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그제 본회의를 열어 법안 66개를 몰아 처리했다.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니 법안 하나 처리하는 데 1분 남짓 소요된 셈이다. 2월 임시국회는 그간 ‘개점휴업’ 상태였다가 여론의 질책이 쏟아지자 ‘법안 무더기 처리’라는 구태를 되풀이했다.

국회의 행태에 “의원들이 과연 법 조문을 제대로 읽어보기는 했을까”라는 의구심부터 든다. 많은 의원이 “그렇지 않다”고 숱하게 고백해 온 문제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을 지낸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한경과의 인터뷰에서 “본회의에 어떤 법안이 상정될지 개회 직전에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법 내용도 모르고 찬성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서강대 교수를 지낸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다른 상임위 소관 법안은 본회의장에서 리스트만 쭉 보는 정도”라고 고백했다.

내용도 모른 채 법을 양산하는 게 우리 국회의 고질병이 됐다. 지난해 11월9일에는 하루에 113건의 법안을, 그에 앞서 9월28일에는 136건을 처리하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의 의회는 미리 공지된 휴회기간 외에는 상시 개회해 이런 일이 잘 없다. 미국 연방하원은 ‘위원회 심사배제 요청제(discharge petition)’로 소수의 법안처리 전횡도 막고 있다. 상임위원회가 법안을 30일 이상 계류시킬 때 전체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상임위 심의권을 박탈하고 본회의에 바로 올리는 제도다. 벼락치기 숙제하듯 66건씩 처리하면서도 기업들이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법 같은 경제활성화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조차 안 되는 문제점을 해결할 이런 장치가 시급하다.

법안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이고 자기완결형의 법리에 기반한다. 한 개 사면 한 개 끼워주는 골목 상품이 아니다. 그런데도 법안 처리를 뒤에서 주고받는 여야 간 흥정은 여전하다.

마구 만든 법은 사회적 흉기다. 입법부인 국회가 법의 엄중함을 모르는 것 같아 정말 걱정스럽다. 이달 임시국회도 개원 이후 내내 놀다가 쌓아둔 법안을 하루에 날림 처리했다. “최저임금을 받아야 할 대상은 국회의원”이라는 SNS의 잇단 비판을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스켈레톤 경기장 제한구역에 들어갔던 박영선 의원이 패딩 선수복 착용으로 또 구설에 오른 것을 옷 한 벌에 대한 논란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유권자들의 속이 끓어오르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