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감시·숙소 옆방서 동선 감시…감정적 반응 유발뒤 연행

나중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으로 밝혀진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방중 취재길에 기자는 뜻하지 않게 중국 공안 당국과 마찰을 빚었다.

김 위원장 일행이 탄 특별열차가 27일 오후 베이징을 출발해 시속 70㎞의 비교적 느린 속도로 랴오닝(遼寧)성 성도인 선양(瀋陽)을 거쳐 대표적 북중접경도시인 단둥(丹東)으로 온다는 소식에 단둥으로 달렸다.

그러나 서둘러 고착한 현지에선 특별열차 대신 중국 공안을 맞닥드리면서 기자의 취재계획은 송두리째 헝클어졌다.

이들에 의해 파출소로 연행되면서 하룻밤을 보낸 끝에 가까스로 풀려났다.

발단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특별열차가 단둥 열차역에 도착하기에 앞서 28일 오전 1시50분께 단둥역 출입구로 공안차량 1대를 앞세우고 녹색 대형버스 1대와 연갈색 미니버스 1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르포] 김정은 귀국길 취재중 중국공안에 다짜고짜 끌려가보니…
그때까지만 해도 김 위원장이 방중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고위급의 북한 인사가 도착했고 중국 현지 당국의 지도자(領導)들이 자기네 땅을 방문한 손님맞이를 위해 인사차 들른 것으로 판단됐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중하면 부총리급 또는 부주석급이 영접하던 관례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김정은 위원장이 아니라도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방중했을 것으로 보여 상당한 수준의 지방 지도자 배웅이 예상됐다.

단둥이 랴오닝성에 속한만큼 랴오닝성 당서기 또는 성장급이 단둥역에 나올 것으로 보고 미리 사진을 통해 익힌 인사가 등장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차된 버스를 휴대폰카메라로 촬영한 뒤 역사로 접근하는 순간, 사복 차림 경호원이 제지하고 나섰다.

경호원은 촬영한 사진을 달라며 요구했고 카메라를 빼앗기지 않으려 상의 호주머니에 넣고 손을 함께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버스에서 내리는 인물을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으나 이 경호원이 머리를 내 시선 방향으로 들이대며 방해했다.

버스 쪽으로 다가가려하자 경호원은 점퍼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은 채 배를 앞으로 밀며 나를 뒷쪽으로 밀어냈다.

그의 몸이 내 몸에 닿는 순간, 불쾌감을 느끼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밀어내지 마라"는 고함이 터져나왔다.

이를 본 경호원과 주변의 공안 5~6명이 순식간에 내 주변으로 모여들며 신분증을 요구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 경호원의 행동은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고 내가 마치 불법적인 행동이라도 한 것처럼 분위기를 몰고가는 계기였다.

이에 앞서 이날 저녁 내내 공안들의 감시에 시달린데다 갑작스런 신체적 접촉에 반사적으로 나온 고함을 들어 파출소 동행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날 오후 단둥의 한 호텔에 투숙하면서 나에 대한 공안의 밀착감시는 시작됐다.

외국인 투숙시 숙박업소가 공안에 신고하도록 돼 있지만 중국 특파원으로 지낸 2년여 동안 이와 관련해 별도로 조사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특별한 손님'이 올 예정이라서인지 호텔 체크인을 하고 1시간쯤 지나서 객실 매니저를 앞세우고 공안 2명이 객실을 찾아와 단둥 방문목적이 무엇인지, 소속 회사는 어디인지, 어떤 취재를 하는지 등을 꼼꼼히 캐물으며 20분 정도를 조사했다.

이후 이날밤 5시간 가까이 단둥역 주변을 오가며 현장취재를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내 뒤를 따라다니는 인기척을 의식하게 됐다.

뒤돌아보니 사복 차림의 건장한 남성 3명이 4~5m 정도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내가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역 주변에 사람이 많을 때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으나 오후 10시를 넘어 오가는 인파가 끊기면서 이들의 추적·감시를 모를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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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의 감시로구나'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감시의 압박을 느끼면서 '역 주변을 벗어나면 괜찮을까' 싶어서 투숙하는 호텔로 발걸음을 옮기자 이들의 추적도 이어졌다.

급기야 호텔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오는 밀착감시를 보여줬다.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고 상승버튼을 누르는 사이 어느새 따라온 이들이 나와 같은 층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모골이 송연해졌다.

내가 투숙한 방으로 들어서자 이들도 바로 옆 방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앞서 객실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나를 감시할 필요성을 느끼고는 바로 옆 방에 감시조를 투입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 3명의 감시조가 나를 따라다닌게 우연이 아니라는 깨달음도 뒤늦게 얻었다.

2명이 방 안에 들어갔으마 나머지 1명은 엘리베이터 입구를 지키며 감시를 계속했고, 내가 객실 밖으로 나오면 이들의 추적이 벌어졌다.

공안 3인조는 결코 내가 말을 걸거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으나 바로 뒤에 따라오면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눈길에 심장이 벌떡벌떡 뛰는 체험을 했다.

이런 상태에서 앞에서 말한 경호원과의 마찰이 벌어진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파출소 동행을 요구한 공안은 차량으로 5분쯤 떨어진 '단둥시 공안국 역전파출소'로 나를 데려갔다.

이때는 28일 오전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파출소에 도착한 공안은 가장 먼저 단둥역에서 휴대폰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삭제를 요구했다.

공안에게 휴대폰을 건네고 직접 지우라고 했더니 바라던 사진을 찾고는 굳이 내가 직접 삭제하도록 재차 요구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다른 공안은 사진보관함의 '최근 삭제된 항목'까지 마저 지울 것을 요구할 정도로 집요했다.

이어서 공안이 나를 조사하려 했으나 서툰 중국어로 조사에 응할 경우 자칫 불리한 결과가 나올 것을 우려해 영어로만 대답했다.

그러자 난감해진 공안은 내게 '통역을 데려오라"고 말했지만 꼭두새벽에 어디서 통역을 구하라는 말이냐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목소리를 높여 요구하던 공안들은 결국 깊은 밤이 되자 나를 홀로 조사실에 내버려둔 채 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처음에 의자에 몸을 기대 잠을 청했으나 자세가 불편해 조사실 가운데에 놓인 나무테이블을 침대 삼아 새우잠을 잘 수 밖에 없었다.

조사실에 돌아온 공안의 채근에 잠을 깨니 오전 6시가 조금 넘었다.

2시간도 채 못잔 것이다.

공안은 내 여권과 기자증 제출을 요구하더니 얼마간 이를 조사하고 돌려주었다.

오전 6시30분께 단둥시 인민정부 외사판공실의 관계자가 조사실에 들아와서는 나더러 따라오라고 하더니 바깥으로 나오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하룻밤 사이에 중국 공안의 외국인 다루는 기법을 다양하게 경험한 셈이다.

3인조 밀착감시, 투숙한 옆 방에서 동선 감시, 물리적 충돌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킨 뒤 파출소로 연행 등 이들의 노하우는 축적한 경험 탓인지 풍부했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G2라 자처하는 중국이 자국을 찾은 외신기자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억누를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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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