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구분하지 않고 제기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바람이 국회에서도 본격적으로 이는 분위기다.

9일 국회 직원 페이스북 페이지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따르면 의원실 비서 등으로 일하는 동안 국회의원이나 선임 보좌관·비서관 등으로부터 성희롱·성추행·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9대 총선 때 XXX당 서울 지역구 의원실에서 인턴을 했다는 A씨는 이날 올린 글에서 선거운동을 위해 선임 보좌관과 같은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앞서 직원들이 쓰는 숙소에서 이미 한 차례 성폭행을 당할 뻔한 직후였다고 A씨는 전했다.

A씨는 "당시 너무 어렸고 무지해 (나) 자신을 지킬 줄 몰랐다.

성폭행을 저지른 보좌관이 올곧고 바른 분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더욱 괴로웠다"며 "권력의 정점인 국회에서 더는 여성 보좌진들이 성폭력 문제로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해당 보좌관이 속한 정당은 현재 야당으로, A씨는 당초 정당 명칭을 실명으로 썼다가 익명으로 고쳤다.

또 20여 년 전 대학 졸업 후 국회의원 비서로 근무했다는 B씨는 의원실 내 보좌관이 남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시시때때로 뒤에서 껴안거나 엉덩이를 만졌다는 글을 올렸다.

해당 보좌관은 '남자친구와 데이트는 언제 하느냐', '키스는 해봤느냐'며 사생활에 관한 질문을 자주 던졌고 도망가려는 자신을 힘으로 제압해 강제로 키스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성폭력을 일삼던 보좌관이 자신의 딸에게는 통화할 때마다 친절한 아빠 행세를 하는 것을 보고 구역질이 났다"며 "남자 보좌진들에게 성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놨지만 다들 그저 알고도 모르는 척했다"고 말했다.

B씨는 "조금 전 혹시나 해당 보좌관의 정보를 인터넷으로 찾아봤더니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수감된 후 특별사면을 받아 또다시 20대 국회의원 보좌관을 했다"며 분노를 표시했다.

의원실 인턴을 그만두자 함께 일했던 의원이 연락 와 '애인하자'며 접근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대학원 졸업 후 의원실 인턴을 6개월가량 했다는 C씨는 글에서 "퇴직 후 의원이 안부를 물으며 '보고 싶었다', '왜 그만뒀느냐'며 애인으로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고 적었다.

C씨는 "그 의원은 '네가 일하는 동안 날 마음에 있어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보다 더 많은 나이인데도 나를 직원이 아닌 여자로 생각했었던 것"이라고 분개해 했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나온 남자들의 행동 규칙, 이른바 '펜스 룰'(Pence rule)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펜스 룰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2002년 언론 인터뷰에서 '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현직 의원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여성 보좌진은 "우리 의원님은 성추행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오늘 의원님이 '요즘 주변에서 여직원들을 전부 자르고 남자들로만 고용하라고 한다'고 웃으며 농담을 했다"며 "장난으로나마 미투 운동이 '여직원 해고'로 귀결되는 것을 보고 섬뜩해졌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