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6일 풀어놓은 한미 통상협상 결과에 철강 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희생양'이 된 자동차와 제약 업계에서는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산 철강은 이번 협상 끝에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초 철강의 경우 '글로벌 관세 25%'와 '표적관세 53%', '글로벌 쿼터(2017년 국가별 수출량 기준 63%만 수출 가능)' 3개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면 5년간 수출 손실액이 각 24억달러(2조5천653억원), 52억6천300만달러(5조6천256억원), 77억6천200만달러(8조2천999억원)에 이를 것으로 우려됐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관세 부과 대상에서 빠지자, 철강협회는 "안보를 이유로 철강 수입을 일방적으로 규제하려 했던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에서 한국이 제외된 것은 다행"이라며 "그동안 면제를 위해 정부가 기울인 전방위적 노력에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며 환영했다.

관세 부과 면제 대신 정부가 합의한 대미 철강 수출 쿼터(수입할당·2017년의 74% 수준)에 대해서도 "미국이 당초 작년 철강 수입의 63% 수준으로 제한하려던 것보다 양호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철강을 지키기 위해 '내주는 카드'로 활용된 자동차업계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결과, 당초 미국이 2021년까지 폐지하기로 한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25%) 철폐 시한이 2041년까지 무려 20년이나 연장됐다.

미국 자동차 안전기준을 준수한 경우 한국 안전기준을 맞추지 못하더라도 수입을 허용하는 물량 기준도 제작사별 연간 2만5천대에서 두 배인 5만대로 늘었다.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25%의 관세를 물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픽업트럭을 수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결국 현지에서만 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이 경우 미국 외 다른 나라 수출이나 국내 일자리, 가동률 유지 등의 측면에서 선택의 폭이 매우 좁아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안전기준 완화도 한국 업체들로서는 잠재적 위협이다.

중장기적으로 미국 차에 대한 안전기준이 완화되면 미국 브랜드 입장에서는 무관세일 뿐 아니라 새로 한국 인증을 받기 위해 비용과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다양한 차종을 소량이라도 공격적으로 한국에 들여올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유럽, 독일차의 우회 수입량이 늘어날 개연성도 충분하다.

실제로 브랜드 국적별 점유율을 따지면 현재 미국이 6.8%로 저조하지만 생산지 기준으로 미국의 한국 수입차 시장 점유율(한국자동차산업협회 집계)은 2017년 기준 18%에 이른다.

독일(34%)보다는 낮지만 일본(18%)과 같은 동률 2위다.

글로벌 혁신 신약에 대한 약가, 원산지 검증 제도를 한미FTA 취지에 맞게 개선·보완하기로 합의한 부분도 국내 제약 업계나 보건 당국으로서는 다소 찜찜한 부분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칙적 동의'라는 설명이지만 만약 향후 미국의 글로벌 제약사 신약에 대해 보험 약값을 좀 더 후하게 매기는 방향으로 보험 제도 개편이 이뤄지면 국내 제약 업계로서는 이로울 게 없는 변화다.

지금은 한국 정부가 제대로 신약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아예 한국 진출을 포기한 미국 제약사들까지 대거 한국 제약 시장을 공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 제약협회(PhRMA) 등은 "한국의 약가 정책이 한국 제약 업계에만 유리하다"며 "한국의 가격 결정은 여러 단계에서 한미FTA 의무를 어기고 미국 혁신가의 권리를 짓밟는다"고 주장해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