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실패가 예정된 부동산 시장 개입
서울 부동산, 특히 강남 지역 아파트값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자 정부가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내린 데 이어 오는 4월부터는 재개발에 따른 이익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환수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가격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지난 20일 재건축 허가 과정에서 안전위험성 비중을 종전의 20%에서 50%로 늘렸다. 붕괴 직전에 이르지 않은 아파트는 재건축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정책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재건축 아파트를 통한 신규 공급이 사실상 중단되면 선호 지역, 특히 강남 지역 아파트값은 오히려 천정부지로 폭등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3.3㎡에 7000만원 정도인 강남 지역 아파트값은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1억원을 돌파할 것이다.

재화의 가격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가격이 오르는 것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흔히 실수요와 가수요를 구분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보면 실수요와 가수요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구매 욕구가 있고 이를 뒷받침할 구매력이 있으면 모두 수요다.

정부가 취할 정책 방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수요가 줄어들게 유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공급이 늘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정부는 수요를 줄인다고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하향 조정했지만, 이는 대출이 꼭 필요한 서민에게만 영향이 클 뿐이다. 다른 방식으로도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나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에게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문제는 이런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차익에 대한 중과세도 수요를 잠재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한 줄어들긴 해도 차익의 유인은 여전히 존재한다. 게다가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일어난 것처럼 증가한 세 부담을 구매자에게 전가할 수도 있다. 특기할 것은 가격이 폭등하면 수요가 줄어드는 게 보통이지만 강남 지역 아파트는 수요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상 현상은 강남 지역 아파트가 단순한 ‘경제재(economic goods)’가 아니라 ‘지위재(status goods)’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경제재는 우리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하는 재화로, 다른 사람의 소비 행동과 거의 무관한 재화다. 밥을 예로 들면 남이 몇 그릇을 먹든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먹으면 그만이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재화는 대개 경제재다. 반면 지위재는 다른 사람의 소비 행동에 크게 영향받는 재화다. 골동품, 서화, 유일무이한 별장 같은 게 이에 해당한다.

이 개념을 처음 제시한 프레트 허슈에 의하면 지위재에 대한 선호는 신분제 같은 것이 사라진 평등한 사회일수록 더욱 강하다. 특정 지역 아파트값이 올라 아무나 접근할 수 없게 될 경우 더욱 선호하는 사람이 늘게 되는 것은 아무나 넘볼 수 없는 높은 가격이 사회적 지위나 신분의 의제(擬制)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립형 사립고 폐지라는 경제 외적인 요소도 강남 지역 아파트에 대한 수요를 부추기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폭등한 강남 집값을 안정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자사고 설치로, 강남 8학군 매력이 줄어든 것이었다. 서울교육청이 자사고 폐지 방침을 분명히 하면서 강남 8학군에 대한 학부모 선호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수요가 상존함에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재건축의 사실상 불허다. 더 이상의 공급이 없게 된 이상 강남 집값은 정부 기대와는 달리 더 뛸 수도 있다. 그게 시장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서울, 특히 강남 집값을 안정시키려 한다면 강남 지역 재건축을 막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감히 허용하는 정책으로 선회해야 한다. 아울러 30년 재건축 연한이 도래하는 1기 신도시 아파트의 재건축을 통해 강남 아파트에 버금가는 대체재를 공급, 강남으로만 쏠리는 수요를 흡수해야 한다. 시장 원리와 역행하는 단순한 정책 한두 개로 복잡다단한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치명적 자만(fatal conceit)이다.

yjlee@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