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갈색의 스포르체스코 성벽.
다갈색의 스포르체스코 성벽.
이탈리아 밀라노를 생각하면 명품 슈트를 말끔히 차려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패션 피플이 떠오른다. 미국 뉴욕,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와 함께 세계 4대 패션 도시인 밀라노. 시대를 이어오며 수많은 예술가가 명작을 남긴 밀라노는 그 명성을 패션이 이어받았다. ‘밀라노의 심장’이라 부르는 두오모 성당에서 시작해 발걸음 내딛는 곳 모두가 명소니 관광객에겐 천국이 따로 없다.

밀라노=글·사진 이두용 여행작가 sognomedia@gmail.com

패션에 끌렸던 그곳에 가다

늦은 밤 TV 채널을 돌리다가 이따금 패션쇼 장면에 멈춘다. 늘씬한 남성 모델이 목깃 세운 정장 재킷을 입고 무대 위를 걷고 있다. 화면 상단을 보니 ‘밀라노 컬렉션’이라고 쓰여 있다. 패션쇼를 보고 있으니 처음 밀라노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밀라노 컬렉션은 세계 4대 패션 컬렉션 중 하나로 1958년 시작됐다. 뉴욕과 런던 컬렉션에 이어 세 번째로 개최되며, 연 2회 1주일 정도 열린다고 한다. 밀라노 컬렉션은 패션쇼가 큰 인기다. 세계의 패션 리더들이 쇼를 통해 패션의 동향을 점친다. 그 장면을 패션에 ‘ㅍ’자도 모르는 내가 한국에서 TV로 본 것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패션 얘기를 먼저 꺼냈지만 밀라노를 여행하는 순서로 따지면 무조건 두오모 성당이 먼저다. 밀라노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밀라노의 중심이자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의미가 있다. 1386년 대주교였던 안토니오 다 살루초가 밀라노의 정중앙이면서 모든 도로가 뻗어가는 중심점에 십자가 모양의 큰 성당 건립을 계획했다. 이후 영주였던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가 공사를 시작했고 약 500년이 지난 1851년 완공됐다. 하지만 꾸준히 진행된 부대공사까지 포함하면 공사가 끝난 실제 시기는 1965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역사에 비교해 보면 고려 32대 왕이었던 우왕의 집권 12년에 공사를 시작해 박정희 정권 초기까지 대장정을 이어온 셈이다. 정말 긴 세월이다.

밀라노의 심장 두오모 성당

광장 앞에 서서 성당을 올려다보니 대단하다는 말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장하고 아름답다. 유럽을 여행하다가 보면 도시마다 명소에는 성당이 꼭 있다. 나중에 찍은 사진을 열어보면 이 성당의 이름은 뭔지, 저 성당은 어디서 찍었는지 구분이 쉽지 않은 때가 있다. 두오모 성당은 그런 구분을 말끔하게 지워준다. 가까이 다가가서 꼼꼼하게 보기 전에 그저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위엄이 느껴졌다.
 백색 대리석과 벽돌로 만들어진 밀라노 건축의 상징 두오모 성당.
백색 대리석과 벽돌로 만들어진 밀라노 건축의 상징 두오모 성당.
두오모 성당은 우선 규모와 건축 양식만 봐도 남다르다. 로마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과 스페인 세비야의 대성당 다음으로 큰 규모다. 이탈리아와 스위스 국경 인근에서 생산되는 백색 대리석과 벽돌로 만들어졌는데 길이가 158.6m이고 폭은 92m, 높이는 65.6m, 첨탑 최고 높이는 108.5m다. 독특하게 독일식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오랜 기간 만들다 보니 다양한 예술가가 참여할 수 있었고 그들의 개성이 곳곳에 담겼다.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인 조각상이 총 3159개나 된다. 성당에 조각된 것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이 중 2245개는 건물 외벽과 첨탑, 처마에 조각돼 있다. 성당 입구의 문과 외벽, 기둥을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그 어떤 것 하나도 허투루 볼 수 없을 만큼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인물의 동작도 정교했다.
두오모 성당 외벽의 부조 작품.
두오모 성당 외벽의 부조 작품.
두오모 성당 조각의 최고봉은 가장 높은 첨탑에 우뚝 서 있는 ‘마돈니나(Madonnina: 작은 성모)’다. 3900장이 넘는 금박으로 덮인 이 작품은 멀리서도 햇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걸 볼 수 있었다.

성당에서 극장으로 예술 기행

두오모 성당에 흠뻑 빠졌다면 다음 코스도 성당을 보는 것이 좋다. 두오모에서 서쪽으로 지척에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좋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고 걷는 것에 무리가 없다면 천천히 거리를 구경하며 걸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혹시 길을 잘못 들어서 돌아가도 마주치는 풍경은 늘 운치 있다.

이곳은 15세기 중반 고딕 양식으로 세워진 도미니크회 수도원이다. 성당이 크거나 자체로 화려하지 않지만, 이곳이 인기 있는 이유는 수도원 식당 한쪽 벽에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최후의 만찬>이 그려있기 때문이다. 43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성경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인물들의 섬세한 표정과 동작을 그려냈다. 그는 완벽한 작품을 위해 벽에 색을 칠해 놓고 다 마른 뒤 다시 덧칠하는 정교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대를 거치며 그림은 많이 손상됐다. 현재의 그림은 1977년부터 1999년까지 복원한 것이다.

워낙 귀한 작품이라 최소 1개월 전에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다. 관람도 15분씩 25명만 들어갈 수 있어 조용한 가운데 15분간 마음껏 관람할 수 있다. 플래시만 사용하지 않으면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세기의 미술품을 봤다면 다음은 음악의 거장을 찾아가 보자. 두오모 성당 위쪽에 스칼라 극장이 있다. 베르디와 푸치니가 오페라를 초연했던 곳이란다. 극장은 내부로 들어가야 진짜를 볼 수 있다. 베토벤이나 슈베르트가 주인공인 중세 영화에서 봤음직한 극장과 꼭 닮았다. 영화 세트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 이곳은 여전히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데 입석은 생각보다 저렴하다. 공연 내용과 시간을 미리 확인해두고 땅거미 지는 밤 낭만적인 공연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높은 다갈색 담장의 위풍당당

두오모 성당이 밀라노의 중심을 지향하며 세워졌다는 게 정답이다. 이름난 장소는 성당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다. 주변에 명소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공연까지 봤다면 이번엔 성이다. 밀라노 관광 책자에는 반드시 가야 할 곳 중 하나로 스포르체스코 성을 두오모 성당 다음으로 꼽는다.

이곳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브라만테의 손길이 거쳐 갔다. 그러고 보면 당시 거장들은 쉴 새 없이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 두오모 성당이 밀라노 최고의 고딕 건축물이라면 스포르체스코 성은 대표적인 르네상스 건축물로 불린다. 입구에 다다르면 양쪽으로 막아선 다갈색 높은 담과 마주한다. 이제껏 봤던 성이나 극장과 달리 웅장함과 근엄함에 위축되는 기분이 든다.

성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정원이 펼쳐진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높은 담이 인상적이다. 이 성을 지은 비스콘티 가문의 기품이 느껴진다. 이곳은 유명세에 비교해 다른 곳보다 사람이 적다. 성과 연결된 샘피오네 공원에서는 잔디밭에서 드러누워 쉴 수도 있어 방문을 적극 추천한다. 성 안쪽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는데 이곳 역시 거장의 예술품들을 볼 수 있다.
파리 카루젤 개선문과 닮은 밀라노 평화의 문.
파리 카루젤 개선문과 닮은 밀라노 평화의 문.
성 입구 안쪽으로 호객행위를 하거나 실로 만든 팔찌를 억지로 채워주고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다. 행인의 팔에 은근슬쩍 팔찌를 감아놓고는 얼굴색을 바꾸며 협박하듯 지폐를 달라고 하니 주의하는 게 좋다.

샘피오네 공원 뒤로는 밀라노 평화의 문이 보인다. 스포르체스코 성과 몇백m 거리다. 이곳은 1796년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밀라노로 입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파리의 카루젤 개선문과 규모와 모양이 정말 비슷하다. 심지어 카루젤 개선문보다 먼저 세워졌다.

세계 패션을 이끄는 쇼핑가

‘도시가 박물관’이라고 불릴 만큼 밀라노는 로마에 이어 역사적인 관광 도시다. 하지만 패션을 시작으로 금융, 제조분야 산업이 발달한 경제도시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유적을 빼놓고도 밀라노 하면 패션으로 통하는 이유다.
밀라노 시내를 운행하는 트램.
밀라노 시내를 운행하는 트램.
세계 패션을 리드하는 도시면서 다양한 명품의 본사가 이곳에 있다. 덕분에 ‘쇼핑의 천국’이라 부르며 세계적인 명사는 물론 쇼핑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밀라노로 날아온다. 그들에게 밀라노는 쇼핑이 우선이고 관광은 덤이다.
패션 감각이 돋보이는 밀라노 경찰.
패션 감각이 돋보이는 밀라노 경찰.
쇼핑몰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명소가 있다. 바로 두오모 성당 옆이다. 성당이 바라보이는 광장 오른편에 쇼핑거리라 불리는 빅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가 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거리로 소문날 만큼 몰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다.

두오모 성당의
최고봉 마돈니나.
두오모 성당의 최고봉 마돈니나.
이곳은 쇼핑을 위해 1877년 만들어졌는데 당시 지어진 아치형의 유리 천장과 바닥의 모자이크가 아직 그대로 보존돼 있다. 고풍스러운 멋과 현대식 제품의 디자인이 어우러져 그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있다. 이곳에는 이탈리아가 원산지인 명품부터 전 세계의 다양한 브랜드를 만날 수 있다. 국내 매장보단 저렴하지만 고가의 제품이 많다.

진짜 쇼핑만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세라발레 아울렛으로 가면 된다. 두오모 성당에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 반 정도 달려가면 국내의 아울렛 매장과 비슷한 쇼핑 타운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진짜 명품 쇼퍼들의 천국이다.

밀라노에서 명품을 싸게 샀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이곳이 출처다. 이곳은 평소에도 할인하지만 브랜드와 이벤트 세일 기간 등을 알고 가면 말 그대로 득템할 수 있다. 가족에게 명품 선물로 큰소리친 사람이라면 이곳이 두오모 성당 다음의 명소가 돼줄 것이다.

밀라노=글·사진 이두용 여행작가

sognomedia@gmail.com

여행정보

한국에서 이탈리아 밀라노까지 직항은 대한항공뿐이다.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 오후 3시5분에 출발하는 항공편을 이용하면 된다. 밀라노까지는 11시간30분이 소요된다. 1회 경유하면 선택의 폭은 많이 늘어난다.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수많은 해외 항공사가 1회 경유로 밀라노까지 운항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런던을 경유하는데 총 13시간5분 만에 밀라노에 도착한다. 해외 항공사들은 대부분 자신의 나라 공항을 경유하는 여정으로 밀라노까지 간다.

밀라노는 두오모 성당은 물론 대부분의 성당, 극장, 박물관이 유료다. 요일에 따라 휴관하는 곳은 물론 예약해야만 입장할 수 있는 곳도 있으니 떠나기 전 반드시 동선에 맞춰서 정보를 찾아보자. 두오모 성당만 해도 엘리베이터 이용에 따라 패스 A, B로 나뉘고 가격도 다르다.

도보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밀라노 시내는 두오모 성당을 중심으로 걸어서 다니는 걸 추천한다. 도시 전체가 명소이기 때문에 아무 골목이나 들어가도 나름의 볼거리가 있다. 지도는 지참하자. 거리 곳곳에 맛집과 카페, 아이스크림 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