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법 개정 논의 잠잠, 피해자 가족 고통은 그대로
피해가족 변호사 "근본 대책 찾는 사회적 노력 기울여야"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 1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새 학기 초반까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던 막내딸은 새 친구를 사귀면서 달라졌다.

지난해 3월 29일 아침에도 웃으며 등교했다.

"사랑한다"는 엄마 말에 뽀뽀까지 해준 밝은 딸이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고 귀가해야 할 막내딸이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의 실종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

밤늦게서야 돌아온 딸은 끔찍하게 훼손된 주검 상태였다.

지난해 7월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 10대 피고인 2명의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A(지난해 사망 당시 8세)양 어머니(44)는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힘들게 떠올렸다.

"염을 하시는 분이 아이의 얼굴은 괜찮다고 해서 잠자는 얼굴을 생각했는데 그럴 줄 몰랐어요.

눈도 못 감고 얼굴의 반이 검붉은 시반으로…. 예쁜 옷을 입히고 싶었는데 그럴 상태가 아니어서 옷을 조각조각 잘라서 입혔어요.

그 예쁜 애가, 누구나 같이 따라 웃게 하던 그런 애가 그런 모습으로 있는 게 마지막이었어요"
사건 발생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A양 가족들은 이사했다.

딸을 잃은 곳에서 벗어나 멀리 떠나고 싶었지만 남은 아이 둘의 학교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막냇동생을 잃은 초등학생 두 아이가 전학 가서 학교에서마저 힘들어할까 봐 근처로 거처를 옮겼다.

A양 어머니는 지난해 법정에서 "잠을 잘 수 없고 숨도 쉴 수가 없어서 도망치듯 이사했다"며 "그곳만 벗어나면 숨을 좀 쉴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 1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는 막내딸을 무참하게 살해한 피고인들이 제대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해자가 언젠가 세상에 나왔을 때 우리 막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피고인이 알았으면 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잘못된 짓을 했는지 제대로 벌 받아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당한 벌이 내려지길 원합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미성년자 약취·유인 후 살인, 사체손괴·유기 혐의로 기소된 주범 B(17)양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공범 C(19)양은 살인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둘은 모두 현재 서울고법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B양은 지난해 3월 29일 낮 12시 47분께 인천시 연수구의 한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A양을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가 목 졸라 살해한 뒤 흉기로 잔인하게 훼손한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공범 C양은 B양의 살인 계획을 사전에 알고도 막지 않고 같은 날 오후 서울 한 지하철역에서 만난 B양으로부터 A양의 훼손된 시신 일부가 담긴 종이봉투를 건네받아 유기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 1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B양은 이달 12일 열린 C양의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살아있나.

어린애한테, 가족은 얼마나 슬프겠어요.

저 좀 죽여달라"며 "항소심에서는 사형을 내려달라"고 불안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김지미 변호사는 2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정신이 불안정한 피고인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며 "피해자 가족들도 그날 재판 기사를 봤겠지만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A양 어머니는 지난해 1심 재판 때 한 번 증인으로 법정에 선 이후 최근 열린 항소심 재판까지 한 번도 피고인들 재판을 직접 방청하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직원으로부터 재판 진행 사항을 전해 듣거나 언론에 보도된 재판 관련 기사를 챙겨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은 또 심리 치료를 받으며 아직도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사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 초등생 사건을 계기로, 흉악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소년법 개정 논의도 활발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세간의 관심 밖으로 사라진 분위기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소년법 일부 개정안은 모두 23건이지만 통과된 안건은 한 건도 없다.

모두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현행 소년법은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가 사형이나 무기징역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면 형량을 완화해 징역 15년을 선고하게 돼 있다.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도 미성년자가 살인 등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 최장 20년으로 형량을 제한하는 특례조항이 있다.

이 때문에 B양은 주범임에도 미성년자라는 점 때문에 공범보다도 가벼운 형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주범 B양은 징역 20년, 공범 C양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 1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사건 발생 이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며 앞으로 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두 피고인을 보면서 '우리나라 일부 청소년이 이러고 사는구나'라는 것을 처음 알았고 동시에 놀랐다"며 "그들은 '캐릭터 커뮤니티'라는 어른들이 잘 알지 못한 가상세계에서 폭력성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움직임이나 국민 여론이 소년범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흐른 점이 아쉽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정치인들은 미성년자 살인이나 데이트 폭력 등 온 국민의 관심을 끄는 강력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반짝하고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인 처벌 강화만 고집한다"며 "그건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피해자가 희생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가 이번 사건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찾으려는 노력은 부족했다"며 "성인보다 절제력이 훨씬 떨어지는 청소년의 특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노력을 이제라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