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IZ School] "제대로 진단해야 쓰임새가 넓어진다"… 경제지표, 복잡하고 많은 이유 있었네
만물이 다시 태어나는 봄이다. 찌뿌둥한 몸에도 다시 기름칠을 할 때다. 배드민턴을 칠까, 등산을 할까, 자전거를 탈까. 즐거운 고민이다. 신발장을 열어본다. 실내 배드민턴장에서는 배드민턴화를 신어야 한다. 얼마 전에는 미끄러지지 않고 가벼운 새 등산화로 업그레이드했다. 자전거 라이딩을 제대로 하기 위해 자전거용 신발을 살까 고민이다.

여자는 학교 갈 때, 여행 갈 때, 쇼핑할 때, 해변으로 떠날 때 모두 거기에 맞는 가방이 있지만, 남자는 하나면 충분하다는 우스갯말이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중에는 구두, 주말에는 운동화. 두 가지면 충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취미활동을 다양하게 해보면서 많은 신발이 스쳐 갔다. 야구용 신발은 결국 버렸지만 아직 골프화와 볼링화는 남아 있다. 기능이 지속적으로 좋아지니 더 나은 제품으로 갈아타는 것도 필요했다.

[한경 BIZ School] "제대로 진단해야 쓰임새가 넓어진다"… 경제지표, 복잡하고 많은 이유 있었네
경제와 경영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경제 환경을 정확히 이해하고, 기업 실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많은 지표가 존재한다. 한국은행에서는 ‘경제통계시스템’을 통해 100대 지표를 제공한다. 이 자료를 처음 본 사람들은 너무 많은 지표에 놀라며 묻곤 했다. 왜 이렇게 많고 복잡한 거냐고. 이 많은 걸 어떻게 알아가야 하느냐고.

첫 번째 물음, 왜 이렇게 많고 복잡한가. ‘많은’ 이유는 용도가 다르기 때문이고, ‘복잡한’ 이유는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서다. 지표에는 경제성장률, 민간소비 증가율, 산업생산 증가율, 실업률, 생활물가지수, 경상수지 등이 있다. 이런 지표들은 용도에 따라 이름이 정해져 있어 어느 정도 의미 파악이 가능하다.

그런데 유독 통화지표는 M1, M2, M3와 같이 머니(Money) 뒤에 숫자를 붙여 세분화해 측정하고 발표하는데, 이는 그만큼 통화지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가 한 사람의 몸이라면 화폐는 혈액과 같은 역할을 한다. 통화량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경제활동이 다양해지면서 어디까지 통화로 볼 것인가가 달라진다. 지폐에 예금 수준을 포함할 수도 있지만 적금 금융상품도 포함할 수 있다. 이렇게 화폐의 범위를 좁히기도 하고(협의통화, M1 지표) 넓히기도 하는데(광의통화, M2 지표), 한국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매뉴얼에 따라 추가로 금융회사 유동성(Lf), 전체적인 유동성지표(L)도 발표하고 있다. 경제지표가 많고 복잡한 것은 경제를 보는 방향과 관점이 더 정교해지고, 더 진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운동화가 다양화됐듯이….

두 번째 질문, 이 많은 걸 어떻게 알아가야 할까. 레저 활동의 기본은 운동화이듯이 기초적인 경제지표부터 습득해 가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경기 분석의 기본은 국내총생산(GDP)이다. 1930년 이전에는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측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없었다. 치마 길이를 통해 경기를 판단하는 예술적인(?) 방법이 쓰일 뿐이었다. 대공황에 처한 미국 정부의 절실한 요구에 사이먼 쿠즈네츠는 GDP란 개념을 고안해냈고, 비로소 전체 경제를 과학적으로 진단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쿠즈네츠는 이 공로로 197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고, GDP는 한 국가의 종합적인 경제 흐름과 경제 수준을 파악하는 데 가장 우수한 단일지표로 애용되고 있다.

GDP는 여러 가지에 활용된다. 이는 민간소비와 기업 투자, 정부 지출과 순수출로 나눌 수 있다. 미국은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 수준으로 가장 크고, 중국은 기업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42%대로 가장 높다. 한국은 민간소비(48%)와 수출(44%)이 차지하는 비중이 모두 크다. 나라마다 구성지표가 다르니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도 달라진다. 미국은 내수 위주, 한국은 수출 위주라면 중국은 투자 위주 국가인 셈이다.

GDP는 인구로 나누어 1인당 국민소득을 계산하기도 하고, 이전의 국민소득과 비교해 경제성장률을 계산하기도 한다. 농업과 같은 1차산업(2.2%), 제조업인 2차산업(38.8%), 서비스업인 3차산업(59.1%)으로 분류해 어떤 산업이 경제 성장의 원천인지를 측정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정부의 재정수지와 GDP 비교, 국가부채와 GDP 비교, 가계부채와 GDP 비교, 경상수지와 GDP 비교 등 GDP는 폭넓고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경제지표를 볼 때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은 목적을 생각하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탈 때 배드민턴화를 신거나, 배드민턴장에서 등산화를 신으면 안 되는 것처럼 경제지표를 볼 때도 목적이 무엇인지(왜 보는지), 무엇을 봐야 하는지, 어떻게 봐야 하는지 ‘3단계 스텝(why-what-how)’을 거치는 것이 좋다. 알고 싶은 경기가 전체적인 부분인지, 생산과 소비 관련인지, 수출입과 대외 부분인지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 관심 있는 분야가 자산시장이라면 주식인지, 채권인지, 부동산인지에 따라서 봐야 하는 지표도 달라진다.

누군가가 물었다. 한 달에 서너 번 사용하면서 왜 그렇게 많은 신발이 필요하냐고. 그래서 답했다. 서너 번밖에 못 하니 제대로 즐겨야 하고, 그러니 용도에 맞는 신발이 필요하다고. 금융, 아는 만큼 보인다.

최일 < 이안금융그룹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