급은 이미 수개월치가 밀렸을 만큼 사정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쿠치성에 있는 한국 섬유업체 남푸옹도 지난달 약 40억동의 직원 월급과 266억동의 사회보험비를 체납한 채 경영진이 잠적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섬유업체들은 경영이 악화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서 감사보고서를 확인할 수 있는 베트남 진출 섬유기업 37곳 중 11곳은 2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나머지 26곳 중 10곳은 당기순이익 규모가 줄었다.
◆섬유 OEM업체들 과당경쟁
업계에서는 패스트패션이 확산되면서 중소 섬유업체가 과당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진출 업체 중 75%는 자체브랜드가 없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업체다. 한 섬유업계 관계자는 “패션 트렌드가 빨라지면서 중저가 브랜드업체는 한철 입고 버릴 수 있는 콘셉트의 의류를 내놓는다”며 “OEM업체로선 납품단가가 싸지고 생산하는 옷 가짓수는 많아져 마진이 크게 남을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납품기일, 품질 등을 이유로 대형 OEM 업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중소 OEM업계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갭은 지난해 납품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OEM업체와 계약을 끊고 생산 벤더 수를 기존의 50%로 줄였다. 이 때문에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중소 OEM업체들은 저가수주도 불사하는 등 과당경쟁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베트남의 최저임금이 매년 큰 폭으로 오르는 것도 이들 업체에는 큰 부담이다. 베트남 국가임금위원회는 올해 최저임금을 월 276만~389만동(약 13만2300~19만1500원)으로 전년 대비 평균 6.5% 인상했다. 지난해에는 7.3% 올랐다. 현지 업체 관계자는 “베트남에 진출한 업체 중에서도 인건비가 더 싼 미얀마 라오스 등으로의 공장 이전을 고려하는 업체들이 있다”고 전했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
저임금과 미국 수출 쿼터 등으로 호황을 누리던 베트남 내 한국 섬유업체 경영이 악화되고 있다. 임금 인상 등으로 경영 여건이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과당경쟁으로 수익성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현지 섬유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에는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한국 중소 섬유업체가 많다”며 “비슷한 사태가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임금체불, 공장폐쇄 잇달아
베트남은 한국 섬유업체 763곳(2016년 기준)이 진출해 있는 세계 최대 섬유 생산기지 중 하나다. 세아상역, 한세실업, 한솔섬유, 약진통상, 영원무역 등 주요 업체는 물론 중소형 하청업체까지 다양하게 진출해 있다. 한국 의류기업의 해외투자 중 41.4%(2016년)가 베트남에 집중돼 있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공장을 폐쇄하는 기업까지 나타나고 있다. 매출 3000억원대(2016년 3244억원)의 중견 섬유업체 광림통상은 지난달 베트남 공장 근로자 총 1928명에게 줘야 할 1월분 임금 137억동(약 6억6000만원)과 사회보험 비용 175억동(약 8억4000만원)을 내지 못했다. 현지 한국인 경영진은 모두 귀국했다.
광림통상은 21일 “고객사에서 납품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 일시적인 자금경색이 생겨 빚어진 일”이라며 “오는 25일까지 공장을 매각할지, 계속 가동할지 등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지 관계자는 “공장에서 일하는 한국인의 월급은 이미 수개월치가 밀렸을 만큼 사정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쿠치성에 있는 한국 섬유업체 남푸옹도 지난달 약 40억동의 직원 월급과 266억동의 사회보험비를 체납한 채 경영진이 잠적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섬유업체들은 경영이 악화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서 감사보고서를 확인할 수 있는 베트남 진출 섬유기업 37곳 중 11곳은 2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나머지 26곳 중 10곳은 당기순이익 규모가 줄었다.
◆섬유 OEM업체들 과당경쟁
업계에서는 패스트패션이 확산되면서 중소 섬유업체가 과당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진출 업체 중 75%는 자체브랜드가 없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업체다. 한 섬유업계 관계자는 “패션 트렌드가 빨라지면서 중저가 브랜드업체는 한철 입고 버릴 수 있는 콘셉트의 의류를 내놓는다”며 “OEM업체로선 납품단가가 싸지고 생산하는 옷 가짓수는 많아져 마진이 크게 남을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납품기일, 품질 등을 이유로 대형 OEM 업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중소 OEM업계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갭은 지난해 납품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OEM업체와 계약을 끊고 생산 벤더 수를 기존의 50%로 줄였다. 이 때문에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중소 OEM업체들은 저가수주도 불사하는 등 과당경쟁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베트남의 최저임금이 매년 큰 폭으로 오르는 것도 이들 업체에는 큰 부담이다. 베트남 국가임금위원회는 올해 최저임금을 월 276만~389만동(약 13만2300~19만1500원)으로 전년 대비 평균 6.5% 인상했다. 지난해에는 7.3% 올랐다. 현지 업체 관계자는 “베트남에 진출한 업체 중에서도 인건비가 더 싼 미얀마 라오스 등으로의 공장 이전을 고려하는 업체들이 있다”고 전했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