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중재로 북·미 직접 대화의 물꼬가 트이자 한반도 주변 강국인 일본과 중국에선 ‘재팬 패싱(일본 배제)’과 ‘차이나 패싱(중국 배제)’ 우려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동북아시아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안에 자국이 배제되는 모습이 가시화되자 조바심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10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부터 핵사찰을 받게 되면 인원과 기자재 조달에 필요한 초기 비용 3억엔(약 30억770만원)을 부담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북한이 남북 회합에서 비핵화 의사를 보인 것과 관련해 이 같은 방침을 정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2009년 IAEA 감시요원을 추방한 뒤 핵사찰을 받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우라늄 농축 공장과 원자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공장 등이 있는 영변의 핵시설을 염두에 두고 비용 부담 방침을 정했다.

IAEA의 북한 핵사찰과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일본 정부가 비용지원 방침을 정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교도통신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에 비해 뒤처진 일본이 비핵화에 공헌하는 자세를 보여 존재감을 발휘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중국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차이나 패싱 우려에 적잖게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 등은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중국이 주변화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며 “중국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안정”이라며 짐짓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중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도 공식적으로는 북·미 정상회담 합의 등으로 한반도 상황이 급변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북한과 미국에 의해 중국 이익이 희생될 가능성이 있다며 불안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