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4월에 김정은 만나겠다" 제안… 정의용 실장 "남북정상회담 먼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대미(對美)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일행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만남은 방문 첫 날인 8일(현지시간) 전격 이뤄졌다. 당초 ‘이튿날 면담’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급히 만남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특사단은 8일 오전 9시50분께 워싱턴DC 덜레스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입국장에서 기다리던 현지 한국 특파원들을 만나지 않고 곧바로 버스를 타고 모처로 이동했다. 특사단은 오후 2시30분 백악관을 방문해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에게 방북결과를 설명하고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정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한 한 조기에 만나고 싶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얘기를 나누면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난 6일 방북 결과 브리핑에서 공개하지 않은 미국에 대한 북한의 ‘히든카드’가 김정은의 만남 제안이었던 것이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을 만나 보니 솔직히 얘기하고 진정성이 느껴졌다”며 “과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조심해야 하지만 김 위원장에 대한 우리 판단을 미국이 받아주고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정 실장은 이어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트럼프 대통령이 큰 힘이 됐고 그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문 대통령이 나를 여기 보낸 것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하고 앞으로도 한·미 간 완벽한 공조를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 실장이 전한 김정은의 제안에 “좋다. 만나겠다”며 그 자리에서 수락했다고 김 대변인은 밝혔다. 그러면서 4월에 만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정 실장은 우선 다음달 말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을 한 뒤 북·미가 만나는 게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고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여는 데 동의했다.

특사단과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은 오후 4시15분부터 5시까지 45분 동안 이뤄졌다. 이 자리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12명이 배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 실장의 얘기를 듣고는 참모진에 “거봐라. (북한과) 대화하는 게 잘한 것”이라며 수긍했다고 한다. 정 실장에게는 자신과의 면담 결과를 백악관에서 직접 발표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 실장은 맥매스터 보좌관과 조율을 거쳐 현지시간으로 오후 7시 백악관에서 북·미 정상회담 합의 소식을 브리핑했다. 문 대통령에게는 청와대와 백악관 간 보안 전화를 통해 보고했다.

앞서 우리 특사단은 백악관에 도착한 뒤 정 실장은 맥매스터 안보보좌관을, 서 원장은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부국장을 1 대 1로 만났다. 이들 네 사람은 오후 3시부터 30분간 2 대 2 회의를 이어갔다. 오후 3시30분부터는 매티스 국방장관, 존 설리번 국무부 부장관 등 20여 명의 미 정부 각료들이 회의에 참석했다. 우리 측에선 정 실장, 서 원장 외 조윤제 주미대사가 참석했다. 이 회의는 오후 4시30분까지 1시간 동안 이뤄질 예정이었다. 회의 도중 “빨리 만나자. 빨리 오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언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벌오피스에서 특사단으로부터 방북 결과를 들은 뒤 오후 5시를 조금 넘은 시각 백악관 기자실에 들러 “한국이 북한과 관련해 오후 7시에 중대 발표를 할 것”이라고 직접 알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실을 ‘깜짝 방문’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