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막을 연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부터 봄기운이 완연했다.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한 현악 연주자들은 왈츠와 폴카 특유의 선율에 맞춰 화려하면서도 가벼운 보잉(활 긋기)을 선보였다. 새봄을 여는 연주로 이만한 곡도 드물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이어진 막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단조 선율의 낭만 음악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협연자로 나선 18세의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독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국립음대 재학 중)는 동백꽃 같은 빨간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금 감독은 진남색 넥타이로 빨간색 옷을 입은 협연자를 돋보이게 했다. 1악장부터 줄곧 강렬하고도 어려운 연주법이 이어지는 곡이지만 박수예는 어린 나이에도 무난하게 연주해나갔다.
박수예는 브루흐 연주를 끝낸 뒤, 나탄 밀스타인의 ‘파가니니아나’를 앙코르곡으로 들려주었다. 밀스타인이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 주요 선율을 변주해서 만든 작품이다. 박수예는 “한두 개의 기교만 보여주기보다 다양한 연주기법이 들어간 작품들로 큰 음악적 감동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하이라이트는 2부의 ‘로마의 소나무’였다. 피아노, 하프, 공(gong· 중국식 징) 등 다양한 악기가 총동원된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교향시 ‘로마의 소나무’를 밀고 당기듯 긴장감 넘치면서도 유기적으로 연주했다. 현악 파트는 이 곡의 1부에서 4부에 이르는 동안 점차적으로 두텁고도 묵직한 층위의 소리를 빚어냈다. 파트별로 트릴(떨듯이 연주), 글리산도(넓은 음역을 빠르게 미끄러지듯 연주) 등 고난도의 기교를 맘껏 뽐내듯 연주했다. 고대 로마의 웅혼한 기상부터 예술과 역사의 중심지 로마의 모습이 연주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한경필은 총 연주자가 90명 가까이 되는 편성 기회를 살려 영화 ‘벤허’ 사운드트랙을 앙코르곡으로 골라 대미를 장식했다. 객석의 ‘브라보’ 외침과 기립박수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글=김희경/사진=김범준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