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레전드'라고 부르지만
연주 쉽지 않고 갈수록 어려워
힘들게 느껴지던 '포레 소나타'
케너와 함께 용기 내 첫 도전
70세의 나이, 33번째 앨범을 낸 세계적 아티스트인데도 그에게 만족이란 단어는 애당초 없었다. ‘바이올린의 여제(女帝)’라 불리는 정경화 얘기다. 정경화는 27일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33번째 앨범 ‘아름다운 저녁(Beau Soir)’(워너뮤직코리아) 발매 기념 간담회를 열고 “남들은 ‘레전드’라 부르지만 저는 그 얘기만 들으면 몸이 근질거리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는 “연주가 하나도 쉬워지지 않고 더 어렵기만 하다”며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연주를 유튜브로 감상하려고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했다.
◆“제일 힘들 때 좋은 길 볼 수 있다”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경화의 음악 인생은 여섯 살 때 바이올린을 들면서 시작됐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불렀던 노래 음표를 모두 외워 바이올린으로 연주할 정도로 뛰어났다. 1967년엔 미국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70년 영국 런던 로열페스티벌홀에선 앙드레 프레빈 지휘로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연주하며 유럽 클래식계에 이름을 알렸다. 해외 무대에서 한국인 연주자를 찾아보기 어렵던 시절, ‘동양에서 온 마녀’로 불릴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에게도 은퇴를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가 있었다. 2005년 손가락을 다친 것이다. “긍정적이던 어머니는 ‘제일 힘든 일이 있을 때 제일 좋은 길을 바라볼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말을 새기며 언제나 긍정적으로 행동했죠. 오늘 당장 일어날 일도 모르고, 하늘과 땅이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것도 인생인 것 같습니다. ”
정경화에겐 33번째 앨범도 영광이다. 세계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 독일의 안네 소피 무터 다음으로 가장 많은 앨범을 발매했다.
◆프랑스 음악 담은 새 앨범
이번 앨범은 프랑스 음악들로 가득하다.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소품인 포레의 ‘자장가’,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이 들어있다. 드뷔시의 ‘아마빛 머리의 소녀’와 ‘아름다운 저녁’도 포함됐다. 정경화 ‘시그니처 작품’으로 알려진 엘가의 ‘사랑의 인사’도 새로 녹음했다. 이번 앨범도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듀오 파트너인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함께했다.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엔 저와 케너만의 해석을 담았습니다. 포레 소나타는 감이 잘 안 오고 늘 힘들게 느껴졌는데 케너와 함께 용기를 내 처음 도전하게 됐어요.”
지난 26일 70번째 생일을 맞은 정경화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다. “언제까지 연주를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죠. 하지만 마지막 순간 마음에 안 들어 찢어버리지 않아도 되는 그림 한 폭을 남기고 싶어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