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 여제’ 린지 본(34·미국·사진)에게 평창동계올림픽은 특별하다.

잦은 부상과 슬럼프를 딛고 우여곡절 끝에 출전한 8년 만의 올림픽이자 그에겐 마지막 올림픽이어서다. 자신에게 스키를 가르쳐준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쌓은 인연도 각별하다. 본의 할아버지 도널드 킬도는 6·25 참전용사다. 손녀에게 “평창올림픽에 꼭 같이 가자”던 할아버지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본은 한국에 오기 전 “할아버지는 이름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존재다. 할아버지를 위해 평창올림픽 금메달을 꼭 목에 걸고 싶다”고 했다.

할아버지와의 약속은 이뤄지지 못했다. 본은 22일 정선알파인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알파인스키 여자 복합에서 회전 종목을 완주하지 못했다. 복합은 1차 활강과 2차 회전 기록을 합산해 순위를 매기는 종목. 본은 1차 활강에서 1분39초37로 결승선을 통과해 1위에 올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메달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정교한 기술을 다투는 회전 종목에서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본은 스피드를 다투는 활강에 강한 선수다. 2차 시기 맨 마지막 순번으로 나선 본은 레이스 초반에 기문(표식 깃발)을 놓치는 바람에 기록을 인정받지 못했다. 연습량도 많지 않았다.

‘무명’ 미셸 지생(스위스)이 합계 2분20초90으로 금메달을 가져갔다. ‘스키 요정’ 시프린이 2분21초87로 은메달을 차지해 관심을 모았던 린지 본과의 스키 여제 대결은 시프린의 판정승으로 끝이 났다. 본이 완주를 못했다는 점에선 맥빠지는 결과다. 본과 시프린은 이날 알파인스키 복합에서 올림픽 무대로는 처음이자 마지막 대결을 벌여 스키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앞서 대회전을 제패한 시프린은 2관왕을 노렸지만 은메달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동메달은 2분22초34를 찍은 웬디 홀드네르(스위스)에게 돌아갔다.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우승이 한 차례도 없는 지생은 린지 본은 물론 시프린까지 모두 제치고 ‘깜짝 우승’을 차지하는 파란의 주인공이 됐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