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사장
정병국 사장
국내 유일의 공업용 다이아몬드 생산업체인 일진다이아몬드가 세계 시장에서 소리 없는 ‘다이아몬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값싼 중국산 다이아몬드가 쏟아져 나오면서 콘크리트 목재 등 저가 제품 분야에서 벗어나 태양광 석유장비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 사업 영역을 재편하고 있다. 정병국 일진다이아몬드 사장은 지난 9일 “신제품 영업력을 강화해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경쟁 업체인 DI(다이아몬드 이노베이션즈·옛 GE 사업부)와 E6(엘레멘트6·드비어스 계열사)를 넘어서겠다”고 말했다.

◆중국 추격에 사업구조 재편

공업용 합성 다이아몬드는 흑연 덩어리에 섭씨 1400~1500도, 5만 기압(1㎠ 크기를 50t 무게로 누르는 힘)의 열과 압력을 가해 생산한다. 크기와 모양이 제 각각인 알갱이 형태로 나오는데 이를 균일하게 분류하면 1000여 종에 달한다.

다이아몬드의 노란 알갱이(그리드)와 가루는 모든 물질을 깎고 자르고 다듬는 데 쓰인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건축·토목 현장의 굴착·절삭 장비부터 각종 정밀기계, 항공·자동차, 태양광, LED(발광다이오드) 생산라인까지 거의 전 산업에 적용된다. 일진다이아몬드의 납품처도 전 세계 700개사에 이른다. 미국 DI와 남아프리카공화국 E6가 양분하는 세계 공업용 다이아몬드 시장에 일진은 1987년 뛰어들어 현재 ‘빅3’ 구도를 만들었다. 전체 매출의 80~85%를 해외에서 벌고 있다.

공업용 다이아몬드
공업용 다이아몬드
근래 빅3는 중국의 위협을 받고 있다. 값싼 중국산 다이아몬드가 시장에 들어오면서 물량 기준으로 글로벌 빅3 점유율이 30~40%로 낮아졌다. 이 중 일진다이아몬드 시장 점유율은 10%에 조금 못 미친다. 정 사장은 올해 3대 경영전략으로 ‘기존 제품의 품질 향상(균일한 품질)’ ‘신제품·신기술’ ‘영업력 강화’를 내걸었다. 그는 “값싼 중국산 제품이 아직 들어오지 못하는 고부가가치 제품군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바꾸고 있다”며 “태양광의 잉곳이나 웨이퍼를 정밀하게 자르는 장비, 석유 시추 설비 등이 대표적인 신규 시장”이라고 말했다. 피아노 줄과 같은 쇠줄에 미세한 다이아몬드 알갱이를 입힌 ‘다이아몬드 와이어(DW)’는 태양광 시장에서 수요가 늘고 있다. 일진다이아몬드는 미국의 한 원유 관련 업체와 다이아몬드를 적용한 시추 소재의 공동 개발도 추진 중이다.

◆차세대 먹거리 수소연료탱크

중국산 습격에도… 다이아처럼 강해지고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일진다이아몬드 주가(13일 종가 2만7350원)는 작년 이맘 때와 비교해 네 배가량 뛰었다. 자회사 일진복합소재가 만드는 수소자동차용 연료탱크 기술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고강도 플라스틱 탱크에 탄소섬유를 감아 강철보다 10배 더 단단하면서도 무게는 크게 줄인 수소연료탱크를 현대자동차에 납품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운행된 3세대 수소전기버스와 수소전기차 ‘넥쏘’에 탑재됐다. 정 사장은 “국내에선 유일하게 일진복합소재가, 세계적으로도 도요타 헥사곤 등 3개사 정도만 독자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기업 DNA 이식”

정 사장은 지난해 일진그룹에 사업개발실장(사장)으로 합류했다가 올초 일진다이아몬드 사장에 임명됐다. 그전엔 글로벌 소재 기업 3M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며 한국 및 중국 법인장을 지냈다.

그는 3M에 근무하며 체득한 글로벌 기업 DNA를 일진다이아몬드에 적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상위 10위권 주요 고객을 집중 관리하는 ‘톱10 키 어카운트’ 프로그램이다. 정 사장은 매주 화요일(충북 음성)과 목요일(경기 안산)엔 공장으로 출근하지만 나머지 3일은 국내외 고객을 만난다. 매달 1주일씩 해외 바이어를 만나러 출장길에도 오른다. 정 사장은 “소재 기업은 전방산업과 완성품 제조사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기술 진화와 메가트렌드를 예측해야 한다”며 “고객과의 관계에서 이를 읽어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도 정 사장이 강조하는 대목이다. 그는 “3M 연구소에선 실패한 연구개발 사례도 자랑스럽게 공유한다”며 “실패와 비난이 두렵지 않고 서로 경청하며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에서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말했다.

음성=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