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 간편…사회적 비용 감소
검찰, 약식 청구건수 3년새 12%↑
피의자 10명 중 9명 받아들여
'꼼수 불복' 줄어들까
올부터 형사소송법 개정
'약식' 보다 과한 형 선고 가능
정식 재판이 약식 재판보다 더 높은 형량을 내리지 못하도록 정한 형사소송법이 지난해 12월 개정돼 ‘약식 재판의 경제학’은 훨씬 복잡해졌다.
◆남발돼 온 ‘약식 재판’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309일간 크레인 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지지하는 ‘희망버스’ 시위에 참여한 40대 여성에게 벌금형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홍씨는 2011년 6월 1차 희망버스 시위 당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무단 침입한 혐의(공동주거침입)로 기소됐다. 같은 해 7월 2차 희망버스 시위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시가행진한 혐의(일반교통방해)도 받았다.
검찰은 시위 참가자 수십 명을 약식 기소했고, 법원은 벌금형 100만~3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홍씨 등 다수의 시위자는 무죄를 주장하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2012년 시작돼 6년이나 걸린 정식 재판에서 대법원은 유죄 판단을 유지하고 벌금 150만원을 최종 선고했다.
약식 명령은 검사가 제출한 서면만 보고 판결하는 간이 재판 절차다. 정식 공판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검사가 판단한 뒤 청구하면 열린다. 법적 효력은 정식 재판과 같다. 피고는 변호사 선임도 법원 출석도 필요 없다. 결과도 빨리 나와 재판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다. 사법부와 검찰도 소송 진행과 공소유지에 따른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혹 떼려다 오히려 혹 붙일 수도
약식 명령에 대부분 피고인은 수긍한다. 불복하고 정식 재판을 청구하는 비율은 2016년 기준 9.7%에 그친다. 하지만 무죄를 주장하며 정식 재판으로 가서 끝내 무죄를 받아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배우 성현아 씨는 성매매 혐의로 약식 재판을 받은 뒤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해 무죄를 확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 정식 재판을 청구한 사례는 ‘아님 말고식’이라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정식 재판을 청구해 놓고 정작 재판에는 관심을 끄고 나몰라라 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전했다.
‘희망버스’ 사례처럼 정치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방안으로 정식 재판 청구가 활용되기도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박주신 씨의 군입대용 ‘신체검사 결과가 미심쩍다’고 주장한 영상의학전문의 양승오 박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약식 재판으로 벌금형을 받았지만 의사로서의 양심을 따른다며 정식 재판을 자청해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정식 재판 청구는 올해부터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정식 재판을 청구한 피고인에게 약식 재판보다 더 무거운 벌금액을 선고하지 못하도록 했던 형사소송법 제457조의2(불이익변경의 금지)가 개정돼 더 무거운 형량 선고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수원지방법원 형사12단독 고상교 판사는 절도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66)에게 약식 명령 50만원의 두 배인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 약식 명령
법원이 검사가 제출한 서면만 보고 피고인에 대해 벌금·과료·몰수를 처하는 재판 절차다. 검사가 피의자의 범죄가 중하지 않아 공판(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할 때 청구할 수 있다. 피의자를 구류에 처할 수 없으며, 재판 절차가 빠르고 비공개라는 점이 공판과 다른 점이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