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전력수요 예측치가 올 들어 두 달여 동안 14번이나 빗나가 ‘엉터리 수요 예측’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 수요 예측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향후 20여 년간의 국가 에너지 계획을 짜게 됐다. 또 에너지 계획 수립 과정에 탈핵 운동가가 대거 참여하는 데 비해 친(親)원전 인사는 아예 배제되다시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에너지 정책의 초점을 ‘탈(脫)원전’에 맞추다 보니 중장기 에너지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 처음부터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요 예측 잘못해도 다시 발탁

산업통상자원부는 19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1차 회의를 열었다. 에너지기본계획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따라 5년마다 수립하는 에너지 분야 최상위 행정계획으로 3차 계획 기간은 2019~2040년이다. 정부가 2년 단위로 세우는 전력수급기본계획, 에너지이용합리화계획,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의 토대가 된다.

3차 에너지기본계획 총괄분과위원 15명 중 상당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몸담았거나 작년 12월29일 확정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계획 기간 2017~2031년)에 참여했던 인사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때 전력수요 전망을 담당했던 강승진 산업기술대 에너지대학원 교수와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이번에 수요분과장과 총괄분과위원으로 각각 임명됐다.

두 사람이 몸담았던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전망 워킹그룹은 2017년 동계(2017년 12월~2018년 2월) 최대 전력수요를 8520만㎾로 예상했는데 실제 이 기간 이를 초과한 날이 14일이나 됐다. 정부는 이 기간 전력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10차례에 걸쳐 총 3850개 기업에 전력수요 감축(급전)을 요청해야 했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때 전력정책심의위원장을 맡은 김진우 연세대 글로벌융합기술원 교수는 이번에 총괄분과위원장을 맡았다. 김 교수는 문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다. 총괄분과위원으로 참여하는 정연길 창원대 신소재융합과 교수도 문재인 캠프에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8차 전력수급계획 전망치가 빗나가는 데 한 달도 안 걸렸는데 거기에 참여했던 교수들이 3차 에너지기본계획까지 세우는 건 문제”라며 “학자로서 양심이 있다면 위원직을 고사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탈핵운동가들도 참여

정부는 탈핵운동가들을 3차 에너지기본계획 총괄분과위원에 대거 발탁하기도 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홍혜란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 등이 대표적이다. 원자력공학과 교수이면서 탈원전을 주장하는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시스템공학과 교수도 위원으로 뽑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위원들은 각계각층의 추천을 받아 선발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탈원전에 반대하는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때문에 ‘균형감각을 잃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탈원전 논리에 따라 전력 수요를 과소 예측했다 블랙아웃(정전)이 발생하면 더 큰 비용이 들 수 있다”며 “3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 때는 수요 예측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