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소설집 ≪파인다이닝≫의 표지 이미지.
테마소설집 ≪파인다이닝≫의 표지 이미지.
“내게 요리라는 행위는 ‘계속 살아가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윤이형 작가)

‘요리’와 ‘음식’은 엄연히 다른 주제다. 맛있는 음식 그 자체를 먹는 것에 관한 이야기도 좋지만, 정성스레 준비한 재료에 각종 조미료를 넣어 익히고 예쁜 그릇에 담아내는 일련의 과정에 담긴 이야기들은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파인다이닝》(은행나무)은 요리를 주제로 한 테마소설집이다. 소설가 최은영 황시운 윤이형 이은선 김이환 노희준 서유미 등 7명의 젊은 작가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에 이야기를 덧입혔다. 소설이라는 돋보기로 음식과 음식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게 조명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때로 주인공들의 불안하고 결핍된 삶 그 자체다. ‘매듭’은 결혼한 지 3개월여 만에 불의의 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남편 윤을 보살피느라 낙지탕집에서 일하는 ‘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대소변조차 가릴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수치스러운 남편은 아내를 떠나려고 하지만 그와 함께 꿈꾼 미래를 버릴 수 없었던 ‘나’는 끝내 그의 곁에 남는다. 그러나 삶에 대한 의지가 사라진 남편을 보살피며 생계를 이어가는 일은 처음의 의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가게에서 손목이 시큰해지도록 낙지를 잘라야 하는 ‘나’는 가위질이 거듭될수록 나날이 늘어나는 빚과 갚을 수 없는 원금, 나아지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남편을 생각하며 절망에 빠진다.

집주인이 월세 10만원, 보증금 1000만원을 올려 난처한 상황에 처한 ‘에트르’의 ‘나’는 빵을 좋아하지만 빵을 고를 땐 맛보다는 ‘든든함’을 기준으로 고를 수밖에 없는 처지로 그려진다. 작품 속 인물들의 현실 위에 음식의 이미지가 포개지며 안타까움이 극대화된다.

《파인다이닝》에는 따뜻한 음식이 주는 온기를 먹음직스럽게 그려낸 작품도 있다. 싱글맘 가정에서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승혜와 그의 동성 연인 미오의 복잡한 사연과 세상을 향해 한껏 날카롭게 날 선 감정은 따뜻하게 덥힌 밀푀유(‘승혜와 미오’)의 온기로 누그러진다. 유년시절 부모와의 기억을 되살려준 초콜릿(‘배웅’),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언니를 생각하며 끓인 미역국(‘선택’)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특색을 가진 단편을 모두 읽고 나면 각기 다른 재료로 만든 훌륭한 7가지 요리로 가득 채운 식탁을 대접받은 기분이 든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