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후 개설된 탈법 목적의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비율 산정 기준과 징수 절차 등도 손보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5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금융실명제 제도개선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실명제 시행(1993년 8월12일) 후 개설된 계좌를 활용한 탈법 목적의 차명 금융거래에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금융실명법 개정을 추진한다”며 “개정안이 신속히 국회를 통과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은 실명제 시행 전 개설된 차명계좌에만 과징금을 부과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실명제 시행 전 개설된 차명계좌에 부과하는 과징금은 시행일 기준 금융자산 가액의 50%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실명제 시행 전 개설한 것으로 확인된 27개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은 30억9000만원이다.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 실명제 시행일 당시 27개 계좌의 자산총액이 61억8000만원이어서다.

대상이 확대되면 이 회장이 내야 할 과징금 규모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2008년 삼성 특검으로 밝혀진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1197개(4조4000억원 규모 추정)다. 실명법이 개정되면 이들 계좌 역시 부과 대상이다. 김 부위원장은 “(이 회장과) 비슷한 재벌그룹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도 국세청, 금감원 등 관계기관이 적극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자녀 등 가족 명의이거나 동창회, 친목 모임 등 선의의 차명계좌는 과징금 대상이 아니라고 금융위는 설명했다. 김 부위원장은 “탈법 행위를 목적으로 한 차명거래만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어서 대다수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계 일각에선 금융위가 당초 차명계좌 관련 법령 해석을 뒤집고 소급 적용을 추진하는 것은 법률 안정성을 해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