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빨리 보자"며 하루 먼저 불러…정 실장에게 언론브리핑 즉석 요청
취임 후 처음으로 백악관 기자실 찾아 "한국이 중대 발표할 것" 공지
정의용, 트럼프 옆자리에서 브리핑… 미 고위급 20여명 귀 '쫑긋'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하러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8일(미국 현지시간) 오후 3시 30분부터 백악관 회의실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에게 방북 결과를 브리핑하기로 했다.

브리핑이 시작되자 매티스 국방 장관과 존 설리번 국무부 부장관, 데이비드 멀패스 미국 재무부 차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 등 고위급 관계자 20여명이 회의실에 입장해 정 실장의 발언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정부 인사의 브리핑을 듣기 위해 미국 정부의 고위 관계자 20여명이 몰려드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정 실장의 브리핑 내용이 궁금하기는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 우리 측은 9일 트럼프 대통령을 예방하는 일정을 놓고 미국 측과 조율 중이었으나, 브리핑 중이던 정 실장에게 "빨리 보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갈이 왔다.

이에 정 실장과 서 원장은 브리핑을 서둘러 마치고 오후 4시15분께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인 오벌오피스로 이동, 트럼프 대통령을 예방했다.

정 실장은 오벌오피스 벽난로 앞에 놓인 두 개의 의자 중 왼쪽 의자에 착석했다.

오른쪽 의자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앉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앉은 의자와 정 실장이 앉은 의자는 크기와 모양, 색깔이 모두 같았다.

두 사람을 가운데 두고 트럼프 행정부와 백악관 최고위 참모들이 양 옆에 놓인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소파에 앉은 배석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매티스 국방 장관, 코츠 국가정보국장, 존 케리 비서실장,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설리번 부장관, 하스펠 부국장 등이었다.

이 자리에서 정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와 '가능한 조기에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때 미국 언론은 정 실장이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고 보도했으나, 정 실장은 친서가 아닌 구두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 실장으로부터 김 위원장의 '만남 의사'를 접한 트럼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바로 "좋다.

만나겠다"라며 수락 의사를 밝히고, 4월 중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이에 정 실장은 우선 남북정상이 4월 말 회담한 뒤 북미가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5월로 북미회담 일정이 확정됐다.
정의용, 트럼프 옆자리에서 브리핑… 미 고위급 20여명 귀 '쫑긋'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정 실장에게 "부탁이 있다.

여기까지 온 김에 한국 대표들이 직접 오늘 논의 내용을 한국 대표 이름으로 백악관에서 직접 발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정 실장과 서 원장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었다.

갑작스러운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정 실장은 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수락하고 미국 NSC(국가안전보장회의) 관계자와 발표문안 조율에 들어갔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실에 들러 "한국이 북한과 관련해 오후 7시에 중대 발표(major announcement)를 할 것"이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백악관 기자실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 CNN, ABC, 폭스뉴스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정 실장의 언론 브리핑에 사실을 긴급 뉴스로 전했다.

오후 7시를 조금 넘어 정 실장이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 마련된 언론브리핑 장소에 모습을 나타내자 주요 언론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정 실장은 백악관 측과 조율한 언론 발표문을 영어로 낭독했다.

정 실장에게 미국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으나, 정 실장은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고 발표를 마치자 마자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Thank you. Good night)"이라는 인사를 남긴 채 그대로 뒤돌아서서 퇴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