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국의 대량 제품에 보복관세와 맞불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전면적인 통상전쟁을 시작한 미국과 중국이 물밑 협상도 벌이는 것으로 드러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자동차와 금융시장 추가 개방, 반도체 구매 확대, 무역흑자 축소 등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도 강공 모드를 유지하며 맞서고 있으나 내부 개혁이 더 시급해 일정 부분 양보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글로벌 패권을 다투는 와중에 미국에 양보할 경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으로선 압력에 굴복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자칫 리더십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 미국과의 통상갈등 해소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美·中 '물밑협상' 돌입… 므누신 "車·반도체·금융시장 더 열어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대응 차원에서 중국산 제품(최대 600억달러어치)에 25% 보복관세를 매기는 행정명령에 서명해 포문을 열었다. 중국은 4시간 뒤 돼지고기 등 미국산 상품 30억달러에 15~25% 맞불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받아쳤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현지시간) “미국과 중국이 무역 갈등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물밑 협상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선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 중국에서는 류허 국무원 부총리가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WSJ에 따르면 므누신 장관은 지난 주말 류 부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산 자동차 관세 인하, 중국의 미국산 반도체 수입 확대, 중국 금융시장에 대한 미국 기업의 접근성 확대 등을 무역 불균형 해소 조건으로 제시했다.

그는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관세 부과를 진행하겠지만 동시에 중국과 협상 중”이라며 “합의에 이르기를 조심스럽게 희망한다”고 말했다.

므누신 장관은 중국이 대미 무역흑자(지난해 상품수지 기준 3752억달러)를 일부분 감축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 관세 인하를 통한 추가 시장 개방, 미국 기업에 강제 기술이전 요구 중단 등도 중국과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므누신 장관이 중국으로 날아가 협상하는 방안까지 저울질하고 있다고 WSJ는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교사’ 역할을 해온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최고경영자(CEO)는 25일 “트럼프 행정부에서 논의 중인 보복관세 대부분은 이행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며 연기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관료의 말을 인용, “중국은 미국과의 통상전쟁보다 국내적으로 훨씬 큰 과제가 많다”며 “통상전쟁은 중국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니다”고 보도했다. 이 관료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흑자를 줄일 수 있으며 6개월 안에 추가 시장 개방 조치를 발표할 계획이다. 오는 11월 미국의 의회 중간선거 전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재산권 분야 역시 미국이 중국의 양보를 기대해볼 만한 분야로 꼽힌다. 1991년 미국이 슈퍼 301조 조사를 거쳐 15억달러 상당의 중국산 상품에 관세를 때린 뒤 양국은 지식재산권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2014년부터 ‘중국제조2025’ 계획을 앞세워 반도체, 전기차, 로봇, 바이오, 항공우주장비 등 첨단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자국 기업이 세계적 수준에 올라갈 때까지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2일 발표한 보복관세 대상은 이 분야를 겨냥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미국이 이 분야 견제를 고수한다면 양국 간 통상갈등 해소가 요원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