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으니 떠나야겠습니다"
이를 본 상사는 "당신을 이해한다"
2015년 4월 한 장의 사직서가 중국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중국 장저우의 하남실험중학교에 재직 중이던 선생님이 10글자로 된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사직 사유로는 ‘세계가 이렇게 넓으니 내가 한번 가봐야겠다’는 딱 한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중국 네티즌은 이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느낌이 강렬한 사직서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사직서는 2015년 중국에서 유행어 중 1위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이 사직서가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관련 패러디물이 쏟아졌습니다.
중국 후난성 창사의 한 광고기획회사에 다니는 리우라는 여성 카피라이터는 단 7단어만 적은 사직서를 냈습니다.
‘겨울이 너무 추워, 일어날 수 없다(冬天太冷起不來).’
이 사직서를 본 상사는 사직을 허락하면서 두 글자를 남겼습니다.
‘당신을 이해한다().’
좁은 직장의 울타리를 벗어나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직장상사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깨졌을 때나 무력감에 빠질 때면 가슴 안쪽에 담고 있는 사직서를 만지작거립니다. 대부분의 경우 아니 99%의 직장인은 사직서를 함부로 날리지 못합니다. 사직서는 회사를 베는 칼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가슴을 베는 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직서라는 칼로 세상을 일도양단(一刀兩斷)하는 경우는 참으로 드뭅니다. 그 때문에 가슴에만 품고 있다 결국 한 번도 휘두르지 못하고 퇴직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오히려 회사에서 휘두르는 해고의 칼날을 용케 피해온 것에 안도의 한숨을 몰아쉽니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1803/AA.16228878.1.jpg)
다시 사직서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중학교 선생님은 왜 하필 사직의 이유가 여행을 가고 싶다는 것일까요? 더 좋은 직장으로 전직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여행을 갔다 오면 더 좋은 직장이 그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오직 세상을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직장을 그만둡니다.
잘 아는 후배도 그랬습니다. 잘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떠났습니다. 학벌도 좋고 성격도 좋은 데다 능력도 뛰어나 그 직장에서 얼마든지 잘나갈 수 있었는데도 모든 걸 포기하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거의 1년을 여행하고 돌아온 뒤 그는 여행작가가 됐습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진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고 고백합니다.
여행을 떠나면서 때로는 고독했고 절체절명의 순간도 있었지만 그 모든 순간이 보석처럼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전에는 늘 무기력하고 다음 날이 기대되지 않았는데 요즘은 매일매일이 설렌다고 합니다. 잡지나 신문에 원고를 기고하면서 받는 돈은 전 직장에서 받던 연봉의 반에도 못 미칩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더 빛이 납니다. 늘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인생은 여행이라는 말’은 사실 진부하기 그지없습니다. 진짜 여행을 떠나야 인생을 아는 것도 아니지만 삶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삶의 비밀을 알고 싶어 예수님도 부처님도 무함마드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길을 떠나야 아는 것. 그 비밀을 알고 싶어서 오늘도 운동화를 신고 길을 떠납니다.
가슴속에 숨겨둔 칼을 휘두르지 않고 업무로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행복으로 여기면서 또 다른 발걸음을 시작합니다.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