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과정(過程) 중시 시대
“성적이나 결과보다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쪽으로 국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운영 방식 등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겠다.”

지난달 평창 동계올림픽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준준결승 경기에서 있었던 팀워크 논란과 관련해 지난 6일 청와대가 진상조사를 하겠다면서 밝힌 메시지가 매우 인상적이다.

올림픽에서 메달만 따면 그동안의 모든 행위가 면죄부를 받아왔기에 코치들의 비인간적인 훈련 방식이나 선수들의 불법적인 행위가 용납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체감해왔다. 즉, 결과만 좋다면 과정 따위는 깔끔하게 무시되는 이른바 ‘성과 지상주의’가 과거 우리 사회에 팽배했다. 심지어 일부 기성세대는 “이 세상은 정직하면 손해 본다”고 외치며 규정과 규칙을 위반하더라도 이익을 취할 수 있다면 더 옳은 것이라고 말하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편법과 꼼수는 날카로운 잣대로 평가하고, 잘못인 줄 알면서 스스로 합리화하고 당장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이와 같은 변화를 이미 경험했다. 과거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2005년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을 많은 이들이 아직도 기억할 것이다. 당시 국가의 과학 정책과 예산 집행 과정의 상당 부분이 서울대 수의대에서 체세포 복제를 연구하던 그를 중심으로 이뤄졌음을 또렷이 기억한다. 신문 지상에는 황 교수의 연구를 위해 그가 사용하는 연구비의 출처를 묻지 말아야 하며 국정감사에서도 면제해야 한다는 말이 아무런 정제 과정 없이 올라왔다.

하지만 당시의 젊은 과학자들이 여론의 뭇매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했고, 결국 엄청난 파장 속에서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조작이었음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과학계의 큰 오점으로 남아 있지만, 의혹을 폭로한 이들의 열정과 신념, 용기는 큰 자산으로 남았다. 그 씨앗이 한국의 생명과학 분야에 뿌려져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바이오 기업들이 생겨났고, 토종 신약 개발 기술이 글로벌 제약사에 수출되는 의미 있는 성과도 계속 창출되고 있다.

생명과학 분야에 만연하던 성과 지상주의가 황우석 사태를 겪으며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지고, 이제는 한국을 선진 생명과학 국가로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이 된 것처럼 지금의 변화가 우리나라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