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3월14일 오후2시21분

[마켓인사이트] "외부 민간인이 의결권 행사하는 건… 국민연금에 '후진기어' 넣는 것"
“내부 전문가를 믿지 못하고 외부 민간인에게 의결권 행사를 위탁하는 것은 국민연금에 후진기어를 넣는 것과 같은 조치입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사진)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권한을 민간인으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결권전문위)로 넘긴다는 보건복지부 방침에 대해 “교수나 연구원인 의결권전문위원들이 의결권을 행사할 역량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다. 신 교수는 “의결권전문위는 기금운용본부보다 외부 압력에 더 취약하다”며 “의결권 행사의 독립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복지부는 국민연금 의결권전문위가 요구하는 사안에 대해 기금운용본부가 의결권 행사 권한을 의결권전문위에 넘겨야 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지침은 기금운용본부가 찬성 또는 반대하기 곤란한 경우에 한해 의결권전문위에 ‘결정을 요청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개정안이 기금운용위원회를 통과하면 9명의 전문위원이 국내 주요 기업과 금융회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180여 개에 달한다. 의결권전문위는 정부 추천 인사 2명, 근로자 단체와 사용자 단체 추천 각 2명, 지역가입자 추천 2명, 연구기관 추천 1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신 교수는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해당 기업과 산업, 경제 흐름 등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기금운용본부 내 투자위원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기업, 산업, 거시경제를 지켜보며 중요한 투자결정을 내려온 베테랑들인 데 비해 전문위원들은 그런 경험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가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재판에 참석해 ‘시민단체와 학계로 구성된 전문위는 각자 본인 얘기만 했고 공단에서 준비한 분석 자료는 보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당시 국민연금 관계자는 “복지부 관계자도 ‘전문위가 이런 식으로 열리냐’며 참담해 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반 결정을 의결권전문위에 넘기지 않은 것도 외압 때문이 아니라 전문위의 전문성과 성실성이 떨어지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결권전문위원을 복지부 장관이 임명하기 때문에 외압을 넣기 훨씬 쉬운 구조”라고 주장했다. 또 “위원들을 추천하는 정부, 사용자 단체, 근로자 단체, 지역가입자 단체 등의 이해관계에도 휘둘릴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국민연금은 국내 주요 대기업 지분을 평균 9%가량 가지고 있는 단일 최대주주로 세계에서 자국 기업 주식 보유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며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금 사회주의를 막기 위해서는 민간 자산운용사에 주식 운용과 의결권 행사를 모두 위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일본 공적연기금(GPIF)은 국민연금처럼 일본 주요 기업의 지분을 대규모 보유하고 있지만 주식 운용과 의결권 행사는 100% 민간 자산운용사에 맡기고 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