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찬란' 줄무늬 어부의 집들… 가슴 찡한 가족사랑 색칠했네
아베이루·코스타 노바=글·사진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
아베이루의 몰리세이루가 들려주는 이야기
아베이루는 ‘포르투갈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운하의 도시다. 아베이루의 운하는 117개의 운하와 444개의 다리가 촘촘히 연결된 베네치아와 비교하면 몹시 단순하다. 하지만 배경을 알고 나면 그 풍경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아베이루는 거대한 석호와 바다 사이에 자리한다. 1576년 폭풍에 밀려온 모래가 만의 입구를 막아 바다 옆에 호수가 생겨났다. 아베이루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어민들은 염전에서 만든 소금과 호수에서 캐낸 수초를 나르기 위해 운하를 건설했다. 운하 주변에는 소금창고도 세웠다. 수초를 채취한 남자들은 알록달록한 원색의 그림을 그린 배에 수초를 싣고 운하를 누볐다. 사람들은 그를 수초란 뜻의 몰리수(molio)에서 따와 몰리세이루(Moliceiro)라고 불렀다. 세월이 흘러 몰리세이루가 몰던 배는 유람선으로 거듭났다. 수초 대신 관광객을 싣고 몰리세이루의 흔적을 반추하듯 운하 위를 유유히 오간다. 그 유람선 이름도 몰리세이루다. 몰리세이루에 대해 알고 아베이루를 찾는 이는 많지 않다. 몰리세이루를 타지 않고 아베이루를 떠나는 여행자도 거의 없다. 그 대열에 끼려는 찰나 가이드 카롤리나가 아베이루 옛 기차역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역사박물관도 아니고 기차역에서 아베이루의 옛 모습을 보여주겠단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뒤를 따랐다. 이제는 기차가 서지 않는 옛 기차역은 소금처럼 하얀 건물의 벽을 푸른 ‘아줄레주’로 장식한 건물이었다. 아줄레주는 유약으로 그림을 그려 넣은 포르투갈 특유의 타일 장식이다. 가까이서 보니 염전을 일구는 사람, 운하 옆 건물 등 타일 한 장 한 장에 그림을 그려 퍼즐 맞추듯 벽화를 완성해 놓았다. 그 안에 아베이루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침내 몰리세이루 위에 올랐다. 곤돌라 뱃사공처럼 노래를 불러주진 않지만, 입담 좋은 가이드가 동행해 운하 옆 건물과 다리에 대한 설명을 술술 쏟아냈다. 운하 옆에는 아르누보 건물이 꽤 많은데, 과거 소금으로 돈을 번 상인들이 부를 과시하기 건물을 화려하게 꾸몄기 때문이란다. 반면 어부들은 빨강 파랑 등 원색으로 외관을 칠했다. 그 덕에 운하에 아른아른 비치는 도시의 색감도 아름답다. 선착장에서 출발해 학회 문화센터까지 갔다가 카르카벨로스 다리로 가는 사이 따사로운 저녁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베이루의 저녁 속으로 스며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옛 소금창고에서 느낀 바칼라우의 맛
저녁은 운하 옆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메뉴가 ‘바칼라우(bacalhau)’란다.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동안 1일, 1바칼라우는 진정 피할 길이 없단 말인가! 어제도 그저께도 바칼라우를 먹었다. 바칼라우는 포르투갈어로 대구인데, 염장해서 말린 대구(바칼라)와 바칼라로 만든 요리 두 가지 의미를 품고 있다. 포르투갈에는 365가지의 바칼라우 요리법이 있다고 할 정도로 포르투갈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한데 왜 포르투갈이 아니라 노르웨이 앞바다에서 잡은 대구가 국민 음식이 된 것일까? 카롤리나에게 물었다.
“15세기의 포르투갈을 한번 상상해 봐요. 늘 먹거리가 부족했지요. 사람들은 바칼라우를 실은 배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어요. 사람들의 식탁에 바칼라우를 올리기 위해, 수많은 어부가 원양어선을 타고 북대서양으로 떠났어요. 최소 6개월 동안 매일같이 배에 달린 작은 보트를 타고 낚싯줄로 대구를 낚았어요. 모선과 멀어지면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죠. 그렇게 잡은 대구는 부패하지 않도록 바로 소금에 절여 반건조 상태로 싣고 돌아왔어요. 그 시절부터 감사한 마음으로 바칼라우를 즐겨 먹다 보니 전통 음식이 된 거예요.”
바칼라우를 먹는 것은 그저 꾸덕꾸덕 짭짤한 대구를 먹는 것이 아니었다. 이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맛보는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 가는 곳은 바칼라우 염장용 소금창고를 개조한 식당이다. 이름도 ‘소금과 일몰’이라는 뜻의 살포엔테다. 포르투갈어로 살(sal)은 소금, 포엔테(poente)는 일몰이란 의미다. 일몰이 아름다운 곳에 있는 소금창고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란다.
오, 놀라워라! 오늘 먹은 바칼라우는 어제의 바칼라우와 한 끗이 달랐다. 바칼라우 크로켓도 바삭하고 고소했지만, ‘오 바칼라우 온 에스푸마 드 바타타(O Bcalhau com Espuma de Batata)’에서 정점을 찍었다. 포르투갈 가정에서 흔히 먹는 감자와 함께 요리한 ‘바칼라우 콘 나타’를 재해석한 요리인데, 튀기거나 볶은 감자 대신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으깬 감자를 썼다. 그 위에 바칼라우와 수란을 차례로 올려 절묘한 맛의 균형을 맞췄다. 이런 맛이라면 매일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은 줄무늬를 타고, 코스타 노바
아베이루 근교 코스타 노바는 줄무늬 마을로 유명하다. 오색찬란한 줄무늬 집들이 호수를 바라보고 줄지어 있는 까닭이다. 오색찬란한 줄무늬 집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코스타 노바가 대서양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은 종종 묻히곤 한다. 코스타 노바 역시 옛 어민의 삶이 짙게 밴 마을이다. 마을의 뒷길은 대서양으로 통한다. 모래언덕 위로 난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야, 모래언덕에 가려 보이지 않던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거대한 바다다. 파도는 세차고, 해변은 끝도 없이 펼쳐진다. 파도만큼이나 아직 여름이 찾아오지 않은 해변은 한갓졌다. 드문드문 낚시꾼들은 바다를 향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오래전, 대서양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 헤매던 어부가 석호 너머 이 바다를 발견했다. 하여 새로운 해안이란 뜻의 ‘코스타 노바’라고 이름을 붙였다. 현지인들 사이에선 줄무늬 집보다 코스타 노바 수산시장이 인기다. 포르투갈에서도 보기 드물게 호수와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을 동시에 판매하는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주말이면 호수에서 갓 잡은 장어는 물론 바다에서 낚은 정어리, 문어 등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조개, 새우와 게 종류도 갖가지. 거북손도 수북이 쌓아놓고 판다. 거북이 손이 아니라 거위의 목을 닮았다고 해서 거위 목이란 뜻의 페르세베스(Percebes)라 부르는 점도 흥미롭다. 코스타 노바에는 해산물 전문 식당도 여럿이다. 바다에서 잡은 생선은 구이로, 호수에서 잡은 장어를 튀김으로 판다. 손님에게 싱싱한 생선을 보여주면 손님이 마음에 드는 생선을 직접 고르게 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그렇게 채택된 생선은 소금을 솔솔 뿌린 뒤 뒷마당 석쇠에서 바로 구워준다. 가족과 함께 살 집을 꿈꾸는 어부들
코스타 노바에 처음 온 이의 시선을 끄는 것은 줄무늬 집들이다. 파란 하늘 아래 노랑, 빨강, 파랑, 쨍한 색감의 작은 집들이 나란히 서 있다. 마음마저 쨍해지는 풍경이다. 한데, 줄무늬로 칠을 한 것은 집을 꾸미기 위함이 아니었단다. 바다와 호수 사이 마을은 늘 습했다. 호수에는 안개가 잦았다.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남편이 집을 쉽게 찾아오라고 한 어부의 아내가 줄무늬로 칠한 것이 시초였다. 그 마음이 이웃으로 번져 호숫가 집들은 줄무늬 옷을 갈아입게 됐다. 그래서 집마다 줄무늬 색이 다르다. 이제 그 집들은 카페나 가게, 여름별장으로 변했지만, 코스타 노바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줄무늬 마을이 됐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매년 손수 페인트칠을 한다. 집을 가꾸는 마음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속 깊은 아내의 마음을 되새기기 위함이리라.
볼수록 예쁜 마을을 하릴없이 거닐었다. 가로줄 무늬 집, 세로줄 무늬 집, 집 한 채 한 채를 눈에 담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 지붕 아래 ‘메우 소뉴(Meu Sohno)’라는 글귀를 새긴 집 앞에 발길이 멈췄다. 사람 이름은 아는 듯했다. 내내 코스타 노바에 대한 옛 이야기를 들려준 카롤리나에게 그 뜻을 물었다.
“나의 꿈!이란 뜻이에요. 거친 바다와 어부들의 꿈은 대개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짓는 거였어요. 작아도 바다에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쉴 수 있는 집이요.”
순간 눈가가 뜨거워졌다. 눈물이 흘러내릴까 봐 목을 꺾어 어부의 집을 다시 올려다봤다. 오랫동안 꿈을 그린 어부는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구나. 살다가, 꿈을 잃고 표류하는 날이 오더라도 메우 소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수첩에 천천히 또박또박 메우 소뉴를 적었다.
여행 정보
아베이루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에서 가깝다. 기차나 버스로 갈 수 있는데, 버스보다 기차가 빠르고 편리하다. 포르투 상 벤투역에서 아베이루 기차역까지 지하철처럼 생긴 근교선A 기차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 시 5분마다 1대씩 있다. 소요 시간은 약 50분. 직행 버스나 기차는 없다. 아베이루까지 가서 코스타 노바행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아베이루에서 코스타 노바는 버스를 타야 한다. 아베이루 운하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포르투갈 최대 등대가 있는 바라(Barra)를 거쳐 코스타 노바로 간다. 버스에서 내리면 줄무늬 마을이 바로 보인다. 걸리는 시간은 약 30분. 코스타 노바가 종착역이다. 버스가 아침부터 밤까지 있지만 간격이 길고 요일마다 운행 시간이 달라지니, 그날의 시간표를 확인하고 이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