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혼행족'도 외롭지 않네… 벚꽃비 흩날리는 봄의 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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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다르게 즐기는 일본 여행 (7) 교토 중부
일본의 뿌리 교토, 그 심장은 기온거리
연인들의 발길 끊이지 않는 기후네신사
오랜 역사·茶香에 끌리는 소도시 우지
일본의 뿌리 교토, 그 심장은 기온거리
연인들의 발길 끊이지 않는 기후네신사
오랜 역사·茶香에 끌리는 소도시 우지
교토는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이며 일본 왕실의 보금자리로 전통을 유지한 곳이다. 일본의 모든 전통은 교토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학자는 교토를 ‘일본 문화의 뿌리’라고 말한다. 생선초밥에서 독특한 형태의 조경은 물론 대나무를 활용한 실내 장식 등 가장 일본다운 풍경의 기원이 교토에서 시작됐다. 심지어 마을 축제(마쓰리)나 하루에 3식하는 것, 된장과 간장을 곁들이는 조리방식 등 일상생활의 습관까지 교토가 수도였던 헤이안 시대에서 비롯됐다. 교토를 제대로 여행해야 일본을 이해하는 눈이 열린다.
게이샤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기온거리
일본 문화의 정수가 교토라면 교토의 심장은 기온거리다. 기온거리는 요정과 유곽이 모여 있던 곳이다. 옛 모습의 정취가 지금도 남아 있어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藝者)들이 거리를 총총거리며 걸어가곤 한다. 기온의 풍경은 고즈넉하다. 시대가 바뀌면서 거리의 대부분은 상점이 됐지만 요정이나 가부키 극장, 전통찻집 등 대를 이른 노포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옛것의 흔적은 거리 곳곳에서 발견된다. 길 옆의 소화전부터 포석(납작하게 세공해 도로를 포장하기 위한 돌)까지 중세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마치 타임슬립을 해서 헤이안 시대의 저잣거리로 빠져들어간 것 같다. 기온(祇園) 일대는 동쪽으로 야사카신사, 남쪽으로 겐닌지절, 서쪽은 가모가와강(鴨川) 부근, 북쪽으로는 신바시거리로 둘러싸여 있다. 게이샤를 흔히 기생이라고 오해하고 있지만 실상 게이샤는 한자의 뜻처럼 예인(藝人)이다. 실제로 게이샤는 일본인에게 존경을 받아 왔는데 정식 게이샤가 되려면 힘든 수련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 관문을 넘기가 쉽지 않아 아무나 될 수 없는 특수직분이다. 그래서일까. 게이샤의 특수화장과 복장으로 관광 명소를 둘러보는 20~30대 여행객을 쉽게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밤이면 게이샤들이 좁은 골목을 지나 요리집과 요정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지만 지금은 게이샤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아무리 게이샤가 존경받는 특수직분이라고 하더라도 요정이라는 유흥주점에서 일하는 데다 결혼조차 제대로 할 수 없어 점차 수가 줄고 있다.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도 조금씩 사라져 간다. 오히려 스타벅스 같은 현대 문물의 상징이 거리를 조금씩 점령하고 있다. 게이코(성숙한 게이샤)나 마이코(수습 게이샤)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교토에는 게이코나 마이코 분장과 촬영을 해 주는 스튜디오가 여러 곳 있는데 보통 30분~1시간가량 걸리며 화장은 물론 사진을 찍어주고 거리를 활보할 수도 있다. 가격은 싸지 않다. 최소 9000엔(약 9만5000원)부터다.
인연을 맺어주는 기후네신사
기온은 일본의 3대 축제로 잘 알려진 기온마쓰리(祇園祭)가 매년 7월1일부터 한 달 동안 계속된다. 기온마쓰리는 일본의 수많은 마쓰리의 기원이 됐다고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기온마쓰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이 야마보코 순행행사다. 야마(山)라고 불리는 무게 0.5~1t 정도 되는 가마 23개와 7~10통이나 되는 거대한 가마 9개 등 총 32개의 가마를 끌고 시가지 행렬을 한다. 가마를 중심으로 벌이는 퍼레이드는 장엄하기 그지없다. 행사를 위해 참여하는 인원만 3만3000명에 이르고 축제를 즐기는 관광객은 매년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교토사람들은 기온마쓰리가 끝나야 비로소 여름이 시작된다고 말할 정도다. 교토의 가모가와 강 수원에 있는 기후네신사(貴船神社)는 일본에 약 450곳이 있는 기후네 총본사이기도 하다. 기후네신사는 원래 물을 관장하는 신을 모시는 곳이었다. 지역 명칭은 기부네(貴船)이지만 물의 신이기 때문에 ‘기후네’라고 읽는다. 기후네신사는 기원이 오래된 신사다. 기후네신사는 모토미야(本宮), 유이노야시로(結社)라는 별칭이 있는 나카미야(中宮)와 오쿠노미야(宮)로 나뉘어져 있다. 원래 기후네신사는 연애 성취에 효험이 있는 신사라고 하며, 헤이안 시대에도 이곳에서 사랑이 이뤄지길 기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신사 곳곳에 인연이나 사랑과 관련된 것이 많다. 기후네신사 나무에 소원을 적은 종이를 묶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엔무스비 신사이기도 하다. 점괘가 실린 종이를 물에 띄우면 운세가 나온다는 미즈우라미쿠지도 신사를 찾는 연인들이 꼭 한 번 해보는 이벤트이다.
기후네신사는 특히 여름철에 많이 찾는다. 가와도코라고 해서 강이나 계곡 위에 공간을 만들어 음식이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인데 평상 위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조금 저렴한 나가시 소면에서 1인 6000엔짜리 고급 음식까지 다양하다.
가모가와 강의 풍경과 소도시 우지
가모가와 강은 사실 우리 문단의 전설인 정지용 시인과 관련이 깊다. 정지용은 가모가와 강의 풍경에 반해 압천(가모가와)이라는 시를 지었다.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오렌지) 껍질 씹는 젊은 나그내의 시름/ 鴨川 십리 ㅅ 벌에/ 해가 저믈어 저믈어(‘압천’ 중에서). 그는 도시샤(同志社)대에서 수학했다. 도시샤에서 공부한 또 한 명의 민족시인인 윤동주도 가모가와 강과 인연이 깊다. 가모가와 강을 넘어 자동차로 20분 정도 가면 우지(宇治)라고 불리는 작은 소도시가 있다. 이곳은 소도시이지만 만만치 않은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우지 여행의 백미는 ‘극락의 궁전’이라 불리는 뵤도인(平等院)이다. 뵤도인은 1052년 당대 최고 권력자인 후지와라 요리미치가 그의 아버지 후지와라 미치나가에게 물려받은 별장을 개축한 절이다. 뵤도인의 핵심은 봉황당이다. 새 한 마리가 화려한 날개를 펼친 듯한 봉황당은 일본 동전 10엔짜리에 새겨져 있다. 한국인에게 뵤도인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일본인에게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의미를 넘어서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사찰이다. 봉황당을 바라보면 마치 극락과 정토가 나뉘어 있는 느낌이 든다. 연못을 건너 봉황당에 이르면 부처님을 따라 극락에 닿을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봉황당은 20분 간격으로 50명씩 제한해서 들어갈 수 있다. 봉황당 안에는 거대한 아미타여래좌상이 금박 옷을 입고 화려한 자태로 앉아 있다. 흰 벽에는 구름을 타고 있는 52구의 운중공양보살상이 걸려 있다. 작은 불상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정토를 날아올라 아미타여래를 찬양하고 있다. 뵤도인 절 봉황당 둘레에 물을 담아 놓은 것은 인간이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경험한 양수의 공간을 의미한다. 사람은 두 번 물을 건넌다. 어머니 배 속에서 양수를 건너 세상으로 나오거나, 강을 건너 다른 세상으로 간다. 그 상징적인 모습을 담은 것이 뵤도인이기 때문에 일본인이 사랑하는 절이 됐는지도 모른다.
뵤도인에서 뒤쪽으로 나가 우지가미(宇治上)신사를 향해 걷다 보면 주홍빛 아사기리교를 만난다. 아사기리교 앞에는 규모가 작은 우지신사가 있다. 이곳을 지나 조금 더 길을 오르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우지가미신사가 나온다. 다각으로 독특하게 휘어진 신사 지붕이 인상적이다.
우지의 골목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 차 향기가 솔솔 새어 나온다.《겐지 이야기》와 함께 우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우지 차’다. 우지는 사이타마, 시즈오카와 함께 일본의 3대 녹차 산지다. 골목에는 차를 판매하는 상점과 아기자기한 찻집이 늘어서 있다. 8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지 강을 바라보고 있는 찻집 쓰엔은 아담하지만 고풍스럽다. 창가에 앉아 녹차 세트를 주문했다. 당고(쌀가루를 반죽해 작고 둥글게 빚은 화과자)와 함께 나온 녹차는 특별했다. 흔히 생각하는 맑은 녹차가 아니라 탕약을 달여낸 듯 진하고 걸쭉한 맛이 일품이다.
눈부신 벚꽃비가 떨어지는 3대 명소
교토에는 벚꽃 명소가 수두룩하다. 핑크빛 벚꽃에서 마치 팝콘처럼 하얀색의 벚꽃까지 눈부시기 그지없다. 한국에도 벚꽃 명소들이 많지만 일본에서 바라보는 벚꽃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돌 정원 속에서 꽃망울을 터뜨린 료안지도 니조성에 핀 벚꽃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밤의 벚꽃 꿈처럼 아름다운 니조성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교토를 방문할 때 숙박하기 위한 성으로 1603년에 지어진 것이 니조성(二城)이다. 광대한 성 주위에는 해자가 둘러져 있으며,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국
보인 니노마루고텐(二の丸御殿), 중요문화재인 혼마루고텐(本丸御殿), 특별명승지로 지정된 니노마루정원(二の丸庭園) 등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니조성은 세계유산으로도 등록돼 있다. 무엇보다 니조성은 벚꽃 명소로 이름이 높다. 다양한 종류의 벚꽃도 훌륭하며 봄에는 많은 관광객이 꽃 구경을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니조성에는 약 400그루, 50종류의 벚꽃이 만개하는데 특히 수양 벚꽃이 아름답다. 불빛이 비치는 밤의 벚꽃은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진귀한 벚꽃으로 이름높은 히라노신사
니조성에서 금각사로 향하는 곳에 있는 히라노신사는 신사와 관련된 모든 것이 벚꽃 문양일 정도로 벚꽃과 인연이 깊은 신사다. 헤이안 시대 중기 수천 그루의 벚꽃이 뿌리를 내렸다. 985년부터 시작된 축제는 히라노 벚꽃 축제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진다. 50여 종류, 400여 그루의 벚꽃은 3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시간을 달리해 피는데 신사를 꽃 대궐로 만든다. 이 중에는 꽃 색깔이 옛 귀족의 연둣빛 옷을 닮았다고 해서 귀족옷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초록 벚꽃이나 팝콘 같은 핑크 벚꽃 등 진귀한 벚꽃도 많다.
걷는 길마다 피었네 철학의 길, 벚꽃의 길
교토의 긴카쿠지(은각사) 근처 2㎞에 이르는 철학의 길이 가장 빛날 때는 만개한 벚꽃이 피는 봄이다. 어떤 꽃이든 보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가슴에 스며드는 것이 있게 마련인데 철학의 길에 풍성하게 핀 벚꽃은 행복감마저 준다. 사실 제철에 오면 너무 사람이 많아서 벚꽃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3월초 이제 막 벚꽃이 열리기 시작할 때가 더 아름답다. 사람도 적고 오붓하게 향기를 맡으며 길을 걸을 수 있다. 사색하기 좋고 데이트 코스로도 일품이다.
교토=글·사진 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
게이샤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기온거리
일본 문화의 정수가 교토라면 교토의 심장은 기온거리다. 기온거리는 요정과 유곽이 모여 있던 곳이다. 옛 모습의 정취가 지금도 남아 있어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藝者)들이 거리를 총총거리며 걸어가곤 한다. 기온의 풍경은 고즈넉하다. 시대가 바뀌면서 거리의 대부분은 상점이 됐지만 요정이나 가부키 극장, 전통찻집 등 대를 이른 노포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옛것의 흔적은 거리 곳곳에서 발견된다. 길 옆의 소화전부터 포석(납작하게 세공해 도로를 포장하기 위한 돌)까지 중세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마치 타임슬립을 해서 헤이안 시대의 저잣거리로 빠져들어간 것 같다. 기온(祇園) 일대는 동쪽으로 야사카신사, 남쪽으로 겐닌지절, 서쪽은 가모가와강(鴨川) 부근, 북쪽으로는 신바시거리로 둘러싸여 있다. 게이샤를 흔히 기생이라고 오해하고 있지만 실상 게이샤는 한자의 뜻처럼 예인(藝人)이다. 실제로 게이샤는 일본인에게 존경을 받아 왔는데 정식 게이샤가 되려면 힘든 수련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 관문을 넘기가 쉽지 않아 아무나 될 수 없는 특수직분이다. 그래서일까. 게이샤의 특수화장과 복장으로 관광 명소를 둘러보는 20~30대 여행객을 쉽게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밤이면 게이샤들이 좁은 골목을 지나 요리집과 요정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지만 지금은 게이샤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아무리 게이샤가 존경받는 특수직분이라고 하더라도 요정이라는 유흥주점에서 일하는 데다 결혼조차 제대로 할 수 없어 점차 수가 줄고 있다.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도 조금씩 사라져 간다. 오히려 스타벅스 같은 현대 문물의 상징이 거리를 조금씩 점령하고 있다. 게이코(성숙한 게이샤)나 마이코(수습 게이샤)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교토에는 게이코나 마이코 분장과 촬영을 해 주는 스튜디오가 여러 곳 있는데 보통 30분~1시간가량 걸리며 화장은 물론 사진을 찍어주고 거리를 활보할 수도 있다. 가격은 싸지 않다. 최소 9000엔(약 9만5000원)부터다.
인연을 맺어주는 기후네신사
기온은 일본의 3대 축제로 잘 알려진 기온마쓰리(祇園祭)가 매년 7월1일부터 한 달 동안 계속된다. 기온마쓰리는 일본의 수많은 마쓰리의 기원이 됐다고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기온마쓰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이 야마보코 순행행사다. 야마(山)라고 불리는 무게 0.5~1t 정도 되는 가마 23개와 7~10통이나 되는 거대한 가마 9개 등 총 32개의 가마를 끌고 시가지 행렬을 한다. 가마를 중심으로 벌이는 퍼레이드는 장엄하기 그지없다. 행사를 위해 참여하는 인원만 3만3000명에 이르고 축제를 즐기는 관광객은 매년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교토사람들은 기온마쓰리가 끝나야 비로소 여름이 시작된다고 말할 정도다. 교토의 가모가와 강 수원에 있는 기후네신사(貴船神社)는 일본에 약 450곳이 있는 기후네 총본사이기도 하다. 기후네신사는 원래 물을 관장하는 신을 모시는 곳이었다. 지역 명칭은 기부네(貴船)이지만 물의 신이기 때문에 ‘기후네’라고 읽는다. 기후네신사는 기원이 오래된 신사다. 기후네신사는 모토미야(本宮), 유이노야시로(結社)라는 별칭이 있는 나카미야(中宮)와 오쿠노미야(宮)로 나뉘어져 있다. 원래 기후네신사는 연애 성취에 효험이 있는 신사라고 하며, 헤이안 시대에도 이곳에서 사랑이 이뤄지길 기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신사 곳곳에 인연이나 사랑과 관련된 것이 많다. 기후네신사 나무에 소원을 적은 종이를 묶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엔무스비 신사이기도 하다. 점괘가 실린 종이를 물에 띄우면 운세가 나온다는 미즈우라미쿠지도 신사를 찾는 연인들이 꼭 한 번 해보는 이벤트이다.
기후네신사는 특히 여름철에 많이 찾는다. 가와도코라고 해서 강이나 계곡 위에 공간을 만들어 음식이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인데 평상 위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조금 저렴한 나가시 소면에서 1인 6000엔짜리 고급 음식까지 다양하다.
가모가와 강의 풍경과 소도시 우지
가모가와 강은 사실 우리 문단의 전설인 정지용 시인과 관련이 깊다. 정지용은 가모가와 강의 풍경에 반해 압천(가모가와)이라는 시를 지었다.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오렌지) 껍질 씹는 젊은 나그내의 시름/ 鴨川 십리 ㅅ 벌에/ 해가 저믈어 저믈어(‘압천’ 중에서). 그는 도시샤(同志社)대에서 수학했다. 도시샤에서 공부한 또 한 명의 민족시인인 윤동주도 가모가와 강과 인연이 깊다. 가모가와 강을 넘어 자동차로 20분 정도 가면 우지(宇治)라고 불리는 작은 소도시가 있다. 이곳은 소도시이지만 만만치 않은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우지 여행의 백미는 ‘극락의 궁전’이라 불리는 뵤도인(平等院)이다. 뵤도인은 1052년 당대 최고 권력자인 후지와라 요리미치가 그의 아버지 후지와라 미치나가에게 물려받은 별장을 개축한 절이다. 뵤도인의 핵심은 봉황당이다. 새 한 마리가 화려한 날개를 펼친 듯한 봉황당은 일본 동전 10엔짜리에 새겨져 있다. 한국인에게 뵤도인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일본인에게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의미를 넘어서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사찰이다. 봉황당을 바라보면 마치 극락과 정토가 나뉘어 있는 느낌이 든다. 연못을 건너 봉황당에 이르면 부처님을 따라 극락에 닿을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봉황당은 20분 간격으로 50명씩 제한해서 들어갈 수 있다. 봉황당 안에는 거대한 아미타여래좌상이 금박 옷을 입고 화려한 자태로 앉아 있다. 흰 벽에는 구름을 타고 있는 52구의 운중공양보살상이 걸려 있다. 작은 불상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정토를 날아올라 아미타여래를 찬양하고 있다. 뵤도인 절 봉황당 둘레에 물을 담아 놓은 것은 인간이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경험한 양수의 공간을 의미한다. 사람은 두 번 물을 건넌다. 어머니 배 속에서 양수를 건너 세상으로 나오거나, 강을 건너 다른 세상으로 간다. 그 상징적인 모습을 담은 것이 뵤도인이기 때문에 일본인이 사랑하는 절이 됐는지도 모른다.
뵤도인에서 뒤쪽으로 나가 우지가미(宇治上)신사를 향해 걷다 보면 주홍빛 아사기리교를 만난다. 아사기리교 앞에는 규모가 작은 우지신사가 있다. 이곳을 지나 조금 더 길을 오르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우지가미신사가 나온다. 다각으로 독특하게 휘어진 신사 지붕이 인상적이다.
우지의 골목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 차 향기가 솔솔 새어 나온다.《겐지 이야기》와 함께 우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우지 차’다. 우지는 사이타마, 시즈오카와 함께 일본의 3대 녹차 산지다. 골목에는 차를 판매하는 상점과 아기자기한 찻집이 늘어서 있다. 8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지 강을 바라보고 있는 찻집 쓰엔은 아담하지만 고풍스럽다. 창가에 앉아 녹차 세트를 주문했다. 당고(쌀가루를 반죽해 작고 둥글게 빚은 화과자)와 함께 나온 녹차는 특별했다. 흔히 생각하는 맑은 녹차가 아니라 탕약을 달여낸 듯 진하고 걸쭉한 맛이 일품이다.
눈부신 벚꽃비가 떨어지는 3대 명소
교토에는 벚꽃 명소가 수두룩하다. 핑크빛 벚꽃에서 마치 팝콘처럼 하얀색의 벚꽃까지 눈부시기 그지없다. 한국에도 벚꽃 명소들이 많지만 일본에서 바라보는 벚꽃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돌 정원 속에서 꽃망울을 터뜨린 료안지도 니조성에 핀 벚꽃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밤의 벚꽃 꿈처럼 아름다운 니조성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교토를 방문할 때 숙박하기 위한 성으로 1603년에 지어진 것이 니조성(二城)이다. 광대한 성 주위에는 해자가 둘러져 있으며,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국
보인 니노마루고텐(二の丸御殿), 중요문화재인 혼마루고텐(本丸御殿), 특별명승지로 지정된 니노마루정원(二の丸庭園) 등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니조성은 세계유산으로도 등록돼 있다. 무엇보다 니조성은 벚꽃 명소로 이름이 높다. 다양한 종류의 벚꽃도 훌륭하며 봄에는 많은 관광객이 꽃 구경을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니조성에는 약 400그루, 50종류의 벚꽃이 만개하는데 특히 수양 벚꽃이 아름답다. 불빛이 비치는 밤의 벚꽃은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진귀한 벚꽃으로 이름높은 히라노신사
니조성에서 금각사로 향하는 곳에 있는 히라노신사는 신사와 관련된 모든 것이 벚꽃 문양일 정도로 벚꽃과 인연이 깊은 신사다. 헤이안 시대 중기 수천 그루의 벚꽃이 뿌리를 내렸다. 985년부터 시작된 축제는 히라노 벚꽃 축제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진다. 50여 종류, 400여 그루의 벚꽃은 3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시간을 달리해 피는데 신사를 꽃 대궐로 만든다. 이 중에는 꽃 색깔이 옛 귀족의 연둣빛 옷을 닮았다고 해서 귀족옷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초록 벚꽃이나 팝콘 같은 핑크 벚꽃 등 진귀한 벚꽃도 많다.
걷는 길마다 피었네 철학의 길, 벚꽃의 길
교토의 긴카쿠지(은각사) 근처 2㎞에 이르는 철학의 길이 가장 빛날 때는 만개한 벚꽃이 피는 봄이다. 어떤 꽃이든 보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가슴에 스며드는 것이 있게 마련인데 철학의 길에 풍성하게 핀 벚꽃은 행복감마저 준다. 사실 제철에 오면 너무 사람이 많아서 벚꽃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3월초 이제 막 벚꽃이 열리기 시작할 때가 더 아름답다. 사람도 적고 오붓하게 향기를 맡으며 길을 걸을 수 있다. 사색하기 좋고 데이트 코스로도 일품이다.
교토=글·사진 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