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길, 절대 권력인가 잠재된 위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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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의 소수의견]
중국현대정치전문가 안치영 인천대 교수 인터뷰
집단지도체제 구축, 종신제 폐지 '덩샤오핑 체제'
"시황제 언급 과하지만 장쩌민·후진타오와 달라"
중국현대정치전문가 안치영 인천대 교수 인터뷰
집단지도체제 구축, 종신제 폐지 '덩샤오핑 체제'
"시황제 언급 과하지만 장쩌민·후진타오와 달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만장일치로 재선출됐다. 17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표결에서 2970표 중 반대표는 전무했다. 예견된 결과다. 앞선 11일 전인대는 주석직 임기제한 규정을 없애고 이른바 ‘시진핑 사상’을 헌법에 삽입하는 개헌안을 압도적 지지로 통과시켰다.
국내 언론은 ‘시황제’의 대관식으로 묘사했다. 장기집권의 길이 열리고 개인우상화 전초 단계를 밟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6일 인천 송도의 캠퍼스에서 만난 안치영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사진)는 “시황제란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과도한 면이 있다”고 짚었다.
- 어째서 그런가.
“임기와 연령을 축으로 한 기본틀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니까. 이번 개헌은 최고권력자에 한해 예외를 인정한 거다. 물론 1980년대 이후 진행되어온 중국 정치의 ‘제도화’가 후퇴한 건 맞다.”
- 시황제 운운은 비약이다?
“황제란, 말 그대로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를 무너뜨린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집단지도체제가 실제로 어떤 기능을 하는지가 중요한데, 현 시점에서 이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엄밀성을 중시하는 학자의 어법이었다. 안 교수는 중국 현대정치 전문가다. 중국의 정치적 제도화를 집중 연구해왔다. 제도화는 공산당 독재의 그늘,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권력의 1인 집중과 종신집권 방지를 위한 ‘집단지도체제 구축’과 ‘종신제 폐지’가 대표적이다. 두 가지는 덩샤오핑(鄧小平) 체제의 핵심이자 현재 중국 정치의 근간으로 꼽힌다. - 하나씩 뜯어보자. 개헌으로 국가주석 3연임 이상 제한 조항을 삭제했다.
“중국에서 허직(虛職)에 가까운 국가주석의 경우 임기제한이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국가주석뿐 아니라 공산당 총서기, 군사위원회 주석도 계속해 맡지 못하는 것으로 ‘관례’가 정착되던 상황에서 임기제한을 없앤 게 문제다.”
- 이런 추세라면 장기집권, 나아가 종신집권도 가능한 것 아니냐.
“그 부분은 조심스럽다. 예외를 둔 것은 맞다. 하지만 최고지도자라 해서 은퇴 없이 무한정 집권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 그러면 ‘정치적 후퇴’라고 한 것은 어떤 의미인지.
“개혁·개방 이후 진전되어온 제도화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공식적으로 표현은 못하지만 중국 내에서도 개헌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상당수일 것이다.”
- 그 상당수란 지식인들인가, 아니면 일반 대중까지 포함한 것인가.
“일반 대중까지 추측하기는 어렵지만 지식인들을 포함해 당 간부급 인사들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을까? 대중도 과거보다는 그런 인식이 높아졌을 것이다.”
- 과거라 하면 구체적으로 언제쯤?
“크게 개혁개방 이전과 이후로 가를 수 있겠지. 당시 실권자인 덩샤오핑은 자신이 당 주석이 되면 종신제가 유지될 것이라 판단했다. 그는 주석직을 맡지 않음으로써 ‘종신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중국 인민에 강하게 던졌다. 그간의 개혁개방 흐름도 있고. 인민도 이번 개헌을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을 거다.”
- 그렇다고 하기엔 전인대의 반대표가 너무 적지 않나.
“중국 공산당은 어떤 의제에 대해 격론이 오가더라도 대외적으로는 공식 결정에 따른다.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면 내부의 역동성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 ‘내부적’으로는 개헌 반대가 적지 않았다는 얘기냐.
“그들이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명확히 확인할 순 없다. 단 추정은 할 수 있다. 중대 사안인 만큼 당 차원에서 사활을 걸지 않았겠나. 반대표가 100~200표 정도 나오면 명분이 약해질 테니 ‘관리’를 세게 했을 것이다. 만장일치, 반대 두 표, 이런 결과만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을 거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역설적으로, 그만큼 위험성이 크다는 얘기도 된다.”
- 개헌의 절차(임기제한 규정 삭제) 못지않게 내용(시진핑 사상 삽입)도 독재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인데.
“정확히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다. 현지에서는 이를 시진핑 사상이라 약칭하지도, 공식 사용하지도 않는다고 들었다. 번역상 또는 편의상 시진핑 사상이라 표현하지만 ‘마오쩌둥(毛澤東) 사상’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시진핑의 이름이 명기된 사상이 헌법에 들어간 건 사실 아니냐.
“그렇다. 마오쩌둥·덩샤오핑 이후에 최고지도자 이름을 넣었다는 데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시대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덩샤오핑 체제’에 순응한 지도자였다. 권력을 여타 정치국 상무위원과 균점했고, 두 번 연임해 10년 임기를 채운 뒤 물러났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는 개인에 대해 ‘영명한 지도자’나 ‘인민의 영수’ 같은 표현을 쓰지 않는다. 개인숭배 금지 차원이다. 한데 근래 베이징시 서기가 시진핑을 그렇게 언급한 적 있다.”
- ‘민주집중제’라 불리는 집단지도체제 붕괴의 전조 같다.
“집단지도체제가 유지되고는 있지만 내부의 변화가 있다고 보인다.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시진핑의 권력과 위상이 장쩌민·후진타오 시기와는 차이가 있다. 인민일보(중국 공산당 기관지)가 다루는 사진 크기가 상징적인데… 저런 식으로 했던 적이 없다.”
- ‘저런 식’이라면?
“시진핑 한 명이 다른 상무위원 전체와 비슷한 크기로 나오곤 한다. 후진타오 때만 해도 안 그랬다. 당 총서기가 대표자라는 건 회의의 조정자이지, 권력자란 의미는 아니다. 권력균점 원리다. 한데 지금은 상무위 의사결정에서 시진핑이 포함된 소수가 그렇지 않은 다수보다 우선시될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 결국엔 시진핑 사상이 마오쩌둥 사상과 비슷한 층위로 가는 과정 아닌가.
“그렇게 될 수는 없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중국 혁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도자였으니까. 개헌으로 장기집권 가능성은 열렸지만 시진핑의 영구집권은 어렵다고 본다.” 안 교수는 저서 〈덩샤오핑 시대의 탄생〉에서 이렇게 썼다. “이른바 3세대 이후 지도자들의 권력과 권위는 공식적 직위에서 비롯되며 비공식적 권위를 갖지는 못한다. (중략) 그들의 권력과 권위는 직위에서 나오는 것이지, 개인적 권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시진핑이 무리해가면서 직위에 집착하는 배경을 설명할 수 있는 대목. 장쩌민·후진타오는 넘었다 해도 마오쩌둥·덩샤오핑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라 전망하는 이유다. 질문을 약간 바꿨다.
- 향후에 시진핑이 마오쩌둥·덩샤오핑에 필적하는 1인자가 될 가능성은 없나?
“어렵다. 비공식적 권위, ‘위신’의 문제다. 덩샤오핑만 해도 전국적으로 그의 사람이 깔려있었다. 공식 직위가 있건 없건 그가 한 마디 하면 모두 말을 들었다.” (그가 언급한 위신은 최고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아우라, 즉 자발적 동의에 의한 지배로 해석할 수 있을 듯했다.)
- 시진핑의 권력독점이 본격 지적된 건 2016년 ‘핵심’으로 지칭되면서부터다.
“집단지도체제가 처음 제기된 건 1980년 ‘당내 정치생활에 대한 약간의 준칙’ 문건을 통해서다. 집단지도체제의 구체적 적용 및 작동방식을 세세히 규정했다. 상무위에서 1인이 결정해선 안 된다든지, 모든 상무위원이 동등한 권한을 갖는다든지. 기존 준칙 폐기가 아닌 보완이라 굳이 언급하지 않은 줄로 알았는데 결국 개헌까지 이어졌다. ‘핵심’ 지칭 문제가 나온 2016년 ‘새로운 형세 하에서의’ 수식어가 붙은 신준칙에는 기존 준칙과 다른 부분이 제법 있다.”
- 어떤 부분이 달라졌나.
“기존 준칙의 핵심은 어떤 개인도 집단지도체제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준칙에서도 이를 언급하긴 했으나 의사결정 규칙이 빠지는 등 강조점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 차차기 후계자를 낙점하는 ‘격대지정(隔代指定)’ 전통도 깬 걸로 보이는데.
“사실 격대지정은 한 번만 있었다. 후진타오만 덩샤오핑이 정한 거지. 실제로 유효한 격대지정은 후진타오가 유일했다고 할 수 있다.”
- 큰 의미를 둘 건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직급별로 장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젊은 세대를 선발하는 작업이다. 이들을 당시에 3세대라 불렀다. 시진핑과 리커창(李克强)도 여기에 들었던 사람들이다.”
- ‘칠상팔하(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가 깨진 건 어떤가.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관례였을 뿐, 명문화된 규칙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칠상팔하 문제가 제기된 핵심 이유는 왕치산(王岐山)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때문이다. 왕치산은 지난해 10월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에서 은퇴했다가 몇 달만에 복귀했다. 단순히 왕치산의 복귀뿐 아니라 임기제한 폐지 개헌도 함께 결정된 것 아닌가 싶다. 19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의 권력집중이 강화되고, 그 결과로 왕치산이 돌아왔다고 볼 수 있다.”
왕치산은 개헌으로 임기제한을 없앤 부주석에 선출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시진핑 1기 반부패 사정을 진두지휘한 왕치산이 날린 인물의 면면이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앙정법위 서기 등이다. 굵직한 정적들을 제거해 시진핑에 권력을 집중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 반부패 캠페인 자체는 대중적 지지를 받았는데.
“그렇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직의 경쟁자와 원로들, 두 부류의 견제세력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비공식적 권위를 지닌 원로들이 제도화를 왜곡시키는 요소라 봤는데, 실제로는 권력독점 감시·견제 등 제도화를 지탱하는 측면도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 덩샤오핑이 마련한 집단지도체제와 임기제로 인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해왔다. 1인 권력을 견제하면서 최고지도자가 10년 주기로 바뀌고… 중국 공산당식 엘리트 정치가 받아온 나름의 평가가 무색해진 셈이 됐다.
“기본적으로 능력 있는 젊은 리더군을 발탁해 육성하는 시스템이 장점이다. 단점도 있다. 이 시스템에선 50대에는 상무위원이 되어야 한다. 일종의 트랙이 생긴 거지. 젊을 때부터 최고지도자가 될 그룹이 정해진다. 후보군이 빤하다. 그러다보니 보신주의가 만연하고 파벌 형성 등 부작용이 생길 여지도 있다.”
- 그런 측면이 있구나.
“연령제한은 부패 발생의 중요 요인도 된다. 나이에 걸려 승진 가능성이 사라지면 한 몫 챙기기라도 하려는 거지. 부패로 빠지기 쉬운 구조다.”
간단정리. 시진핑이 덩샤오핑 이후의 권력구조와 승계제도 방향에 ‘균열’을 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개인의 종신독재 경향이 심화되면 겉보기와 달리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개혁개방 40년을 거친 중국인들은 더 이상 마오쩌둥 시대의 신민(臣民)이 아닌 탓이다.
[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인천=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국내 언론은 ‘시황제’의 대관식으로 묘사했다. 장기집권의 길이 열리고 개인우상화 전초 단계를 밟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6일 인천 송도의 캠퍼스에서 만난 안치영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사진)는 “시황제란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과도한 면이 있다”고 짚었다.
- 어째서 그런가.
“임기와 연령을 축으로 한 기본틀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니까. 이번 개헌은 최고권력자에 한해 예외를 인정한 거다. 물론 1980년대 이후 진행되어온 중국 정치의 ‘제도화’가 후퇴한 건 맞다.”
- 시황제 운운은 비약이다?
“황제란, 말 그대로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를 무너뜨린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집단지도체제가 실제로 어떤 기능을 하는지가 중요한데, 현 시점에서 이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엄밀성을 중시하는 학자의 어법이었다. 안 교수는 중국 현대정치 전문가다. 중국의 정치적 제도화를 집중 연구해왔다. 제도화는 공산당 독재의 그늘,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권력의 1인 집중과 종신집권 방지를 위한 ‘집단지도체제 구축’과 ‘종신제 폐지’가 대표적이다. 두 가지는 덩샤오핑(鄧小平) 체제의 핵심이자 현재 중국 정치의 근간으로 꼽힌다. - 하나씩 뜯어보자. 개헌으로 국가주석 3연임 이상 제한 조항을 삭제했다.
“중국에서 허직(虛職)에 가까운 국가주석의 경우 임기제한이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국가주석뿐 아니라 공산당 총서기, 군사위원회 주석도 계속해 맡지 못하는 것으로 ‘관례’가 정착되던 상황에서 임기제한을 없앤 게 문제다.”
- 이런 추세라면 장기집권, 나아가 종신집권도 가능한 것 아니냐.
“그 부분은 조심스럽다. 예외를 둔 것은 맞다. 하지만 최고지도자라 해서 은퇴 없이 무한정 집권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 그러면 ‘정치적 후퇴’라고 한 것은 어떤 의미인지.
“개혁·개방 이후 진전되어온 제도화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공식적으로 표현은 못하지만 중국 내에서도 개헌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상당수일 것이다.”
- 그 상당수란 지식인들인가, 아니면 일반 대중까지 포함한 것인가.
“일반 대중까지 추측하기는 어렵지만 지식인들을 포함해 당 간부급 인사들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을까? 대중도 과거보다는 그런 인식이 높아졌을 것이다.”
- 과거라 하면 구체적으로 언제쯤?
“크게 개혁개방 이전과 이후로 가를 수 있겠지. 당시 실권자인 덩샤오핑은 자신이 당 주석이 되면 종신제가 유지될 것이라 판단했다. 그는 주석직을 맡지 않음으로써 ‘종신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중국 인민에 강하게 던졌다. 그간의 개혁개방 흐름도 있고. 인민도 이번 개헌을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을 거다.”
- 그렇다고 하기엔 전인대의 반대표가 너무 적지 않나.
“중국 공산당은 어떤 의제에 대해 격론이 오가더라도 대외적으로는 공식 결정에 따른다.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면 내부의 역동성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 ‘내부적’으로는 개헌 반대가 적지 않았다는 얘기냐.
“그들이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명확히 확인할 순 없다. 단 추정은 할 수 있다. 중대 사안인 만큼 당 차원에서 사활을 걸지 않았겠나. 반대표가 100~200표 정도 나오면 명분이 약해질 테니 ‘관리’를 세게 했을 것이다. 만장일치, 반대 두 표, 이런 결과만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을 거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역설적으로, 그만큼 위험성이 크다는 얘기도 된다.”
- 개헌의 절차(임기제한 규정 삭제) 못지않게 내용(시진핑 사상 삽입)도 독재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인데.
“정확히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다. 현지에서는 이를 시진핑 사상이라 약칭하지도, 공식 사용하지도 않는다고 들었다. 번역상 또는 편의상 시진핑 사상이라 표현하지만 ‘마오쩌둥(毛澤東) 사상’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시진핑의 이름이 명기된 사상이 헌법에 들어간 건 사실 아니냐.
“그렇다. 마오쩌둥·덩샤오핑 이후에 최고지도자 이름을 넣었다는 데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시대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덩샤오핑 체제’에 순응한 지도자였다. 권력을 여타 정치국 상무위원과 균점했고, 두 번 연임해 10년 임기를 채운 뒤 물러났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는 개인에 대해 ‘영명한 지도자’나 ‘인민의 영수’ 같은 표현을 쓰지 않는다. 개인숭배 금지 차원이다. 한데 근래 베이징시 서기가 시진핑을 그렇게 언급한 적 있다.”
- ‘민주집중제’라 불리는 집단지도체제 붕괴의 전조 같다.
“집단지도체제가 유지되고는 있지만 내부의 변화가 있다고 보인다.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시진핑의 권력과 위상이 장쩌민·후진타오 시기와는 차이가 있다. 인민일보(중국 공산당 기관지)가 다루는 사진 크기가 상징적인데… 저런 식으로 했던 적이 없다.”
- ‘저런 식’이라면?
“시진핑 한 명이 다른 상무위원 전체와 비슷한 크기로 나오곤 한다. 후진타오 때만 해도 안 그랬다. 당 총서기가 대표자라는 건 회의의 조정자이지, 권력자란 의미는 아니다. 권력균점 원리다. 한데 지금은 상무위 의사결정에서 시진핑이 포함된 소수가 그렇지 않은 다수보다 우선시될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 결국엔 시진핑 사상이 마오쩌둥 사상과 비슷한 층위로 가는 과정 아닌가.
“그렇게 될 수는 없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중국 혁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도자였으니까. 개헌으로 장기집권 가능성은 열렸지만 시진핑의 영구집권은 어렵다고 본다.” 안 교수는 저서 〈덩샤오핑 시대의 탄생〉에서 이렇게 썼다. “이른바 3세대 이후 지도자들의 권력과 권위는 공식적 직위에서 비롯되며 비공식적 권위를 갖지는 못한다. (중략) 그들의 권력과 권위는 직위에서 나오는 것이지, 개인적 권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시진핑이 무리해가면서 직위에 집착하는 배경을 설명할 수 있는 대목. 장쩌민·후진타오는 넘었다 해도 마오쩌둥·덩샤오핑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라 전망하는 이유다. 질문을 약간 바꿨다.
- 향후에 시진핑이 마오쩌둥·덩샤오핑에 필적하는 1인자가 될 가능성은 없나?
“어렵다. 비공식적 권위, ‘위신’의 문제다. 덩샤오핑만 해도 전국적으로 그의 사람이 깔려있었다. 공식 직위가 있건 없건 그가 한 마디 하면 모두 말을 들었다.” (그가 언급한 위신은 최고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아우라, 즉 자발적 동의에 의한 지배로 해석할 수 있을 듯했다.)
- 시진핑의 권력독점이 본격 지적된 건 2016년 ‘핵심’으로 지칭되면서부터다.
“집단지도체제가 처음 제기된 건 1980년 ‘당내 정치생활에 대한 약간의 준칙’ 문건을 통해서다. 집단지도체제의 구체적 적용 및 작동방식을 세세히 규정했다. 상무위에서 1인이 결정해선 안 된다든지, 모든 상무위원이 동등한 권한을 갖는다든지. 기존 준칙 폐기가 아닌 보완이라 굳이 언급하지 않은 줄로 알았는데 결국 개헌까지 이어졌다. ‘핵심’ 지칭 문제가 나온 2016년 ‘새로운 형세 하에서의’ 수식어가 붙은 신준칙에는 기존 준칙과 다른 부분이 제법 있다.”
- 어떤 부분이 달라졌나.
“기존 준칙의 핵심은 어떤 개인도 집단지도체제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준칙에서도 이를 언급하긴 했으나 의사결정 규칙이 빠지는 등 강조점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 차차기 후계자를 낙점하는 ‘격대지정(隔代指定)’ 전통도 깬 걸로 보이는데.
“사실 격대지정은 한 번만 있었다. 후진타오만 덩샤오핑이 정한 거지. 실제로 유효한 격대지정은 후진타오가 유일했다고 할 수 있다.”
- 큰 의미를 둘 건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직급별로 장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젊은 세대를 선발하는 작업이다. 이들을 당시에 3세대라 불렀다. 시진핑과 리커창(李克强)도 여기에 들었던 사람들이다.”
- ‘칠상팔하(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가 깨진 건 어떤가.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관례였을 뿐, 명문화된 규칙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칠상팔하 문제가 제기된 핵심 이유는 왕치산(王岐山)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때문이다. 왕치산은 지난해 10월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에서 은퇴했다가 몇 달만에 복귀했다. 단순히 왕치산의 복귀뿐 아니라 임기제한 폐지 개헌도 함께 결정된 것 아닌가 싶다. 19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의 권력집중이 강화되고, 그 결과로 왕치산이 돌아왔다고 볼 수 있다.”
왕치산은 개헌으로 임기제한을 없앤 부주석에 선출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시진핑 1기 반부패 사정을 진두지휘한 왕치산이 날린 인물의 면면이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앙정법위 서기 등이다. 굵직한 정적들을 제거해 시진핑에 권력을 집중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 반부패 캠페인 자체는 대중적 지지를 받았는데.
“그렇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직의 경쟁자와 원로들, 두 부류의 견제세력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비공식적 권위를 지닌 원로들이 제도화를 왜곡시키는 요소라 봤는데, 실제로는 권력독점 감시·견제 등 제도화를 지탱하는 측면도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 덩샤오핑이 마련한 집단지도체제와 임기제로 인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해왔다. 1인 권력을 견제하면서 최고지도자가 10년 주기로 바뀌고… 중국 공산당식 엘리트 정치가 받아온 나름의 평가가 무색해진 셈이 됐다.
“기본적으로 능력 있는 젊은 리더군을 발탁해 육성하는 시스템이 장점이다. 단점도 있다. 이 시스템에선 50대에는 상무위원이 되어야 한다. 일종의 트랙이 생긴 거지. 젊을 때부터 최고지도자가 될 그룹이 정해진다. 후보군이 빤하다. 그러다보니 보신주의가 만연하고 파벌 형성 등 부작용이 생길 여지도 있다.”
- 그런 측면이 있구나.
“연령제한은 부패 발생의 중요 요인도 된다. 나이에 걸려 승진 가능성이 사라지면 한 몫 챙기기라도 하려는 거지. 부패로 빠지기 쉬운 구조다.”
간단정리. 시진핑이 덩샤오핑 이후의 권력구조와 승계제도 방향에 ‘균열’을 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개인의 종신독재 경향이 심화되면 겉보기와 달리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개혁개방 40년을 거친 중국인들은 더 이상 마오쩌둥 시대의 신민(臣民)이 아닌 탓이다.
[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인천=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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