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상징 같은 존재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집권 후 처음 지명한 장관급 인사가 김 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업무 성과에 대해 “갑(甲)-을(乙) 문제 해소나 재벌개혁을 위한 방향을 잡았다”며 “100점 만점에 80점 정도 될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정말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2년차 증후군’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세상의 불공정을 공정위가 해결해야 한다는 국민의 기대가 있다”며 “올해는 공정위가 (구체적인) 성과를 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서울 세종대로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있는 집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사진=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사진=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지난해 대기업에 자율 개혁을 주문했습니다. 개혁 성과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그동안 대기업의 자발적 개혁은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공정위나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켰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3월 주주총회 시즌에는 과거 각 그룹이 발표한 내용을 기업 차원에서 제도화하는 성과를 기대합니다. 개혁을 구체화하지 않은 그룹들은 빨리 자발적인 모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반강제적 개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연성규범을 통한 개혁은 기존의 ‘기업 팔 비틀기식’ 개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정부가 특정한 변화 모습을 정해 기업에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각자 사정에 맞는 바람직한 모습으로 자발적으로 변하도록 독려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딱딱한 법령 개정을 통해 해결하려면 사회적 비용과 갈등이 너무 크게 발생합니다. 연성규범을 통한 점진적 개혁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요 그룹 경영진을 다시 만날 계획이 있습니까.

“주총이 끝나는 시점에 한번 더 주요 그룹 경영진을 만날 생각입니다. 그동안의 성과를 평가하고 더 많은 노력을 주문할 것입니다. 다만 올해 대기업에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새로운 아젠다를 꺼낼 생각은 없습니다.”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을 예고했습니다.

“당사자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는 공정위가 맡기보다 민사소송제도를 이용하도록 경쟁법 집행 방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과도한 형벌 조항을 정비하고 과징금 등 금전적 제재를 합리화할 것입니다. 민사소송이 활성화되도록 공정거래법에 자료제출명령제도 도입하겠습니다. 지난해부터 해온 일감몰아주기 조사와 공익법인 실태 조사를 통해 파악한 내용을 토대로 대기업 규제도 현실에 맞게 개선하겠습니다. 다음달까지 공정거래법 개편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추진할 생각입니다.”

▷특위에 경제단체도 참여하나요.

“당연히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위원회를 구성해야 합니다. 다만 특위 의견은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특위를 구성하더라도 공정위가 그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지는 않을 겁니다.”

▷자료제출명령은 기업의 영업기밀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국에서 민사소송이 활성화되지 않은 건 입증책임을 진 원고가 증거자료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료제출명령제를 도입해 원고의 입증책임을 덜어주려고 합니다. 제출명령을 받은 자료가 영업기밀일 때는 (제출 범위에) 상당한 제한이 있어야 합니다. 불법 입증과 손해액 계산에 필요한 정도만 대상이 될 것입니다.”

▷국가가 소비자 대신 소송을 제기하는 ‘부권소송’ 도입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부권소송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에 있습니다. 미국은 다수의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을 때 주정부가 아버지(후견인)의 입장에서 소송을 내고, 승소하면 배상금을 피해자에게 분배합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부권소송과 관련한 국민의 인지 수준이 낮습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은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공정위 소관 법률 중 가맹거래법·유통업법·대리점법 등 ‘유통 3법’과 표시광고법은 이미 폐지 계획을 밝혔습니다. 하도급법은 선별적으로 폐지할 계획입니다. 하도급법 위반 행위 중 기술유용은 중소기업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기 때문에 (전속고발권) 폐지가 필요합니다. 반면 대금 미지급, 위탁 취소, 부당 반품 등 다른 하도급법 위반은 대부분 계약·채무의 불이행이나 불완전이행 등 민사적 성격이어서 전속고발권 폐지에 신중해야 합니다. 공정거래법과 관련해서는 (전속고발권 폐지 여부를) 추가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공정위는 전자상거래법도 전면 개편 수준으로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통신판매업자인 소셜커머스 업체가 통신판매중개업인 오픈마켓으로 전환해 법적 규제를 빠져나가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통신판매업자는 공급자이기 때문에 규제를 엄격히 받고 있지만 중개만 하는 통신판매중개업자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합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 피해가 빈발하고 있습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거래 비중이 커지는 상황에서 2002년 PC통신 시절 제정된 전자상거래법으로는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통신판매중개업자의 의무를 강화하는 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기업 분할 시 자사주 의결권 부활 금지’ 등 대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습니다.

“상법은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법률이 아닙니다. 재벌개혁을 위해 상법상 규제를 지나치게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제출돼 있는 상법 개정안에서 정부와 국회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작도록 정치적 판단이 이뤄져야 합니다.”

▷‘가마로강정 사태’에서 보듯 ‘갑질’ 근절 과정에서 ‘을’이 반발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가마로강정 사태의 핵심은 가맹본부가 점주에게 브랜드 통일성 유지와 무관한 물품까지 본부에서만 구입하도록 강제하면서 높은 유통마진을 챙겼다는 사실입니다. 점주가 가맹본부의 행위를 용인했다고 해서 위법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공정위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제시한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을 지난해 12월 스스로 뒤집었습니다. 정책 일관성을 훼손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법적 안정성의 가치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삼성이 공정위에 청탁해 성공한 로비였다는 것은 판결에서도 기본적인 사실관계로 인정된 바입니다. 과거의 잘못된 판단을 되돌리는 것이 공정위의 공신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정위 판단의 근거가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관련 1심 판결이 2심에서 뒤집어지지 않았나요.

“삼성물산 합병 건과 관련해 삼성의 성공한 로비였다는 사실관계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 공정위 내부에서도 거의 모든 직원이 과거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봤고 이 때문에 판결과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조사를 벌인 것입니다.”

▷‘코스닥 기업에 차등의결권 허용을 검토할 수 있다’는 발언은 의외라는 평이 있습니다.

“‘재벌 저격수’ 등 진보학자로서의 정형화된 이미지는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저) 스스로는 굉장히 신중하고 합리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정위원장 취임 후 ‘너무 말랑말랑해진 게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는 걸 알지만 개혁 의지는 조금도 후퇴하지 않았습니다.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차등의결권 도입도 필요성엔 공감하나 국민과 시장의 신뢰 축적이 전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상화폐 문제도 들여다보고 있습니까.

“가상화폐취급소(거래소)들은 통신판매업자로서 투자자 권리·의무에 대한 약관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주요 취급소 13곳을 조사한 결과 불공정약관이 발견됐습니다. 예컨대 발행관리 시스템 불량으로 투자자가 손해를 본 경우에도 취급소가 일절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식입니다. 불공정약관이 적발된 취급소에 다음달 시정조치를 내리겠습니다.”

● 김상조의 '장화홍련론'

"모든 불공정거래 문제 공정위가 다 해결할 순 없어"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큰 방향 중 하나는 ‘당사자 간 해결’을 늘리는 것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개편 방향을 설명하면서 고전소설 ‘장화홍련전’ 이야기를 했다.

그는 “서양 소설에선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직접 원수를 찾아가 복수하는데 장화·홍련은 귀신이 돼서도 애먼 마을 원님을 찾아가 해결하려 한다”며 “그러다 보니 원님이 자초지종을 듣기도 전에 놀라 심장마비로 죽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불공정거래 문제가 공정위에 몰리면 위원장도 돌연사할지 모른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공정위가 세상의 모든 불공정거래에 해결사로 나서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은 “한국은 이해당사자끼리의 문제를 국가 공권력에 맡기려는 경향이 있다”며 “시장에서 이해당사자들이 최대한 사적 자치 노력으로 해결하도록 경쟁법 질서를 세워갈 것”이라고 말했다.

△1962년 경북 구미 △서울 대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노사정위원회 경제개혁소위원회 책임전문위원 △재정경제원 금융산업발전심의회 위원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경제개혁연대 소장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