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8년간 매달려 개발한 신(新)루미놀… 비용 낮추고 증거는 더 확실히 찾는다"
겉보기엔 아무 흔적도 없는 사건 현장. 하지만 경찰 과학수사요원들이 루미놀 용액을 뿌리자 어둠 속에서 현장 곳곳 파랗게 빛나는 얼룩이 드러난다. 핏자국이다.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 같은 현장조사 장면 덕분에 루미놀 용액은 일반에도 꽤 익숙한 시약이다. 범인은 닦아 없애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증거는 반드시 남는다. 문제는 어떻게 찾아내느냐다. 혈액에 민감하게 발광하는 루미놀은 증거를 건져 올리는 유용한 도구다.

임승 광주지방경찰청 보건사무관(사진)이 루미놀 시약을 처음 접한 것도 2005년 입직 후 현장에 출동한 자리에서였다. 당시 쓰던 국산 시약은 아주 어두운 곳에서만 흐릿하게 발광했다. 잘 보이지도 않아 증거 사진을 찍기 위해 특수 촬영 기법을 따로 배워야 할 정도였다. 결국 경찰청은 더 성능이 좋은 고가의 해외 제품을 수입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임 사무관은 “기본 원료 물질을 바꿔서 가격은 낮추고 성능은 개선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2009년부터 퇴근 후 (당시 소속된 경남경찰청 산하) 다기능증거분석실에서 실험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목표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해외 제품보다 저렴하게 만드는 것. 이 때문에 8년간 실험에 쓴 돈도 200여만원에 그쳤다. 저렴한 원료만 이용해서다. 두 번째로 혈흔에 남아 있는 DNA를 훼손하지 말아야 했다. 경찰이 현장에서 채취한 혈흔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 보내 DNA 분석을 한다. 증거 채취 단계에서 잘못된 시약으로 DNA가 망가지면 모든 노력이 무용지물이 된다. 임 사무관은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을 반복했다”며 “실험을 함께한 임시근 국과수 박사와 ‘외국 제품엔 우리가 모르는 물질이 들어 있나 보다’라며 한탄도 종종 했다”고 털어놨다.

이같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신(新) 루미놀 시약은 해외 제품의 성능을 넘어섰다. 혈흔 민감성이 높아 1만 배 희석된 핏자국도 찾아낸다. 1L 제조하는 데 드는 비용은 1만4000원으로 14만원에 달하는 수입품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DNA에 영향을 주지 않을뿐더러 한 번 만들면 1주일 이상 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수입품의 사용기간은 하루 안팎이다.

지난해 9~11월 전국 지방경찰청으로 송부돼 현장 테스트 끝에 합격점을 받았다. 경남 지역에서는 당초 자살로 알려진 사건이 이 시약을 활용해 찾은 증거 덕분에 타살로 밝혀졌다. 우수성을 인정받아 행정안전부 중앙우수제안 금상(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현재 국유특허 및 해외특허 출원을 진행 중이다.

경찰 내에서 각종 수사 기법이나 장비 연구개발(R&D)에 도전해볼 만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외국에서 들여온 수사 및 감식 장비나 기법을 국산화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임 사무관 역시 앞으로 새로운 R&D에 착수할 계획이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건 현장 어딘가에 남겨진 증거를 찾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시약 및 장비를 개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