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미술시장
켄 페레니 지음 / 이동천 옮김 / 라의눈 / 424쪽 / 1만4000원
페레니가 자신의 위작 미술품 제작 과정과 거래 경험을 자전적으로 풀어쓴 책 《위작×미술시장》이 국내에서 번역·출간됐다. 저자는 책에서 수십 년간 최고의 전문가들마저 속일 수 있도록 위조품 제작 기술을 갈고 닦은 과정, 수사당국에 적발되지 않고 위작 미술품 거래를 해온 노하우 등을 상세하게 들려준다. 자기가 지은 죄를 뉘우치는 고해적인 성격의 글은 아니다. 이 책의 원제는 구매자 위험 부담 원칙을 뜻하는 법률용어 ‘Caveat Emptor’다. 위조품을 만들어 판 자신은 죄가 없다는 뉘앙스다. 책은 합법적인 비즈니스 과정을 회상하듯 담담한 어조로 서술돼 있다. 오히려 그 덕분에 미술품 위조시장의 민낯을 제대로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위조품을 만들려면 먼저 골동품 가게를 돌아다니며 무명작가가 그린 먼지 쌓인 옛날 그림을 찾아서 사와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그림에서 물감을 지우고 캔버스만 남긴 뒤 저자 자신이 직접 유명 작가의 작품과 최대한 똑같이 그림을 그리는 게 다음 순서다. 그림이 완성되면 고전 명작이 지닌 ‘오랜 세월의 흔적’을 자신이 방금 그린 그림에서도 나타나게 했다. 저자는 “무엇이 옛날 그림에 크랙(갈라짐)과 같은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아주 짧은 시간에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며 “팽창과 수축을 일으키는 온도차와 습도, 물리적 충격 등이 크랙 형성의 촉매제로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렇게 만든 위작을 미술품 거래의 세계적 중심부인 미국 뉴욕에서 팔아 엄청난 돈을 벌었다. 뉴욕에서 거래하는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도 들려준다. 미술품 경매에서 벌어지는 딜러 간 담합, 미술품을 통한 마피아의 돈세탁 등이다.
일반적으로 미술품 위조자들은 자신의 모습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자의 고백은 미술시장의 ‘어두운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도 크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