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借名)이란 남의 이름을 빌려 쓰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든 은행계좌를 차명계좌라고 하고, 소유자 명의를 실제 소유자가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해놓는 것을 명의신탁이라고 한다. 차명계좌에 대해서는 2014년부터 ‘차명거래금지법’을 시행,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차명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부동산도 1995년에 ‘부동산실명법’을 제정, 부동산 명의신탁을 전면 금지했다.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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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주식 실제 권리자는 명의주주"… 명의신탁 규제입법 필요
주식은 현재 차명을 이용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회사가 주식을 발행할 때 실제 출자자가 회사에 주식발행금액을 납입하고 주주가 되면서(이를 ‘주식인수’라고 함) 자기 이름으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타인) 이름(명의)으로 주식을 인수하는 경우가 생긴다. 타인 명의로 주식을 인수하는 방법은 그 타인을 기준으로 해 세 가지로 구분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를 ‘가설인’이라고 함) 명의로 하는 경우 △타인의 승낙 없이 주식을 인수하는 경우 △타인의 승낙을 얻어 주식을 인수하는 경우다.

타인 명의로 주식을 인수하면 법률상 세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누가 주식인수금액의 납입의무를 부담하는가. 둘째, 주식이 발행된 후에 누가 주주가 되는가(실제 권리자가 누구인가). 셋째, 누가 회사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다.

첫 번째 문제의 답은 상법에 규정돼 있다. 즉 가설인이나 타인 이름으로 주식을 인수하면 실제로 주식을 인수한 사람이 회사에 주식인수금액을 납입해야 한다. 타인의 승낙을 얻은 경우라면 실제로 주식을 인수한 사람과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연대해 납입할 책임이 있다.

세 번째 문제의 답은 법원이 주고 있다. ‘대법원 2017년 3월23일 선고 2015다248342 전원합의체 판결’은 명의주주와 실질주주 중 누가 회사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기존 실질주주 중심의 법리에서 주주명부에 적법하게 주주로 기재돼 있는 명의주주가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형식주의 법리로 판례를 변경했다.

그럼 두 번째 문제의 답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준 것이 ‘대법원 2017년 12월5일 선고 2016다265351 판결’이다.

“주주권은 명의주주가 행사”

[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주식 실제 권리자는 명의주주"… 명의신탁 규제입법 필요
이 판결의 사실관계를 알아보자. 피고 회사는 산업용 비산먼지 방지제 제조 및 판매, 환경오염방지 사업을 운영하는 비상장 회사다. 원고는 제철소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으로 친목단체인 ‘OO’ 회원 234명이다. 원고들은 피고 회사의 주주명부에 주주로 등재돼 있지는 않다.

제철소의 비산먼지로 인해 공해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공해 대책수립과 피해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대책협의회를 결성했다. 대책협의회 위원장은 제철소의 외주협력사와 상생협력협약을 맺었다. 협약서에는 피고 회사를 설립키로 하고 대책협의회 회원들이 피고 회사 주주와 임원이 되기로 정했다. 협약에 따라 외주협력사가 보유하는 특허를 양도하고 자본금을 출연해 피고 회사를 설립했다. 피고 회사의 자본금은 외주협력사 대표가 출연했고 원고들이 피고 회사에 자본금을 직접 납입한 사실이 없다. 그리고 협약에 따라 대책협의회는 해산됐다. 그 대신 대책협의회 회원을 중심으로 친목단체 ‘OO회’가 설립됐다. OO회는 피고 회사로부터 받은 수익금을 회원들의 집회참여도 등을 고려한 집회참여 평점에 따라 회원들에게 배분하고 있다. 원고들을 비롯한 대책협의회나 OO 회원들은 피고 회사에 직접 이익배당을 청구하거나 피고 회사의 주주총회에 참석하는 등 피고 회사의 주주라면 당연히 취해야 할 행위를 한 적이 없다.

원고들은 피고 회사의 수익금이 전부 대책협의회 또는 OO 회원들에게 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고 회사의 주주명부상의 주주는 원고를 비롯한 실질주주로부터 회사 주식의 명의만을 신탁받은 것에 불과하고 원고들을 비롯한 대책협의회 또는 OO 회원들 모두가 피고 회사의 실질주주라고 원고들은 주장했다.

제1심과 제2심은 원고들은 소를 각하했다. 피고 회사에 대해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당사자적격(소송 당사자로서 소송을 수행하고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으므로 소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1, 2심 판결은 회사에 대한 주주권의 행사는 원칙적으로 명의주주만이 행사할 수 있다고 한 위 2017년 전원합의체 판결(2015나248342) 전에 선고한 판결이기 때문에 대법원에 의한 해결이 필요했다.

신주인수 계약당사자 확정법리 따라야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원고가 실질주주인가를 판단하는 접근방법을 버리고 원고가 주식인수인인가를 판단하는 접근방법을 선택했다. 대법원은 누가 주식인수인이고 주주인지는 신주인수계약 당사자 확정문제이므로, 원칙적으로 계약당사자를 확정하는 법리에 따르면서 주식인수계약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가설인 명의로 주식을 인수하는 약정을 한 경우 가설인은 주식인수계약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 타인 명의로 주식을 인수하면서 그 승낙을 받지 않은 경우도 명의자는 원칙적으로 주식인수계약 당사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실제 출자자가 가설인 명의나 타인의 승낙 없이 그 명의로 주식을 인수하기로 하는 약정을 하고 출자를 이행했다면 회사 의사에 명백히 반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주가 된다.

타인의 승낙을 얻어 그 명의로 주식을 인수하기로 약정한 경우 계약 내용에 따라 명의자 또는 실제 출자자가 주식인수인이 될 수 있으나, 원칙적으로는 명의자를 주식인수인으로 봐야 한다. 명의자와 실제 출자자가 실제 출자자를 주식인수인으로 하기로 약정한 경우에도 실제 출자자를 주식인수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실제 출자자를 주식인수인으로 하기로 한 사실을 주식인수계약의 상대방인 회사가 알고 이를 승낙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그 상대방은 명의자를 주식인수계약의 당사자로 이해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타인 명의의 주식인수에서 실질적인 주식인수인을 주주로 보는 해석을 폐기하고 원칙적으로 명의주주를 주식인수인으로 보는 형식설에 가까운 해석을 했다. 원고들의 상고를 기각한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실제출자자가 주주가 될 수 있다는 여운을 남김으로써 향후 특별한 사정이 무엇인지 법원이 그 범위를 폭넓게 해석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2014년 무기명주식 제도 폐지

2014년 개정된 상법은 기존의 무기명주식 제도를 폐지했다. 무기명주식은 소유자 파악이 곤란해 양도세 회피 등 과세사각지대 우려가 있고, 조세 및 기업 소유구조의 투명성 결여로 국가의 대외신인도를 저하시키는 원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명주식의 무기명화를 불러오는 타인 명의의 주식인수, 타인 명의의 명의개서, 주식의 명의신탁 등을 규제하기 위한 입법적 과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명의신탁, 실소유자가 명의만 수탁자 앞으로 해두는 행위

◆명의신탁=내부적으로는 명의신탁자(실제 소유자)가 소유권을 가지고 관리하며 이익을 취하면서 외부적으로 소유명의만을 명의수탁자(명의인) 앞으로 해두는 것을 말한다. 명의신탁은 일제시대 토지조사를 할 때 종중(宗中) 소유재산을 종중 명의로 사정을 받을 수 없어서 종중원 명의로 사정을 받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무기명주식과 기명주식=상법이 2014년 무기명주식 제도를 폐지하기 전까지는 주식은 기명주식과 무기명주식으로 구분됐다. 기명주식은 주주의 성명이 주주명부와 주권에 기재돼 회사가 누가 주주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무기명주식은 주주명부와 주권에 주주 이름이 기재되지 않으므로 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