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9일자로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 대사가 “북한이 비핵화를 해도 미국이 대북 경제 지원을 하거나 북·미 평화조약을 체결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북·미 간 경제협력과 북·미 관계 정상화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의 북핵 해법과 미묘한 차이가 있는 발언이어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한·미 공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또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볼턴과 함께 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볼턴 전 대사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내정자를 비롯한 대북 강경론자의 등장으로 미국 내 안보라인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볼턴 “한국, 북한 약속 의심해야”

볼턴 전 대사는 지난 23일(현지시간) 보도된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비핵화를 대가로 북한에 무엇을 제안할 수 있나’라는 물음에 “미국이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북한은 이미 과거에 국제 합의에 따라 중유를 받았지만 여전히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지 않고 있다”며 “따라서 미국은 북한과 평화조약을 체결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진심으로 경제 발전을 원하면 한반도 분단 상황을 끝내고 한국 정부와 통일을 논의해야 한다”며 “그것이 진정으로 북한 주민을 돕기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강경한 북핵 해법을 주문했다. 볼턴 전 대사는 “북한이 수십 년간 반복한 행동은 이란을 따라 하는 협상의 위장술”이라며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테네시주 오크리즈의 안보단지 창고에 리비아 핵 시설물을 보관하는 것과 비슷한 핵 폐기 협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은 돈을 목적으로 이란이나 테러집단인 이슬람국가(IS), 알카에다 등에 핵을 팔 수 있다”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행동은 위험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북한이 핵 능력을 보유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에 대해선 “한국 국민이 자신의 안보와 평화를 위해서라도 북한이 하는 약속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 안보라인 내부 갈등설 나와

볼턴이 밝힌 입장은 우리 정부 정책과 간극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남·북·미 3국 정상회담 필요성을 언급하며 “한반도 평화 정착은 미국의 보장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북·미 관계가 정상화돼야 하며 나아가 북·미 사이의 경제협력까지 진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목표와 비전 전략을 미국 측과 공유할 수 있도록 충분히 협의하기 바란다”며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새롭게 짜인 강경파 일색의 미국 안보라인과 원활하게 정책 공조를 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 안보라인 내에서 갈등이 터져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뉴욕타임스(NYT)는 24일(현지시간) “매티스 장관이 ‘볼턴과 함께 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변에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도 볼턴 임명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NYT는 민주당뿐 아니라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몸담았던 인사들조차 “볼턴이 변덕스러운 트럼프 대통령과 협의하는 최종 인사가 될 경우 군사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급격히 증가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미 외교전문 매체인 포린폴리시는 “볼턴 전 대사가 전임자인 허버트 맥매스터 보좌관 사람과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관료 등을 중심으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직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인적 청산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수석부차관보를 지낸 에번스 리비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에 이어 볼턴 전 대사까지 북한에 아주 극단적인 입장을 표명해왔다”며 “이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 정상회담을 열지 말라고 조언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