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축적된 아날로그 기술의 힘
균형있게 전력 공급해 동작제어
세탁기·청소기서 자동차 반도체 생산
작년 이익 1432억…4년째 증가
전자업계 관계자는 25일 “DB하이텍이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와 함께 드론용 전력반도체를 개발해 올해 초부터 고객사에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가지 모델로 1년에 수조원씩 매출을 올리는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전력반도체와 같은 시스템반도체는 다품종 소량 생산을 기본으로 한다. 전등부터 자동차 파워윈도까지 전력이 필요한 기기마다 각각 다른 반도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용도에 맞는 시스템반도체를 디자인하는 팹리스는 DB하이텍과 같은 파운드리와 개발 초기부터 협력한다. 아무리 좋은 설계를 해도 공장에서 생산할 수 없으면 의미가 없어서다.
DB하이텍이 양산에 들어간 드론용 전력반도체는 드론에 내려진 동작 명령에 따라 필요한 전력을 프로펠러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드론의 중앙처리장치(CPU)에서 보내는 신호를 인식해 각 모터가 동작하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4~8개까지 프로펠러를 달고 날아다니는 드론은 각 모터가 균형 있게 동작해야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다. 바람과 눈, 비 등 악천후에도 안정성과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 같은 세밀한 동작이 가능하려면 여기에 필요한 만큼의 전력을 정확히 공급할 수 있는 높은 기술 수준의 전력반도체가 필요하다. DB하이텍 배터리는 경쟁사 제품에 비해 낮은 전력으로 작동해 똑같은 용량의 배터리로도 드론이 더 오래 비행할 수 있도록 한다. 섬세한 제어로 불필요한 동작을 최대한 줄이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드론용 전력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는 적지 않지만 DB하이텍의 기술 수준과 비슷한 업체는 4~5개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실 본 14년 투자
1997년 창립된 DB하이텍은 2004년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면서 전력반도체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협력사이던 아남반도체가 관련 공정 라인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까지 전력반도체는 TI, 인피니온 같은 종합반도체업체(IDM)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자동차부터 가전까지 관련 수요가 다양해지고 있었지만 팹리스들은 생산 시설이 없어 알맞은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었다. DB하이텍은 전력반도체가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연구개발(R&D) 및 시설투자에 나섰다.
이 같은 노력을 바탕으로 DB하이텍은 2008년 세계 최초로 0.18마이크로미터(㎛·1㎛=100만분의 1m) BCDMOS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업체인 TSMC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기술이다. 이 전력반도체는 국내 주요 스마트폰업체의 신제품에 들어가 품질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2013년부터는 중국에 진출해 시장을 넓히고 있다. 주요 가전업체의 청소기 냉장고 등에 들어가는 전력반도체를 공급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자동차와 산업용 기기 등에 필요한 반도체를 생산해 시장을 확대했다. 최근 크게 확장되고 있는 서버에는 2016년부터 전력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다. 교류를 직류로 바꾸는 전력 전환과 데이터 전달 등 핵심 기능을 수행해 서버 제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품이다.
전력반도체를 중심으로 DB하이텍은 지난해 매출 6797억원, 영업이익 1432억원을 기록했다. 2014년 처음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한 이후 4년 연속 20%가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