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태리 /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배우 김태리 /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혜성처럼 등장해 한국 영화계를 뒤흔들었다. 2016년 영화 '아가씨'로 강렬한 데뷔식을 치른 김태리(28)는 반짝 스타로 그치지 않았다. 단숨에 원톱 주연에 오르고, 흥행 보증수표 김은숙 작가의 신작 주인공으로도 낙점됐다.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호평받으며 굵직한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엔 힐링 영화로 돌아왔다. '리틀 포레스트'(감독 임순례)는 서울에서 시험, 취업, 연애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김태리 분)이 오랜 친구들과 지내며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최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태리는 작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배우로서의 고민을 조심스레 털어놨다.

"한국 영화 중 조용하고 담담하게 흘러가는 소탈한 이야기가 많지 않아서 '리틀 포레스트'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감독님을 만나 보니 이 영화를 얼마나 잘 만들어주실지 머릿속에 그려져서 선택했죠. 저도 자연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사계절 촬영에 대한 기대감이 컸어요."

극 중 김태리가 연기한 혜원은 시골에서 스스로 키운 작물들로 제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친구들과 정서적 교류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혜원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휴식과 위로를 찾아나가는 인물이다.

"혜원은 이기적인 면이 있으면서 자신의 삶에 집중해요. 인정 욕구가 강하고 독립적인 성격이 저와 많이 닮았죠. 사계절을 촬영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캐릭터 안에 '김태리'가 많이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이 저에게 이 역할을 맡긴 거라 생각하고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혜원은 세심하지 못 한 성격이다. 그래서 때로는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그 이유를 몰라 답답해한다. 이럴 땐 직접 만든 음식을 내밀며 친구와의 갈등을 풀어낸다. 요리는 혜원의 취미이자 특기다. 극에는 혜원이 만든 막걸리, 콩국수, 나물 파스타, 오코노미야키, 꽃 튀김 등 예술 작품과 같은 음식들이 대거 등장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요리들을 미리 만들어봤어요. 과정을 익히기보다는 푸드스타일리스트의 손짓, 칼질을 배우려고 했죠. 혜원은 엄마에게 배운 요리 지식과 자연스레 쌓인 경력이 있으니 야무져 보여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임순례 감독은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조명하는 동시에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는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치열하지 않은 임 감독 스타일대로 촬영 현장도 편안한 분위기로 흘러갔고 김태리 역시 자연스럽게 이곳에 녹아들었다.

"감독님은 말씀을 많이 안 하시는 편이에요. 배우를 내버려 두는 스타일이라 처음엔 적응하기가 어려웠죠. 저는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자꾸 '오케이'가 나오니까요. 그런데 영화를 보니 왜 그러셨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해요. 연기와 장면 모두 100% 채워지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거든요."

평소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던 김태리도 이 영화를 만나며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리틀 포레스트'는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을 의미, 과거 그의 '리틀 포레스트'는 수면이었다. 하지만 잠을 자는 건 고민으로부터 회피하는 것이었고, 결국 산을 찾아다니며 자신만의 힐링 공간을 만들었다.
배우 김태리 /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배우 김태리 /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힘들다', '나는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지?'라고 생각하는데 구체적인 질문이 없다는 게 부끄럽고 창피해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하더라고요. 뭐가 문제인지 모르면서 삶에 쫓기고 불안함과 초조함을 느끼죠. 어떤 분에게는 내려놓음이, 어떤 분에게는 강행돌파가 해결 방법일 수 있어요. 무언가를 선택하더라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영화가 '리틀 포레스트'죠."

김태리는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리틀 포레스트'를 추천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다시 배우로서의 깊은 고민을 털어놨다.

"저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딱 맞는 옷이 아니에요. 이렇게 괴로울 줄 모르고 시작했죠. 좀 더 재밌고 즐겁게 일을 하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게 하면 제대로 못하니까요. 이번 영화도 관객들이 어떻게 보실지 걱정되면서 설레요."

김태리는 올해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지난해 말 영화 '1987'로 큰 사랑을 받은 그는 28일 개봉하는 '리틀 포레스트'로 관객을 만난 뒤, 오는 7월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으로 안방 극장 신고식을 치른다.

"'배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는 김태리다. 그럼에도 작품마다 달라지는 그녀의 모습을 볼 때면 다음엔 얼마나 더 성장한 연기를 보여줄지 기다려진다.

한예진 한경닷컴 기자 geni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