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이어 자동차 등 구조조정이 요구되는 산업은 늘어나고 있지만 구조조정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선진국 같으면 벌써 끝났어야 할 조선업 구조조정이 정권을 넘어 오락가락하는 게 단적인 사례다. 이러다가 산업 구조조정이 타이밍을 놓친 채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곧 발표한다는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등 중형 조선사 구조조정 방안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2차 경영컨설팅 보고서를 토대로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고 하지만, 두 회사 모두 회생 쪽으로 갈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경영 진단을 아무리 해 본들 정치논리가 개입하면 모든 게 무용지물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구조조정보다 조선업 회복을 강조하고 정부가 금융 관점, 산업 관점을 모두 살피겠다고 했을 때부터 시장에서는 이미 구조조정의 추진력 상실을 우려했다. 일본 등 선진국은 그런 논리를 펴지 못해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게 아니다. 경쟁력 없는 사업의 과감한 정리, 인력·비용 감축 등의 고통 분담 등이 거부되는 상황에서는 조선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선들 산업이 되살아난다는 보장이 없다.

‘한시성’ ‘고통분담’ ‘일관성’이라는 구조조정 3원칙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시간을 질질 끌고,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정치논리가 개입하면 고통은 더 커질 뿐이라는 역사적 교훈의 산물이다. 한국에선 이 원칙이 전부 반대로 가고 있다.

조선업은 한국 산업의 구조조정 성패를 가늠할 시금석이나 다름없다. 자동차 등 줄줄이 이어질 다른 산업의 구조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행여 “정권이 바뀔 때까지 버티면 산다”는 학습효과가 부실기업들 사이에 굳어지면 조선업은 물론 다른 산업 구조조정도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